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당길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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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림부 주최 글짓기에서 장려상 받은 현이의 글

  • 길벗
  • 2006-01-04 19: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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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에 농림부에서 농업을 주제로 한 고등학생 백일장이 있었나봅니다.
풀무에서는 현이가 응모했는데 장려상을 받아 상장과 상금 20만 원을
받았습니다.
지역신문인 <홍성신문>에서 알고 이 글을 1월 4일자 신문에 실었더군요.
신문에 실린 글을 이곳으로 다시 퍼왔습니다다. 신문에는 풀무 교정에서 찍은 현이 얼굴 사진도 실렸는데 이 게시판에는 내 재주로는 사진이 함께 게재되질 않아서 현이 사진은 갤러리에 따로 올렸습니다.
글 사이사이에 나오는 중간 제목은 신문사에서 임의로 붙인 모양입니다.
재주 없는 우리 아들을 이렇듯 키워준 <풀무학교>에 감사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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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살리고 자연 살리는 농사꾼 되고파  

길 현<풀무농업기술고 2년>  



내 꿈은 아버지처럼 농사꾼

내 꿈은 농사꾼이다. 어디 가서 이런 소리하면 이해하는 사람이 없다. 이해하길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지만 이런 일이 생기면 슬프다. 사실 나도 내 꿈에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이 1년도 채 되지 않는다. 여기 풀무학교에 와서 2년째 살고 나서야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 전에는 과학자였다. 초등학교 졸업할 때 까진 과학자였다가 중학교 때 우리가족이 귀농을 하게 되면서 내 꿈도 아버지 같은 농사꾼으로 바뀌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나의 꿈’을 써 오라 해서 ‘작업하는 과학자가 되겠습니다’ 라고 써낸 것이 아직도 내 앨범에 남아 있고, 내 중학교 생활기록부에는 ‘특기-삽질’, ‘장래희망-농사꾼’이라 써져 있다. 사실 난 과학자나 농사꾼이나 그게 그거고 똑같다고 생각한다. 농사꾼이 자연 속에서 자연을 보며 연구하고 일하는 것이 바로 ‘작업하는 과학자’아닌가. 그렇게 본다면 내 꿈은 바뀐 적이 없는 셈이다. 다만 자라났을 뿐이다. 하지만 꿈은 한 계단씩 올라간다. 중학교 때에는 그냥 농사를 짓고 싶었을 뿐이었고 우리농업이나 유기농업에 대한 의식이나 사명감은 없었다.

“학교 가기 싫으면 안가도 돼”

평소 홈스쿨링에 관심이 많던 우리 아버지는 나에게 ‘학교 가기 싫으면 안가도 돼’ 하고 말씀하셨고, 그래서 난 모든 게 네모난 콘크리트 아스팔트의 도시에서 벗어나 동생과 함께 날마다 산으로 계곡으로 놀러 다녔다. 이 때 난 어쩌면 이미 어렸을 적 느꼈어야 할 수많은 느낌과 감동을 때늦게 만나 본능적으로 즐기며 지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때 이미 난 이 좋은 느낌들 때문에 이런 곳에서 살고 일할 수 있는 농사꾼이 되기로 마음먹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한 학기를 살고 나니 공부도 하고 싶어졌다. 집에 있으니 계속 놀기만 했지 이른바 홈스쿨링은 아니었다. 그래서 결국 원주에 있는 삼육중학교 기숙사에 들어가게 됐다. 나도 이렇게 놀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삼육학교에 가서는 열심히 논 만큼 열심히 공부했다. 학생회장일도 하고 공부방에서 밤늦게까지 공부했다. 그래도 농사꾼의 꿈은 항상 마음에 품고 있었다. 그래서 선생님께 부탁해 학교 텃밭을 2평정도 빌렸다. 집에서 옥수수씨와 땅콩씨를 가지고 와 인터넷을 뒤져가며 자료를 찾아 심고 퇴비도 줬다. 결국 방학 때 관리를 안 해 내 키보다 큰 잡초 속에서 손바닥만한 옥수수 다섯 개와 여름에 수확하는 줄 알고 모조리 뽑아버린 땅콩줄기만을 거뒀지만 어쨌든 좋은 경험이었다. 생명의 위대함을 알았다고 하면 뻔한 거짓말이다. 난 실패했을 뿐이다. 하지만 난 농사꾼의 꿈을 위해 이때 이미 한걸음 내디딘 것이다. 선생님들은 이런 나를 보고 혀를 찼지만 나중에 내가 농고를 간다고 했을 때 반대하지 않으셨고 응원해 주셨다. 풀무학교 다른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선생님이 반대해 많이 힘들었다고 하는데 난 다행이었다.

