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당길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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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산골 마을에 울려퍼진 캐럴을 추억하며

  • 길벗
  • 2006-12-17 19: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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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오른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초기 아메리카의 크리스마스> 18세기 초에 \'신세계\'에서 널리 불려지던 캐럴과 앤섬(anthems)들을 모은 판. <캐럴 앨범 2> 본래 단순하고 꾸밈이 없는, 전통적인 캐럴의 복원을 위해 제작된 2개의 앨범 중 하나. <캐럴의 제전>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서 브리튼이 1952년에 작곡한 캐럴집으로 그레고리오 성가 및 15,6세기 캐럴을 토대로 했다. <그레고리오 성가/노엘> 그레고리오 성가에 의한 크리스마스 미사곡집으로 성 피에르 대성당 수도사들로 구성된 성가대의 연주가 그레고리오 성가의 참맛을 느끼게 해준다.
* 당시 잡지에는 모두 18장의 캐럴 음반이 사진과 함께 해설이 실려 있으나 없는 판도 있고, 귀차니즘으로 4장만 올려본다. 그런데 음악을 들려줄 수 없다는 것이 제일 큰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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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996년도인가 <하이파이 저널> 통권 18호에 쓴 글이다. 그 당시 나는 음악 듣기에 꽤나 심취해 있었는데 사실은 오디오의 소리 자체에 더 관심을 기울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어쨌거나 위의 <하이파이 저널> 발행인인 최 모 씨가 강권하다시피 해서 이 글을 쓰긴 썼으나 급히 쓰는 바람에 글 자체는 별로인 셈이다.

그때 나는 음반 사모으는 데에도 쓸데없이 돈을 낭비하고 있었다. 일요일만 되면 청계천 8가 황학동에 나가서 이런저런 판을 집어오곤 했다. 당시에 나는 대학 때부터 사모은 LP판이 약 1200여 장 있었고 CD는 200여 장 정도 소장하고 있었다.

오디오 기기는 바꿈질을 거듭하다가 이 글을 쓸 무렵에는 지금 울산의대에 재직하고 있는 황승준 박사가 자작해준 파워앰프에(KT88 푸시풀), 미국 매코믹사의 패시브 프리 앰프 그리고 턴테이블은 토렌스 520(3012R 암대에 MC 바늘), 스피커는 알텍 604E를 쓰고 있었다.

기억나는 일로는 이 시스템에다가 이미자 씨의 금지곡이었던 \'동백 아가씨\'(황학동에서 오리지널 판을 구했었다)를 들었는데 세상 어디에도 없는 음색이었고, 사람 마음을 울렁거리게 하는 힘이 있었다.

아무튼 회사를 다니면서 유일한 사치를 한 셈인데, 당시 회사의 임원 분이 골프는 빨리 배울수록 좋다고 하면서 골프채를 한세트 선물해 주었는데 음악 듣고 오디오 바꾸는 재미에 그런 거는 관심에도 없었을 때였다.

그 오디오 시스템과 판은 이곳 시골로 오면서 모두 처분을 해버렸다. 오디오는 세운상가 오디오 샵으로, LP판과 CD는 동호인에게 헐값에 넘겨 버렸던 것이다. 드디어 시골로 가는 데 이런게 뭔 소용인가 싶기도 했고, 뭔가 전기를 마련해보고 싶기도 해서였다. 물론 한번도 안쓴 골프채도 세트로 아는 선배에게 그냥 줘버렸지만.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바보짓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음반 만큼은 없애지 말았어야 했다. 그래도 정리하면서 내가 좋아하던 브람스와 캐럴 CD는 몇장 남겨 놓았었다. 음악이 필요없을 줄 알았던 이 궁벽진 시골에서 그러나 음악이 듣고 싶어지는 때가 있었다. 그럴때마다 내 추억과 손때가 묻은 지금은 사라진 그 판들이 생각나는 것이다.

