농당길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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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 엘레지

  • 길벗
  • 2024-11-29 05: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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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 엘레지

오늘(26일) 홍천군 종합체육관 실내에서 관내 가공업체들 제품들을 전시하는 소위 성과전시회(군에서 지윈을 받아 만든 제품들이라)가 열리고 있다.

우리 길벗농장도 올해 처음으로 참가해보았다. 예상보다 많은 업체와 다앙한 제품군들이 보였다. 지역농산물을 이용한 식품가공품들이 대부분이고 일부 업체는 제품 내용과 패키징을 봤을 때 꽤나 규모가 커보였다.

지자체의 이러한 행사, 지원, 관심 그리고 민간의 참여, 경쟁은 중요하다. 갈수록 인구가 줄고 노령화가 심화되어 활력이 떨어지는 지방에서의 삶은 그러나 우리가 이곳에서 정주하는 한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이 유지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럴려면 일단 인구가 유지, 성장되어야 하는데 그건 이미 판가름이 난 것이 아닌가. 갈수록 수도권으로 집중되는 인구 이동을 누가 막을 수 있을까. 거기(중앙)에는 이곳(지방)에 없는 것이 다 있다. 사람과 일자리와 엔터테인먼트와 편리함. 다만 없는 것은 손대지 않은 자연?

강원도는 상대적으로 천혜의 자연이 그나마 남아있는 곳이라 주말에는 그래서 도시민들의 자동차로 넘친다.

나는 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로 갔는데 불행하게도 처음부터 서울에 정을 붙이지 못했다. 거대 도시는 뭔가 내 생리와 맞지 않았다. 학교도 사람도 거리도 다 불편했다. 그래서 서울을 떠나올 때까지 술만 퍼먹었던 기억이다.

마침내 서울을 떠나던 2001년 봄, 내 나이 서른 여덞에 나는 해방감을 느꼈다. 이제 홍천살이 이십사년째, 그러나 그렇게 바라던 도시 탈출을 이룬 후 그렇다면 이곳에서는 사는 재미를 만끽하고 있는 것인가.

적어도 농사에서는 그렇다. 잘 짓진 못해도 내가 하는 사과농사에서 나는 비록 어느 해는 사과 농사가 잘 되지 못해도 마음은 푸지다. 사과나무 사이에 서면 늘 행복하다. 사과밭 일이 때로 힘들어도 한번도 이 일을 후회한 적은 없다. 그래서 아침에 사과밭으로 갈때면 절로 기분이 솟구친다.

그리고 침엽수림으로 둘러싸인 집(이십사년 전 귀농하던 해에 내가 직접 지은 허름한 침목집)과 이 집이 터 잡고 있는 골짜기의 세상과 단절된 듯한 고요함과 맑은 공기는 또다른 즐거움을 내게 준다.

서울에서 아파트에 살 때 큰 볼륨으로 음악을 듣지 못해 서운하던 일도 이곳에서는 하시라도 내 마음대로 들으니 그또한 작은 즐거움이라 하겠다.

그간 이곳에서 강아지, 고양이, 염소, 미니피그, 닭 등을 키웠다. 팔자에도 없는 양계(유정란)도 계란을 매일 택배로 팔 정도로 3년을 했으니 족하다. 뭐를 하든 그것이 먹거리인 이상 최선을 다해서 안전하고 맛있는 것을 만들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이 나이 먹도록 참 적응되지 않는 것은 오늘처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 행사장 또 그런 행사의 의식 같은 것이다. 회사 다닐 때도 이런저런 행사가 많았고 또 기획과 진행도 해야 하는 일이 있었지만 언제나 불편하고 하기 싫었다. 그래도 우리 세대의 특징이겠지만 맡은 일에는 꼭 성과를 내고 싶고 칭찬을 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라 세심하다못해 신경이 곤두설만큼 일에 몰입하곤 했던 것 같다.

그래서하는 말인데 앞으로는 이런 행사에 나오고싶지 않다(마음은 그렇다는). 일년에 한번 가는 6월 말에 있는 서울국제주류앤와인박람회에도 그간 두번 참가했는데 내년부터는 가지 않으려고 생각중이다.

이상하게 갈수록 세상에 나오는 일이 버겁고 그저 골짜기와 과수원에서 농사만 짓고 조용히 살고 싶다. 그러나... 벌려놓은 일이 이런 생각과는 다르게 가공공장과 양조장까지 있으니 거기다 내년엔 시음장까지 짓게 생겼으니 이런 이율배반이 또 있을까.

이제 환갑이 갓 지났으니 앞으로 십년만 농사일을 더 하고 그땐 정말 은퇴하고 싶다. 만약 그때에 가서 여력이 있다면 그때는 로빈슨 크루소처럼 무인도에 가서 프라이데이와 둘이서 살고 싶다. 중2때 대니얼 디포의 이 소설을 읽고 이후 내 인생의 소설이자 늘 머리속을 떠나지 않고 있다.

고등학교 진학 차 춘천으로 유학와서 당시 고1때 명동에 있던 청구서적에서 만난 서문문고판 <숲속의 생활-소로우>은 두번째 나의 인생 로망이 되었으나 나는 철이 늦게 드는 인생이라 그간 많은 시간을 허비하면서 살고 말았다.

오늘 행사장에서 의례가 끝나고 내빈들이 휘 지나간 뒤에 일반 관람객도 거의 없고 쓸쓸해서 페북질을 하다보니 어쩌다 한탄이 되고 말았다. ㅎㅎ

<페이스북에 쓴 글을 옮겨 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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