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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말 홍로사과 중 생과 판매를 못하고 가공을 하게 생긴 5톤을 모두 사과즙으로 가공, 곧바로 사과와인 발효탱크로 이송하였습니다. 파우치에 담는 사과주스는 10월 하순 부사 사과로 하려고 계획 중입니다. 일단 올해 홍로사과 팔지 못한 것은 전량 사과와인과 식초용으로 사과즙을 짠 것입니다. |
농사는 늘 배신 당합니다. 아니 어쩌면 인생 자체가 그런 것인지도 모릅니다. 올여름까지만해도 올해 풍성한 수확을 예상했던 홍로사과가 예상치 못한 긴 장마와 수확기에 닥친 폭염으로 인해 발생한 탄저병의 확산 때문에 생각했던 수확량의 절반도 채 못한 채 마무리를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열 몇 분에게 결국 주문 취소 요청과 일부 환불을 해야 했습니다. 사과농사 20년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자연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그저 최선을 다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 그 이상의 기대는 결국 우리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농사의 운명입니다. 그러나 농부는 늘 배신을 당하면서도 내년을 기다립니다. 사계절은 변함없이 다시 돌아오고 그때 우리는 또다시 농사를 짓기 때문입니다.
지혜를 살려 그나마 올해같은 똑같은 이상기후가 오더라도 올해보다는 피해를 조금 더 줄일 수 있을지 모릅니다. 똑같은 땅에, 똑같은 나무에 또 같은 사람이 짓는 농사이지만 그래도 많은 궁리와 고민 끝에 조금 더 나아질 수 있을지 모릅니다. 올해 예상(계획)했던 모든 일들이 일단 틀어졌습니다. 들려오는 소식에 따르면 전국의 홍로 사과 농사꾼들의 신음소리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합니다.
다행히 저는 가공용으로 옮겨진 사과로 사과와인과 식초를 만들 수 있습니다. 사과와인은 매년 진화합니다. 그것은 이제 겨우 두번의 사과와인 생산을 통해 얻은 경험과 계속 이어지는 지식으로 인해 조금씩 달리, 더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엄청나게 투자된 설비를(제 수준에서는 그렇다는 뜻입니다)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도 새로운 술과 다양한 술을 만들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아직 저 혼자 농사와 가공과 판매를 모두 하고 있다는 슬픈 현실입니다. 하긴 아직 초기라 자금도 경험도 상품도 뚜렷한 것이 없어서 이렇게 할 수 밖에는 없습니다.
이곳에 와서 이런 저런 사는 글을 쓰는 것으로 스스로 위안을 받습니다. 이런 숨 쉴 공간마저 없다면 아마 가슴이 부풀어올라 터져 버릴 것 같습니다. 그러나 늘 하고싶은 이야기를 다 하지는 못합니다. 그게 또 인생인지도 모릅니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농부는 계획을 세우지 말아야 합니다. 그저 계절의 순환에 따라 순응하며 늘 하던 것을 그저 묵묵히 하는 것이 농부의 자세인 것 같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요구되는 또 사업에서 필요한 여러가지가 농부에게는 어쩌면 지나친 과정일 수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신앙인은 믿는 자의 은혜를 구할 것입니다. 스피노자는 인간은 자연(신)의 한 구성물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어느 쪽이던 인간의 지혜는 알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할 수 밖에 없는데 그래서 자연을 이용한 농사는 결코 나 자신을 넘어서 그 무엇을 이룰수는 없습니다. 사과농사 20년 지나면서 올해 처음으로 홍로나무를 베어버릴까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순환하는 자연 속에서 또다시 내년 추석을 기다립니다. 순명하는 자세 밖에는 남은 것이 없습니다. 추석이 다가왔습니다. 이곳에 오시는 길벗 님들 모두 대보름달 같은 풍성한 명절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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