마침 때가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옛날 글을 끄집어내어 이곳에 올려본다.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요즘 글도 안써지고 해서 그냥 때우려는 심사다. 글이 좀 지루해도 용서해주시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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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산골 마을에 울려퍼진 캐럴을 추억하며

길종각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누구나 설레는 법이다. 어떤 이는 크리스마스를 우리 풍습이 아니라는 이유로 백안시 하기도 하지만 이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크리스마스를 거부감없이 받아들이는 것 같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으레 방송국에서부터 호들갑을 떤다. 성탄절이 화이트 크리스마스인가 아닌가에서부터 명동의 인파와 구세군 냄비, 백화점 주변을 보여주면서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사뭇 들뜨기까지 한다ㅣ. 물론 평범한 사람들도 들뜨기는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단순히 연말과 겹쳐서만은 아니다. 분명 크리스마스는 여느 휴가 때와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 나는 그것을 크리스마스 캐럴이라는 음악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캐럴, 세모가 다가오면 거리마다 종일 울려퍼지는 그 노래. 어디선가 캐럴이 울려나오는 것을 들으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푸근해지는 나는 언제부터인가 하나 둘 캐럴 앨범을 모았다. 그러나 캐럴의 기원을 캔다거나 또는 유명하다는 캐럴 앨범을 악착같이 모아서 듣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저 손에 들어오는 대로 하나씩 사서 들었을 뿐이었다.

캐럴은 크리스마스 날까지 듣는 음악이다. 이상하게도 단 하루만 지나도 캐럴은 그 전날 듣던 것과는 판이하게 맛이 다르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한여름에 캐럴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아마도 1월만 되어도 크리스마스 캐럴을 듣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더구나 한여름에는. 그러나 나는 가끔 한여름에도 캐럴을 듣는다. 본래 가무을 위한 노래였기에 계절을 불문하고 들을만한 노래라고 생각한 나는 딱히 어떤 연주랄 것 없이 손에 잡히는대로 몇 곡을 들어보는 것이다. 그럴때마다 크리스마스 캐럴의 경건함을 깊이 느낄수 있다. 또 곡에 따라서는 흥겨운 축제 분위기를 맛보기도 한다.

내가 언제부터 캐럴을 들었을까.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면 30여 년 전, 내가 유치원에 다녔을 때이다. 그때 나는 강원도 평창읍에 살았는데 평창은 강원도에서도 오지 중의 오지로 꼽히는 동네였다. 그때 그 산골에는 레코드점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그런 곳에서 살던 내가 캐럴을 처음으로 들었던 것은 평창 감리교회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에서였다. 겨울이 오면 유치원 선생님은 우리들을 풍금 주위에 불러모아 캐럴을 가르쳤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우리들은 선생님이 가르쳐주는대로 열심히 따라 불렀다. 낡은 교회 건물을 예배당과 유치원으로 함께 사용할 수 밖에 없었던 산골의 조그만 교회. 톱밥 난로 위에는 커다란 양은 주전자가 연신 물 끓는 소리와 하연 김을 폭폭 내쏟고 있었고, 창밖에는 많은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캐럴을 연상하면 꼭 눈오는 정경이 떠오르는 것도 내가 그 눈 많던 산골짜기 동네에 살았던 연유에서 일거다.

캐럴은 프랑스어의 \'Carole\'에서 온 것으로 주로 중세 프랑스에서 둥근원을 만들어 춤을 추었던 원무를 일컫던 말이었다. 그러므로 캐럴이 모두 크리스마스와 관계가 있다고는 볼 수가 없다. 어떤 노래가 캐럴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는 곡의 가사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음악적 형식으로 판단하였기 때문에 현재 우리가 아는 것과 같이 크리스마스 노래만을 한정해서 일컫는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캐럴이 동정녀 마리아, 아기 예수 등을 주제로 했기 때문에 크리스마스 노래인 것 같으나 실은 부활절 캐럴도 있고, 고난절, 승천일, 성령강림 주일 등 1년 교회력의 모든 절기에 맞는 캐럴이 각각 있었던 것이다. 옥스포드 대학에서 출간한 \'옥스포드 캐럴집(The Oxford Book of Carols)에 보면 1년 열 두 달 교회력에 따라 부를 수 있는 200여 개의 무수히 많은 캐럴이 수록되어 있는데 캐럴은 교회에서 뿐만이 아니라 야외에서도, 무도회에서도, 음악회에서도 그리고 집에서도 부를 만큼 광범위하게 불려졌었다고 한다.

