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당길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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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생명농업\'농장에 다녀왔습니다

  • 길벗
  • 2008-11-20 11:3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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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 집 앞에서 오재길 선생님 내외와 이웃에서 감귤농사를 짓는 분 내외와 함께. 뒤로 보이는 것은 숙소와 사무실로 쓰는 건물 두 동


\'제주생명농업\' 농장 입구에서 본 창고 건물. 한 동은 농기계와 각종 자재 창고로 쓰이고 있고 정면에 보이는 건물은 효소 즙 공장

2003년 2월 오재길 선생님이 아직 터만 잡고 아무런 시설 공사를 못하고 있었을 때
제주도 표선면 가시리 선생의 농장 터에 방문했었습니다. 그때는 덩그러니 컨테이너만
두 동이 있었고 선생님은 사모님과 함께 표선면 읍내에 조그만 빌라에 기거하고 계셨습니다.

그때 처음 본 제주 중산간 지대인 가시리는 참 황량했었고 2월의 제주 날씨는 눈보라와
바람과 비를 순간마다 바꾸어가며 우리를 환영해주었습니다. 다행히 하루 날이 풀려
당시 선생님과 함께 살던 문 집사님 내외랑 성산 쪽으로 잠시 구경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5년만에 선생님 댁에 안사람과 다시 다녀왔습니다. 그간 매년 몇차례씩 선생님과
전화 통화는 늘 했었으나 제 사정이 허락치 않아 가보지 못했습니다.
진즉에 다 지어진 살림집과 사무실, 창고 그리고 이제는 정리되었을 밭 등을 무척이나
보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제는 아흔 나이를 바라보는 선생님의 건강이
염려되어서 더 늦기 전에 뵙고 살아계실 때 한 말씀이라도 더 들어야하는데 하는
조바심이 한 몫을 했습니다(선생님은 1920년 생입니다).

지난 주 마지막 사과를 다 배송하고 나서 더 춥기 전에 또 해가 가기 전에 올해는
선생님 댁에 다녀오자고 계획하여 이번 주 월요일에 갔다가 어제(수요일) 돌아왔습니다.
다행해 원주공항에서 제주를 오가는 항공편이 하루 한편씩 있어서 수월하게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 댁에서 편히 먹고자고 왔습니다.
또 저녁에는 표선 해수욕장 근처의 횟집에서선생님이 사주시는 맛있는 회와
매운탕도 얻어 먹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오랫만에 선생님과 마주 앉아 그간 못나눈
농사 얘기와 사는 얘기를 편히 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선생님은 도무지 나이를 드시지 않는 분 같았습니다. 5년 전 마지막으로 뵈었을 때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함이 없으셨습니다. 그 정열도, 의욕도 조금도 감해지지 않은 채
아직도 영원한 청년의 기백을 지니고 계셨습니다. 6년 전 경기도 양주에서 제주로
내려가실 때 몸이 많이 편찮으셨던 사모님도 오히려 이제는 건강이 좋아지셔서
어찌나 활달하신지 우리 부부는 많이 놀랐습니다.

아마도 선생님의 건강의 비결은 두 가지인 것 같았습니다. 우선 현미식, 그리고 소식의
실천이었습니다. 현미식으로 말하면 선생님은 그에 대해 하루 종일 말씀하셔도
다 못하실 것으로 압니다.

평생을 두고 현미를 드신 선생님이기에 또 온 국민이 현미식을 하자고 아주 오래 전부터
강하게 주장을 해오신 분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선생님의 뜻과는 전혀
무관하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거기에 선생님의 안타까움이 있었습니다.
또 하나는 소식인데, 적게 먹는 것 말고도 선생님은 거의 육식을 하지 않습니다.

