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늘 비가 흡족하게 내렸다. 그간 몹시 가물었는데 이 정도면 해갈이 되었을 듯 하다. 그야말로 봄비다.
나이가 들고 보니 이런 자연의 조그만 변화와 움직임에 점점 더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젊을 땐 비가 내려도 오나보다, 그치나보다
덤덤했다면 이제는 그 풍경의 색채와 공기 냄새와 물소리에 몸이 점점 젖어들어감을 느낀다.
돌이켜보면 인생은 그야말로 아무 것도 아니다. 그 속에서 소위 사회적 출세를 했건 욕망을 채웠건 결국 우리는 정해진 시간을 채우고 가는
유한한 미물에 불과하다. 아주 못된 놈들을 근자에 만났지만 내 마음이 편한 것은 이런 나이듦이 주는 지혜같은 것 때문이다.
지난 연말에 내키지 않는 마을 이장을 몇 분의 추천과 계속된 강권으로 거절을 몇 번 하다 억지로 맡았다. 주민들의 동의(마을총회)를 얻어야 하는
일이었기에 하는 수 없이 발심을 하여 나가게 되었다. 그저 3년만 이 동네를 변화, 발전시키고(4년 전에 당시 이장과 함께 마을사업을 해서 몇 억의
자금을 타내고 마을에 이런저런 시설들을 들여놓고 가꾸고했던 경험이 있으니) 또 직전 이장이 벌인 일로 하여 마을에 좋지않은 일이 벌어져
그 일도 마무리 겸 해결할 책임을 가지고 나서게 된 것이었다.
그야말로 1월 한 달간을 내 일은 젖혀두고 마을 일에만 몰두해서 몇 가지 해결방안을 세웠고 아울러 일부 주민들 설득에도 나섰다.
지나간 일을 자세히 다 토로해봐야 무엇하겠는가. 중요한 것은 내가 거짓이 없이 진실하며 오직 마을을 위해 조금이라도 덕이 되는 일을 하자고
하는 일이었으니 나로서는 마음의 빚도 미련도 아무 것도 없다. 마을 이장이 무슨 벼슬이라도 되는 양 이걸 한번 해보려고 거짓말로 주민을 선동하고
떼거지로 나서서 목소리를 높이는 악독한 심성을 가진 몇몇이 있으니 그들이야말로 마음속이 지옥불 아닐까. 그저 목불인견인 셈이다.
아무튼 원래부터 이장이라는 일을 원치 않았으나 어쩔 수 없이 한번은 하고 넘어간다는 심정으로 임했으나 마을사업에 일부 원주민들과 일부 주민들이
부정확한 정보(심지어 거짓)와 일부러 훼방을 놓을 심산으로 나오니 나로서는 더없이 잘 된 일이었다. 안그래도 벌려놓은 내 사업과 농사가 많아서
어쩔 수 없이 이장을 맡고서도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이렇게 다행한 일이 또 있을까 싶은 심정으로 얼른 그럼 당신들이 알아서 하시오 하고는
바로 빠져나왔다.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그 멍청하고 악독한 인간들 구덩이 속에서 만약 3년 임기를 마을 일을 하느라 지내게 되었더라면 아마
머리숯이 남아나질 않았을 것이다. 하느님의 보살핌으로 이렇게 명확하고 깨끗하고 마음에 아무런 미련과 미안함도 없이 그만두게 되어 안사람과
집에서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인생사 모든 것은 사필귀정이고 심지어 전화위복이 되는 것이다.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라더니.
편한 마음으로 정리를 하고 내 일에 몰두할 무렵 뜻하지 않은 행운이 다가왔다. 경품으로 사진에서보는 운동기구(이외에도 여러가지가 세트로 더 있다)
에 당첨된 것이다. 싯가 100만원이 넘는 것을 20만원에 득템할 수 있었다. 오늘 기사가 와서 집에 설치를 해주고 갔다.
안그래도 운동 부족을 심히 느끼던 차였는데 이런 종합 운동기구를 거저이다시피 얻게 되어 행운이라고 밖에는 달리 생각할 수 없다.
모든 것은 마음을 짓기에 달렸다. 그리고 그 마음이 결국 자신은 물론 자식에게도 또 이웃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부모된 자의 독한 기운은
그네들 자식도 병들게 할 것이다. 그 일을 겪고 나서 나를 도와 마을일을 하려고 했던 마을 총무(사무장)은 그 악독한(멍청한) 이들을 명예훼손으로 형사고소
하려고 법무사를 만나고 변호사를 예약하는 등 분에 못이겨 억울해했다. 왜냐하면 우리가 겨우 한 달 남짓 마을을 위해 하려고 계획했던 여러 일들은 모두
진심으로 마을을 위한 일이었고 어떠한 사익도 사심도 없이 추진하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를 끝까지 말렸다. 어차피 잘 된 일이다.
나는 이장을 처음부터 내가 하려고 해서 맡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그만두든 저렇게 그만두든 나로서는 오히려 잘 된 일이라고 설득하고 당신보다
내가 더 흥분해야 하는데 나를 봐라 내가 얼마나 편하게 지내냐고 그를 만류했다. 결국 마지막 날 변호사와 면담이 있는 날에 이르러서야 그는 소송을
포기했다. 나는 그를 위로했고 짧으나마 나를 도와 힘써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아주 작은 마을 일에도 이와같이 다양한 인간군상과 표리부동한 사람들이 있는데 더 큰 선거와 정치에는 어떠한 일이 있을까. 생각해보니 나는 처음
아무런 인연도 없는 이 골짜기에 조용히 들어와 그저 조용히 농사나 짓고 살아보려고 한 것인데 그 초심을 잃지 말아야 했는데 이번에 생각지도 못한
구설에 휩싸이고 그래서 내 자신에게 미안한 일을 당하게 했다. 나이 육십을 넘어가는 고개에 하나의 해프닝이라고 여기고 그저 언제나처럼 맘에 맞는
가까운 이웃과 편히 지내고 사는 것이 이번 생의 변치않는 목표라면 목표겠다. 앞으로 밖에서는 농사, 안에서는 운동 그리고 언제나 독서!
열기 닫기
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