여기서 잠깐 캐럴이 탄생하여 발전하여 오던 서구 중세의 분위기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없지는 않겠다. 서구의 중세 음악은 교회 음악이라고 하여도 좋을 만큼 기독교 안에 갇혀 있었지만, 14세기의 르네상스를 맞으면서 많은 변화가 왔다. 이는 당시 라틴어가 공용어이던 사회 속에서 단테나 보카치오, 초서 같은 이들이 그들의 모국어로 작품을 쓴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중세를 벗어나면서부터 캐럴 역시 자국민의 언와와 문화 그리고 세속음악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겠다.

이 시기의 교회 음악은 예배의식, 교회 절기, 성무일과 등과 연관되었고 라틴어를 사용했으나 세속 음악은 자국어를 사용했고 음악 양식 면에서도 종교 음악은 성악, 세속 음악은 기악을 위주로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분류는 르네상스 이후 무효화된다. 왜냐하면 라틴어로 된 트루바투르(13세기경 프랑스에서 라틴어로 노래와 시를 짓던 음유예술인들) 노래가 길거리에서 불려지는가 하면, 세속 음악의 악기였던 오르간이 얼마 안가서 교회에서 예배용 악기로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평신도가 예배 음악에 참여하는 것을 금했기 때문에 회중 찬송이 발전하지 못했으나 종교 개혁과 더불어 루터를 미롯한 개신교 지도자들은 민요 선율에 바탕을 둔 코랄 형식을 장려했고, 이는 점차 화성의 도입, 그리고 성가대의 출현과 오르간의 도입 등으로 변화하게 된다.

그러나 캐럴이 모든 곳에서 즐겨 불려졌으며 발전되어 온 것은 아니다. 캘빈과 그의 영향이 강하게 미친 곳, 즉 영국, 스코틀랜드, 웨일즈, 독일의 일부, 스위스 같은 곳에서는 종교적인 축제를 지키는 것을 부정했을 뿐만 아니라 크리스마스 캐럴을 비롯한 모든 종류의 크리스마스 축하 행사를 금지시켰었다. 이와 같은 청교도들의 캐럴에 대한 극심한 핍박으로 캐럴 본래의 의미가 희석되기에 이르렀으나 1837년 영국의 파커에 의해 \'크리스마스 캐럴집\'이 출판되었고 곧 판을 거듭해 찍기에 이르렀다. 이때 영국 감리 교회의 찰스 웨슬리를 중심으로 캐럴 부흥 운동이 시작되어 많은 캐럴이 새로운 양식으로 만들어졌다. 예를 들면 \'천사 찬송하기를\', \'저들 밖에 한밤중에\' 등 찬송 스타일의 캐럴이 등장한 것이다.

