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당길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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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하는 날

  • 길벗
  • 2006-11-14 15:3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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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읍내 시장 풍경. 생새우, 쪽파, 갓 등을 사왔다.


아버님도 늘 도와주시고...

서울에 살 때는 늘 파주에 사시는 장모님이 김장을 해서 가져다 주셨는데 이곳에 오고나니
거리도 멀 뿐더러, 시골에 사니 이젠 우리가 담가야한다는 생각이 들어 온 이듬해부터
김장을 해오고 있습니다. 하긴 이곳에 오기 전에는 김장 뿐만이 아니라 된장, 고추장을 비롯해서 왠만한 반찬은 죄 처가집에서 가져다 먹곤 했습니다.

지금은 우리 먹을 것은 우리가 다 해먹는 편입니다. 그야말로 상전벽해가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마누라도 \'내가 이런 것을 다 스스로 해먹다니, 이건 내가 아니야~\' 제 스스로 한탄인지, 감탄인지 모를 소리를 자주 합니다. 저는 서울에 살 때 아파트가 답답해서 1층을 주장해서 살았는데 1층에 살면 사람 지나다니는 소리며, 나무 그늘이며, 눈 내리는 풍경 등이 보여서 그나마 살만 했습니다. 그렇긴해도 거기에서는 장도, 김장도 해먹을 수가 없어서(조건 보다는 당시 우리의 마음과 실력이 없었던 탓이지만) 늘 얻어 먹기만 했던 것입니다.

어제 오늘, 올 겨울 김장을 온 식구(?)가 매달려 했습니다. 온 식구래야 아버님, 저, 마누라이고 아랫집 한수 형님 부인(은자 엄마)가 오셔서 손을 보탰습니다. 우리는 매해 배추 약 100포기 내외를 담는데 이건 아버님이 사과밭 사이에 직접 기르신 겁니다. 재작년에는 약 300포기 정도 해서 서울에 정은 씨에게 일부는 팔기도 하고, 또 박장로님네도 조금 드리고 했습니다. 올해는 영 배추농사가 시원찮아서 겨우 우리 먹을 것만 건졌습니다.

김치냉장고에 가득 담고, 남는 것은 뒤안에 땅을 파고 독을 묻습니다. 너무 큰 독을 묻으면
애 엄마가 김치 꺼낼 때 처박힐 염려가 있어 약간 작은 것으로 하나 내지 두개를 묻습니다.
묻은 뒤에는 옛날처럼 그 위에 인디언 집처럼 짚으로 지붕을 해 이어서 눈비가 들어가지 않게 합니다. 이 모양 만큼은 30년 전 어릴적 시골 살던 분위기 제대로 납니다.

그러고보니 이곳에 와서 장을 담그고, 김장을 하는 생활을 하게 된 것이 다 아랫집 환수
형님네 내외분 덕분인 것 같습니다. 낯선 이 동네에 와서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이 골짜기에
쳐박혀 사는데 환수 형님네가 아니었으면 정말 외로울 뻔 했습니다.

집 지을 때부터, 이후 모든 시골 정착 생활에서 심성 고운 두 내외가 우리에게 보여준
정(情)은 정말 잊지 못할 것입니다. 이웃 사촌이라더니, 딱 맞는 말입니다. 우리 안사람이
이제까지 주위에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에게 언니라거나 형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한번도
본적이 없는데(성격이 완고해서 그런게 아니라 낯간지러운 짓을 잘 못하는 처가집의 생래적인 소박한 성격 때문) 어찌된 일인지 은자 엄마에게만은 이곳에 온지 얼마 후부터 \'형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었는데 아내 왈, 이제까지 본 사람들 중에서 정말 존경할 만한
심성의 소유자라고.....  아마도 그 말은 은자 엄마의 고된 삶에 대한 존경이자 모든 것을
자기 탓으로 돌리고 만사를 조용히 헤쳐나가는 그 놀라운 의지에 대한 감복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 봤습니다. 시집와서 시할아버지 봉양에서부터 하나둘이 아닌 시동생들 뒷바라지며, 치매걸린 시어머니를 오랫동안 돌봐온 것이며, 술병이 난 남편을 대신해 온갖 농사일을 마다않는, 그런데 우리는 이제까지 은자 엄마로부터 단 한번도 자신의 삶에 대한 한탄이나 남편에 대한 험담을 들은 적이 없으니, 가히 알만하지 않습니까?

아무튼 지난 주말에는 은자네가 김장을 했고 그때는 우리 안사람이 가서 이틀을 함께 했습니다. 어제 오늘은 은자 엄마가 와서 함께 하고, 이제 메주 쑬 때가 되면 또 왔다갔다 서로 품앗이를 하게 될 것입니다.

날이 제법 쌀쌀해졌습니다. 햇볕은 이미 기울대로 기울었고, 바람도 삭풍의 전조를 보입니다. 겨울이 오고 있는 것입니다. 때맞춰 김장을 아래 윗집이 모두 끝냈으니 이만하면 올 겨울 날 걱정의 일단은 던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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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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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불출 2006-11-14
    농당 선생 이 글을 미처 보지 못하고 김장했냐고 물었네 그려. 김장 마저 끝냈으니 이제 겨울 잠을 잘 일만 남았네 그려. 이 기회 함 내려 오시지 그래요.
  • 길벗 2006-11-15
    네, 기회 닿은대로 내려가려고 합니다. 가게 되면 미리 연락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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