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당길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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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상의 \'내일을 생각하는 환경이야기\'

  • 길벗
  • 2006-11-02 22:5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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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운동가이자 교수이며 활발한 집필 활동을 하는 박병상 선생. 큰 아이가 현재 풀무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다.

<농당 길벗>에 환경운동가인 박병상 선생의 칼럼을 간간이 싣기로 했습니다.

제목은 선생의 다음 까페 이름인 <내일을 생각하는 환경이야기>로 했고 선생이 그때그때

쓰는 글을 제가 임의로 올립니다. 선생이 이런저런 매체에 기고하는 이 글들은 개인 메일로

도 받아볼 수 있는데 선생의 까페에 들어가서 신청을 하시면 됩니다. 까페 주소는 아래에

밝혀 놓았습니다. 지난 주 풀무 학부모 총회에서 만나 우리 <길벗사과농원> 홈피에 가끔

글을 올리기로 양해를 구하였습니다. 점점 어려워지는 이때 환경과 생태에 대해 좀더

각성을 하자는 뜻으로 비록 제가 쓴 글은 아니지만 좋은 글은 여럿이 함께 읽어야 한다는

생각에 하게 됐습니다. 글의 전재를 허락해주신 박병상 선생께 감사를 드립니다.

*다음 까페 주소 --> http://blog.daum.net/brilsymbio/8613967  

    
가로수 낙엽을 밟으며


서울 월드컵 경기장 근처에는 난이 많던 섬이 있었고, 1995년까지 쓰레기매립장이었던 그 섬은 2002년 월드컵에 대비, 억새가 무성한 하늘공원으로 개과천선했다. 하늘공원은 10월 중순에 억새축제를 연다. 서식하는 동물을 위한다며 낮에 한정 개방하지 않는 평소와 달리 밤 10시까지 문을 열어, 야간 조명에 더욱 흐드러지는 억새 사이로 수많은 이용객들로 가을을 만끽한다.


하늘공원이 억새축제로 가을을 맞는다면 덕수궁 돌담길은 낙엽으로 반긴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시민들이 가을정취를 한껏 맞을 수 있도록 서울시는 한동안 낙엽을 수거하지 않는다. 낙엽을 밟으며 다정한 이와 돌담길을 걷는 기분은 색다를 것 같다. 가을비가 내리면 미화원을 총동원해 수거하는 덕수궁 돌담길의 낙엽들은 다 어디로 갈까. 잘 썩히면 가로수 키우는 양묘장에서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을 텐데. 텃밭 일구는 시민들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유기질 퇴비로 가공할 수도 있겠다.



꽤 오래 지속되었던 여름 더위가 세력을 잃을 즈음, 기상청은 이번 가을의 단풍은 아름다울 것으로 예견했다. 하지만 두 달이나 계속된 가뭄은 고은 빛으로 물들기 전의 나뭇잎을 바싹 마르게 했다. 하얀 뭉게구름 두둥실 떠있는 파란 하늘 아래 불게 물든 단풍이 맑은 계곡에 반사되는 그림을 잔뜩 기대했던 등산객들은 실망이 클 텐데, 낙엽 밟으려던 시민들도 마찬가지다. 바싹 마른 낙엽은 시든 순서대로 떨어져 도로를 어지럽힌다. 발길에 부서져 이리저리 흩어질 따름이다.



대도시 가로수의 낙엽은 수거돼 어디로 갈까. 퇴비로 승화돼 요긴하게 사용되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하다고 한다. 도시의 낙엽은 제대로 썩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 미화원들의 손수레에 실렸다 한꺼번에 소각장으로 들어갈 수밖에. 깊어지는 가을마다 뜰에 떨어지는 낙엽을 태우며 수필을 쓴 이효석의 그윽한 정취와 도무지 비교하기 어렵겠다. 바싹 마른 낙엽이니 소각장 아니라도 잘 타겠지만, 오염물질로 농축되었을 테니 아무데서 태우면 아니 될 것이다. 억지로 썩혀도 퇴비로 적당치 않겠다.



유럽의 도시들은 외곽에 규모가 큰 시민농장을 조성한다. 시민들은 농장에서 농사만 짓는 게 아니다. 농사보다 아담한 정원을 꾸며 주말을 즐기는 가족들이 더 많아 보인다. 도심으로 이어지는 녹지공간을 담당하는 농장은 유사시 식량기지로 활용할 수 있다는데, 그런 농장을 위해 시 당국은 가로수의 낙엽을 모은다. 그들의 가로수는 오염 정도가 우리보다 심하지 않은 것일까. 그럴지 모른다. 도심에 나무가 워낙 많기도 하지만, 디젤 차량에 오염 절감장치를 의무적으로 달아 공기 냄새가 우리와 다르니까. 하늘도 파랗다.



아니, 이 땅에서 낙엽만 썩지 않는 게 아니다. 동네에서 구입한 포도도 여간해서 썩지 않을 게 분명하다. 밤새 먹다 남긴 포도와 수북한 포도껍질을 시골의 평상에 그대로 두었는데, 새벽부터 귀찮게 굴던 파리들이 먹은 포도를 전혀 거들떠보지 않는 게 아닌가. 우리 몸에 들어간 포도는 곧 배설될 테고, 분뇨처리장에 수거된 후에도 미생물의 활성을 방해할 게 틀림없다. 쉬 상하지 않게 방부제 뿌리는 농작물이 어디 포도뿐이랴. 또 농작물뿐이랴. 이 땅의 어린이들이 입에 달고 사는 소시지는 문방구 진열대에서 판다. 안전하다지만, 상온에서 썩지 않는 비결이 궁금할 따름이다.



온갖 농작물을 갈무리하는 가을엔 무언가 보람이 있을 것 같은 기대가 부푼다. 열심히 공부한 학생은 성적이 오를 것을 기대하고, 밤이 긴 겨울에 결혼한 신혼부부는 건강한 아기를 기대할 것이다. 여름을 잘 견딘 직장인은 승진을 기대하고, 졸업을 앞둔 대학생은 취업을 기대한다. 노력 뒤의 갈무리, 가을에 구가하는 권리가 아닐까. 내일을 위해.



내일을 위해 도시의 가을을 파란 하늘로 만나고 싶다. 가로수 낙엽과 어우러지는 파란 하늘은 도시의 보전된 환경에서 나온다. 올 가을은 이렇게 지나갈 거고, 내년 낙엽은 어떨지. 미세먼지 가득한 붉은 하늘을 보며 구겨진 낙엽을 밟는다.(기호일보, 2006.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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