미국 대륙으로 건너간 청교도들도 처음엔 크리스마스를 지키지 않았고 또 캐럴도 가져가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에서 캐럴을 부르게 된 것은 극히 근대의 일이라고 한다. 미국의 목사 홉킨스가 \'동방박사 세 사람\'을 쓰게 된 것이 1857년 경이고, 보스턴의 트리니티 교회 목사였던 브룩스가 \'오 베들레헴 작은 골\'을 쓴것이 1868년의 일로써 이때부터 신대륙에도 옛 캐럴의 전통이 복원되어 전파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크리스마스 캐럴은 예수의 탄생을 찬미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예수의 탄생이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과 깊은 관련이 있으므로 특히 프랑스 캐럴에는 목가적이고 전원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있다. 이탈리아의 나폴리 같은 지방에서는 크리스마스가 되면 언덕 위 목장에서 목동들이 내려와 마굿갓이 설치되어 있는 집 앞에서 춤을 추며 캐럴을 부르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헨델이 작곡한 \'메시아\' 중에 전원 교향곡이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들판의 목자들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또 예수가 태어나던 때의 베들레헴의 평화로움과 조용한 들판에서 잠자는 양떼들, 차가운 밤하늘과 별빛, 경배를 드리러온 동방박사 등을 묘사하는 것도 캐럴의 주요한 내용 가운데 하나이며, 그밖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천사들이 예수 탄생을 축하하는 장면과 그 노래라 하겠다. 천사들의 찬양이 주제로 된 것으로 우리가 쉽게 하는 곡은 \'천사 찬송하기를\', \'하늘 위의 천사들\'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성경 말씀 이외의 내용으로 된 캐럴도 적지 않다.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재미있고, 진귀한 아이디어를 내용으로 한 것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들은 본래 캐럴이 춤을 추기 위한 노래이며, 즐겁고 경쾌한 기분을 노래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교회 예배에서는 부를 수 없는 곡들이다. 즉 \'징글벨\', \'산타클로스가 마을에 오네\', \'빨간 루돌프\', \'화이트 크리스마스\', \'즐거운 크리스마스가 되기를\' 등이 그런 곡들로써 예배에서는 부를 수 없는 즐거운 캐럴이다. 반면 우리나라 공용 찬송가집에도 실려 크리스마스 때 불려지고 있는 노래로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 \'기쁘다 구주 오셨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홉킨스의 \'동방박사 세 사람\'과 \'저 들밖에 한밤 중에\' 등이 있다.

또 크리스마스가 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성극 공연이다. 성극에서는 주로 예수 탄생과 관련한 사건과 기적, 은혜, 믿음, 그리고 경건에 대한 주제를 다루는데 이러한 성극은 르네상스 시기이던 16세기 중세 유럽에서도 이미 대중들에 의해 공연되었다. 이러한 성극에 쓰인 곡들 역시 캐럴이다. 캐럴은 단순히 성악으로만 불렸던 것은 아니다. 악기만으로도 캐럴을 연주한 유명한 곡들이 많다. 렌츠 지휘의 고악기 앙상블인 \'안그리아 크리스마스\'의 하프나 벨을 사용한 연주는 꽤 들을만한 캐럴이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집집을 방문하면서 캐럴을 불러주는 관습이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캐럴링\'이라고 하는 이 풍속은 19세기 초 영국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미국 작가 와싱턴 어빙이 1820년 영국을 방문했을 때 크리스마스날 밤, 창문 앞에서 들려오는 합창단의 아름다운 캐럴 소리에 잠이 깨었다고 한다. 그 합창단은 10여 명의 동네 사람들로 구성되어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창문 밑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화음이 서툴긴해도 아름다웠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캐럴링의 의미는 예수 탄생의 기쁜 소식을 천사들이 전했던 것처럼 크리스마스 새벽이면 구주 탄생의 기쁜 소식을 집집마다 전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캐럴은 그 어떤 노래보다도 생활 속에 담겨 있는 음악이다. 물론 어느 계절에만 불려지기에 1년 내내 잊고 지내다가 불현듯 나타난다. 하지만 캐럴은 곡이 워낙 많고 다양할 뿐만 아니라 음악성이 높고 연주가 훌륭한 것들도 많아 언제 들어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세상살이를 되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캐럴을 좋아하는 나는 이다음 언젠가 때가 되면 일년 내내 캐럴만을 들려주는 조그만 카페를 차리고 싶다. 사람들이 그곳에서 일년 중 어느 한 계절이 아닌 매일 매일을 그처럼 깨끗하며 놀라움과 기쁨으로 충만한 아기 예수를 찬미하는 음악을 듣는다면 이 세상이 조금은 더 밝아지지 않을까 생각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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