평생을 바른 먹을거리 농사(정농)에 매진해오신 분으로서 선생님은 음식을 단순히
신체를 움직이는 에너지 차원에서만 바라보시는 게 아니라 음식을 통해 육적 건강은
물론이요, 영적 건강과 영적 신장까지 늘 걱정하고 고려하는 분입니다.
이런 면은 선생님이 독일의 사상가 루돌프 슈타이너의 주장을 수용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 이전에 선생은 일찌기 일본 애농회와의 교류를 통해 우리보다 산업화에서
앞서간 일본이 겪은 여러 상황과 심각한 문제점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또 살펴본 바를
그 자신의 경험과 더불어 받아들인 결론으로 보입니다.

선생님은 또한 견고한 기독 신앙인이기도 합니다. 10대에 교회에 나가기 시작한 이래
청년기에는 우리나라 기독교 신앙의 뜨거운 부흥지인 평양에서, 한국전쟁 이후에는
서울에서 함석헌 선생의 성경 강좌에 빠짐없이 출석하는 열성을 지닌 신앙인이셨습니다.
그 결과 1961년 나이 마흔 한 살에 귀농을 한 것도 바로 \'농사가 가장 선한 직업\'이라는
함 선생님의 말씀에 영향받은 결과였습니다.

지금도 선생님은 오직 성경의 말씀대로 사시고자 애쓰고 또 주장하고 있습니다. 때로
그것이 주위로부터 불편한 오해와 불필요한 편견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지만
내가 아는 한 선생님은 어떤 결정을 하실 때에 성경에 씌여져 있는 얘기냐 하는 것을
자신의 판단의 기준으로 삼으셨던 것 같습니다.

이런 선생님을 모시고 같은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이 참 행복합니다.
비록 저는 그 발굼치에도 미치지 못하는 자세로 농사와 삶에 임하고 있지만 세상에서
참 스승을 만난 사람은 행운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언젠가도 쓴 글에서 제 농사 스승이 세 분 있는데(어찌 농사에만 국한해서 말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바로 오재길 선생님, 경북 상주의 김칠성 선생님 그리고 의성의
김재욱 형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바른 스승을 알고 또 모시고 사는 저는 참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이박 삼일 짧은 시간이어서 그래서 많은 말씀을 드리고 또 들을 수는 없었습니다만
중요한 것은 모두 가슴에 담아서 가져왔습니다. 새롭게 무엇을 다시 깨달았다기 보다는
언제나 선생님이 하시는 주장을 더욱 새기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번 가을에 집에서 틈틈히 읽은 여러 책 가운데 지금은 돌아가신 경북 의성의 김영원
장로님의 <농민 예언자 김영원의 들소리>(도서출판 흙과 생기)가 많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아마도 그래서 이번에 그간에 별러온 것이긴 하지만 후다닥 먼 제주도에
오재길 선생님을 뵈러 간 것인지도 모릅니다. 더 기력이 없어지시기 전에 한 말씀이라도
더 듣고 또 얼굴을 뵙고 오자하여 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다행히 이런 저의 생각은 너무나 건강하게 사시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고난 후
조금 부끄러운 것이 되고는 말았습니다만.

제주의 날씨는 이번에도 변덕에 변덕을 더했습니다.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다가 해가
나왔다가 오던 날은 결국 진눈깨비에 추위까지 몰아쳐서 제주의 기상이 이 강원도
촌놈에게는 그리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주었습니다.

<농당 길벗>란에 너무 오랫만에 쓰는 글이라서 일단은 이쯤에서 맺습니다.
그외 제주에 다녀온 이런저런 얘기는 다음 글에 쓰겠습니다. 몇 년 전 KBS \'인간극장\'에
소개되었던 장길연 씨 부부가 작년에 제주에 정착했다는 것을 얼마 전 우연히 알게 되어
이번 여행길에 잠시 들렀습니다. 그런 얘기를 포함하여 또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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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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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산지기 2008-11-21
    귀하신 분들과 뜻을 같이 하고 삶을 나누는 길벗님의 모습이 부럽습니다. 알고 있어도 행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형편인데, 이루기 위해 애쓰는 삶이 귀하게 느껴집니다.
  • 길벗 2008-11-24
    목사님, 어느새 겨울로 접어 들었습니다. 시간이 참 빠르다는 생각입니다. 건강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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