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당길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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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1)

  • 농당
  • 2005-04-22 09:3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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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에도 많은 유혹이 있다는 걸 깨닫는 요즘이다. 우리 <길벗사과농원>은 사과에 대해 친환경 인증(저농약)을 작년부터 받았다. 정확히 말하면 사과밭(1252번지) 땅에 대해 각종 검사를 내 돈 내고 받아 인증을 득한 것인데 사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농부로서 내 양심에 대한 일종의 증표이기도 한 셈이다.

나는 처음에는 좀 반발심이 생겼다. 농사를 짓는 사람으로서(나와 남의 먹거리를 생산한다는 뜻) 내가 농약(또는 제초제)을 안쳤다든가 또는 덜 쳤다든가 하는 문제는 농부의 양심에 속하는 문제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쳐놓고서 안쳤다고 일지에 기록한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감히 그것도 정부 기관이 농부의 양심을 인증한다는 것에 거부감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도 현실(소비자)이 그런 인증을 요구하니까 꾹 참고 하는 수 없이 기관의 인증 절차를 밟아서 통과했다. 그런데 요즘 와서 이런 저런 농사(사과 외에 남의 밭을 좀 빌렸다. 거기에 밥에 놓아 먹는 얼룩콩(이곳에서는 줄콩이라고 한다)과 단호박(밤호박이라고도 한다), 찰옥수수 그리고 우리 된장, 막장 담을 흰콩 등 총 5천 평 농사를 지으려고 준비를 하다보니 '유혹'의 마음이 든다.

그것은 바로 좀더 농사를 편하게 짓자고, 좀더 수확을 많이 보자고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인데 예를 들면 2천 평 메주콩(흰콩) 농사를 이제까지 무농약으로 해왔는데 수확도 관행농사보다 형편 없고 또 손도 많이 가서 '에잇, 올해는 나도 제초제 치고 편하게 해봐?'하는 마음이 어느 순간 슬며시 드는 것이다.

이런 순간, 나는 스스로 깜짝 놀란다. 아니 나도 결국은 농사 5년 만에 이렇게 되어가는 것인가? 옆에서 사람들이 도와주지는 않을 망정 무농약 농사에 대해 가재미 눈을 뜨고 보는 것도 사실 이런 '약한' 마음이 들게 하는 한 이유이기도 하나 어쨌든 정신이 희미해져 가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래 농약 한번 쳤다고 어디 표나? 안쳤다고 해도 그만이지 뭐.' 이게 바로 유혹이다. 인류의 역사는 유혹의 역사다. 판도라의 상자이래 숯한 유혹에 굴복한 것이 역사의 앞뒤를 바꾸어놓았다.

소비자 제위들이여, 농산물이 너무 이쁘기를 바라지 마세요. 너무 때깔이 좋기만을 기대하지 마세요. 좀 못생겼더라도 농부의 정성과 마음이 좀더 들어간 농산물을 사랑해주세요.

다행히 유혹에 넘어가긴 글렀지만(?) 생각해보면 인간이란 순간순간 유혹에 넘어질 수 있기에 때로 수양과 훈련이 필요하다. 약해진 의식과 정신은 계속적으로 단련되어야 하고 또 반성의 기회를 가져야 한다.

하루하루가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쁜 요 며칠이다. 5월은 더 바쁠 것이다. 아직도 농사에 철이 안든 이 초보 농군(이제는 초보라는 말을 떼어야 할 것 같지만 사실 꼭 그렇지만도 않다)은 그래도 마음만은 즐겁다. 모든 것을 하늘에 맡겨놓아야 하는 농사이기에 농부의 마음은 사람과 조직이 아니라 하늘에만 매여 있을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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