소년에게 다가온 위대한 자연

이 학교에서 내가 배운 건 공부하고 2평짜리 농사경험 말고 또 있다. 삼육학교는 기독교학교다. 그래서 주일마다 예배를 봤고 하나님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었다. 자연에 대해서 생각할 때에 이 하나님이란 분은 내게 큰 영향을 주셨다. 자연은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만들었다는 사실이 내게 진지하게 다가왔을 때 난 또 한 계단 자랐다. 자연이란 말은 ‘스스로 있는 것’ 이란 뜻이지만 그건 아마 스스로 돌고 돌며 살아있다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분명 그걸 스스로 돌아가게 하시는 분이 있다. 그게 하나님이든 뭐든 난 그게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러니까 이 자연을 다스리는 누군가가 있다고 믿는 것이 진정한 농사꾼의 시작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유기농업의 시작도 사람이 자연의 수많은 고리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사실은 좀 더 나중에 깨달은 사실이다. 이때는 자연이 아주 섬세하고 치밀하고 그러면서도 유연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졌다는 사실과 농사를 짓겠다는 마음이 아직 만나지 못한 때다. 단지 자연이 좋았던 소년에게 자연이 위대하게 다가온 것뿐이다. 자연과 농업을 따로 생각했고, 사명감도 없었고, 사회의식도 없었다. 난 그저 아주 조금 특이한 꿈을 가진 학생이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농고 따위엔 가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결국 아버지에게 등 떠밀려 지금의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에 오게 됐다. 아버지는 내게 이 길이 딱 맞는다고 확신하셨던 거고 결국 아버지 판단이 맞았다.

난 지금 풀무학교 2학년이다. 여기 풀무학교에서는 유기농업을 가르친다. 여기 와서 하나님과 자연과 농사는 따로따로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모든게 살아 있고 그 살아 있는 게 보기에 따라 하나님이고 농사다. 하늘에 떠가는 구름들이 날마다 날마다 짓는 표정이 다르고 세상은 생겨날 때부터 한 번도 같은 적이 없다. 바람은 어디선가 불어와 나뭇잎 풀잎을 끊임없이 흔들고 그 흔들림에 몸을 실어 풀벌레와 새들이 노래한다. 벼는 씨를 뿌리면 키가 자라 고개를 숙이고 어김없이 거둔다. 이런 곳에서 난 물 만난 고기마냥 놀고 싶은 만큼 놀고 읽고 싶은 책 읽고 하고 싶은 공부 하고 밭에서 일도 하며 내 꿈을 키워 간다.

자연속 한개 고리가 되어

내 꿈은 사람 살리고 자연 살리는 농사꾼이다. 이 시대 내 나이 그 누구도 꾸지 않을 것 같은 꿈이다. 그래서 자주 흔들리고 내가 하는 일이 과연 내 길인가, 이 길로 가서 내가 바라는 이상을 이룰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한다. 처음에는 ‘내가 누군가?’ 하는 고민부터 시작했다. 이런 고민을 하며 읽은 책 가운데 ‘뜻으로 본 한국역사’, ‘짚 한오라기의 혁명’, ‘농업에 대한 사랑’들이 있다. 책을 읽고 깊게 감동했고, 많이 생각했다. 결국 농사가 내 길인 것이 분명하다는 확신을 하게 됐다. 하나님은 너를 사랑하신다고 하는 성경과 네게 뜻이 있다고 하는 ‘뜻으로 본 한국역사’, 그리고 농사에 아주 넓은 길이 있고 넌 아직 아무 것도 모른다고 말해 준 ‘짚 한오라기의 혁명’과 이제 넌 위대한 꿈을 품을 때라고 말해 주며 농사로 네가 바라는 이상을 이룰 수 있다고 일러준 ‘농업에 대한 사랑’….

난 이제 의심하지 않는다. 난 농사꾼이 될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자연을 잘 가꾸고 그 속에서 즐거워할 뿐인 농사꾼이 되려 한다. 이 꿈에 대해 생각하고 확신하고 내가 자라는 걸 느낄 때마다 난 온몸의 피가 탄산음료로 변하는 것 같고 그 탄산이 머리꼭대기로 모여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선다. 이것이 꿈을 가지고 키워나가며 믿는 젊은이의 마음이다. 이런 마음으로 농사를 지을 것이다. 자연 속 한 개 고리가 되어 생명을 죽이는 농사가 아닌 그 속에서 즐거워하는 농사꾼이 될 것이다. 내 꿈은 농사꾼이다. 누가 뭐래도 농사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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