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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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벗아펠바인 스파클링 두번째 병입 작업

  • 2023-12-06 20:20:00
  • 118.47.208.220
11월에 수확하고 나서 모두 생과로 팔고 남은 흠과와 소과를 가지고 모두 사과와인과 증류주를 만들기 위한 사과즙으로 착즙하는 작업을 마쳤다. 뒤이어 지난 9월 작업한 사과로 그간 발효와 여과를 거친 사과와인(스파클링)을 마침내 병입을 하였다.


11월 한 달은 정말 하루도 맘 편히 쉬지를 못했다. 이제 눈 내리고 삭풍 부는 한 겨울로 접어들었다. 아직은 정리해야 할 일이 몇 가지 있지만 이젠 좀 여유를 갖고 싶다. 사과와인(길벗아펠바인, 애플사이더) 작업을 이제 재작년 겨울, 작년 겨울에 이어 세번째 발효에 들어간다. 현재 탱크에 들어있는 사과와인 물량은 모두 9톤 정도. 이것을 가지고 일부는 아펠바인으로, 나머지는 사과증류주로 내년 봄까지는 작업이 끝나야 한다.

지난 2년이 준비와 과도기였다면 이제부터는 사이더하우스(cidery) 작업이 루틴하게 세팅이 되어서 규칙적으로 흘러가야 하겠다. 자본이 많았다면 아마 사람을 더 쓰고 하면서 이런 기간을 단축할 수 있었을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늘 쫒기듯 일정에 밀려 일이 진행되어 왔다. 하긴 그러면서 내가 찐하게 그 모든 과정을 직접 몸으로 머리로 겪었다는 것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값진 경험이었다. 모든 일에는 시행착오가 있게 마련이지만 그러나 어쩌다 우연히 마주친 양조장 사업이란 걸 생각하면 그간 나름 잘 해왔다. 

나이 60이 되니 참 그간 지나온 세월이 많이 되새겨진다. 그리고 후회막심. 그러나 흘러간 물처럼 돌이킬 수 없는 시간. 어리석은 한 인간의 궤적이 어쩔 수 없는 실패의 연속으로 그리고 부끄러운 시간의 축적으로만 떠오른다. 얼마 전 어느 지인의 위로의 말, 사실 진정한 사업은 50대 중반 이후에 시작하는 것이라는. 나는 그것을 애써 그래 어쩌면 진정한 삶(인생)의 시간은 50대 중반 이후부터 시작일거야라는 것으로 자위.

다행히 두 아들이 모두 잘 커서 각자 나이에 맞게 자기의 자리에서 커리어를 잘 쌓아가고 있으니 나의 모자란 인생에 대한 그나마 위안이랄까. 내가 굳이 아이들을 인문계 고등학교에 보내지 않고 풀무학교에 보낸 것을 나는 내 인생 최고의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두 아이 모두 비록 시골이지만 중학교 때 전교회장도 하고 공부도 상위권이었지만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라는 이름도 이상한 농업계 학교에 보낸 것을 다행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농업계라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고 풀무학교였기 때문에 보낸 것이다. 그곳에서 두 아이는 모두 잘 자라주었는데 마음에 심지가 굳은 아이들로 그리고 정서적으로도 편안한 사람으로 성장했다. 풀무학교가 아니었다면 어디서 그런 빛나는 시간의 열매를 가질 수 있었겠는가.

안사람은 늘 우리 집에서 가장 큰 골치덩이 문제아는 바로 나라고 일깨운다. 철이 안드는 사람, 고집이 센 사람, 아직도 정서적으로 가끔 불안증을 겪는 다 큰 어른아이가 나다. 물리적 나이가, 시간이 모든 것을 덮고 이해하게 해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끊임없이 내면을 들여다보는 습관 때문에 그나마 이 정도인 것인가.

오늘 저녁엔 한겨울에 때 아니게 천둥, 번개와 요란한 비가 잠깐 골짜기를 쓸고 지나갔다. 유럽에 폭설과 한파가 왔고 아프리카에 홍수가 났다더니 정말 지구 종말의 위기가 이렇게 미세하게 변화를 가져오는 것일까. 다행히 독일에 사는 둘째와 통화를 하니 지금은 기온이 다시 온화해졌다고. 지난 2월에 일주일간 프랑크푸르트에서 둘째와 같이 먹고자고 하면서 모두 3군데 아펠바인 양조장과 과수원을 방문하여 둘러보았다. 이번에도 간다. 내년 2월에 또 일주일간 프랑크푸르트에서 일주일간 머물면서 세 군데 양조장을 방문한다. 작년에 갔던 곳 2군데와 새로 가는 곳 한 군데. 지난 2월엔 사실 질문을 많이 못했다. 질문도 알아야 하는 법인데 사실 내공이 쌓이질 못했던 것이다. 이번엔 여러가지 질문과 그리고 협의할 것을 가지고 간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사과주(애플사이더)를 만들면서 나처럼 외국을 다니는 농부는 나 말고 없을 것이다. 그간 미국, 프랑스, 독일을 모두 한 차례씩 다녀왔다. 그리고 책도 여러 권 읽었고 그리고 이제 세번의 사과주를 직접 빚었고 한번의 증류주 작업을 거쳤다. 물론 나의 가장 큰 자랑은 나는 사과농부라는 것이다.

그저 양조장이가 아니라 난 그 원료인 사과를 직접 재배하는 농부라는 것이 사실 나의 가장 큰 정체성이다. 나는 이 사실에 큰 자부심을 갖는다. 내가 직접 재배한 사과로 만드는 사과술, 우연히 나에게 이런 기회를 가져다 준 그 분에게 감사를 드릴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노동의 결과로 인한 어떤 것을 그래서 나는 이웃과 나눠야한다. 앞으로 힘이 닿는 한, 내가 일을 하는 한 그 일을 확장시켜 나가야 하는 의무를 느낀다. 아직은 그야말로 구멍가게도 못되는 구루마 사업이지만...

며칠 전 우연히 페북에서 스포티파이라는 스트리밍 음악 서비스를 알게 되었다. 오랜 지인의 소개로 관련 기기를 구입하고 또 사이트에 가입을 했다. 그래서 이제 피씨와 모바일 모두에서 언제 어디서고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지금도 피씨 앞에서 이 글을 쓰면서 음악을 듣고 있다. 오늘 듣는 음악은 비지스. 7~80년대 우리 학창시절에 귀에 더께가 쌓이도록 들은 그 음악. 언제 시간나면 그 시절 잠깐 팝에 빠져 몇 달 빵집 뮤직박스에 들어앉아 헤드폰으로 들었던 일들을 꺼낼 날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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