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당길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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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미국에서 동창생이 오다

  • 길벗
  • 2023-10-31 20: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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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에이에 사는 재현 부부와 오하이오 콜럼부스에 사는 승업이 부부가 농장에 왔다.  


춘천에서 하숙을 하며 보낸 3년의 고교시절, 나는 때늦은 사춘기를 겪느라 좀 방황이 심했었던 것 같다. 그때 1학년 때 같은 반이었고 3년 내내

학교 도서관 도서부를 같이 했던 승업이와의 우정이 이렇게 오랜 세월 이어질 줄은 그때는 몰랐다. 재현이는 고교 때는 같은 반을 한 적이 없어

잘 몰랐지만 대학을 같이 오는 바람에 또 알게 된 동창이다. 

승업이는 고대 농경제학과를 나와 미국으로 석,박사 유학을 떠났는데 비록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우린 부지런히 서로 안부를 묻고 기념일

(내 결혼식 등) 을 챙기며 지냈다. 그러다 학위를 받고 국내로 돌아와 연구소에 연구원으로 있을 때는 아이들과 같이 속초로 온 가족이 함께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러다 2000년대 초반 어느 해, 나는 이미 홍천으로 귀농해있었을 때 승업이가 다시 미국으로 들어간다고 해서 춘천에서 만났다. 아이들 교육을 위해

좋은 직장을 마다하고 고생길을 나서는 친구를 나는 격려해주었다. 그때 승업이가 아이들 다 자립하고 나면 다시 춘천으로 돌아오겠다고 했는데 그때는

그 시간이 내게는 까마득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어느새 그때 약속했던 그 시간이 아니 세월이 이렇게 지나갔다. 원하던 대로 승업의 남매는 모두

미국에서 잘 컸고 좋은 학교와 직장을 얻어 자립을 했다. 

재현이는 대학 재학 중에 온가족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는 바람에 다시 UC 버클리에 입학해서 학교를 마쳤고 졸업 후 주정부(연방정부?) 세관 공무원이

되었다. 내가 1998년에 캐나다 가는 길에 안사람과 엘에이에 잠깐 들렀을 때 연락을 해서 얼굴을 본 적이 있다. 그때 보고서 이번에 재현이가 한국에 한 달 간

여행을 온 덕분에 25년만에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유붕이자원방래 불역낙호야 라는 성현의 말씀이 딱 들어맞는 풍경. 지역의 유명한 막국수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고 어두워질 때까지 끝없는 얘기를

나눴다. 안사람들도 오랫만에 만난 자리여서 그런지 서로 묻고 얘기하는 시간이 길었다. 

특히 재현이와 그 안사람은 소위 와인 마니아. 내가 보니까 일반인으로서는 그 수준이 아마 최상급일 정도로 정보와 지식과 경험이 풍부했다. 덕분에 새로운

얘기도 많이 듣고 또 양조장 운영과 마인드에 대한 가르침도 많이 받았다. 나는 이곳에 와서 농사짓고 산지 이제 만 23년. 그냥 촌사람이 다 되었다.

나도 한때는 앞서가는 젊은이의 의식을 갖고 살던 때가 있었는데 그래서 누구보다 책도 많이 보려고 노력했고 못지않게 술자리도 많이 좋아했었는데 

이제는 퇴역군인같은 쓸쓸한 나이에 도달한 촌노가 되었다. 상심하는 건 아니고 인생이 다 그런 것이고 그게 자연의 이치니까 순응하면서 받아들인다.

아무튼 어떤 분야에 깊은 지식을 갖고 있거나 경험을 가진 이를 만나면 이 나이에도 경청하게 되고 존경하는 마음이 생긴다. 

재현이는 내가 엘에이에 오면 정말 좋은 와이너리(나파밸리나 소노마밸리 같은 상업적이고 거대한 와이너리 말고) 즉 개인이 하는 작고 오래된 꽤 괜찮은

와이너리들을 구경시켜 주겠다고 한다. 5년 전에 미국 동부에 사는 영범이와 형진 형에게 가본게 마지막. 그때도 농사와 관련된 정보를 얻으러 간 것이었는데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엘에이와 시애틀, 포틀랜드 등에 가보아야 할 것이다. 와이너리와 사이더리를 모두 보고 올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빡빡머리를 하고 일본식 교복을 입고 검은색 교모를 쓰고 다니던 그때(78년~80년), 교련시간에 목총을 들고 제식훈련과 군사훈련을 받던 그때, 선생님 중

한 분은 수업시작 종이 울리면 교무실에서부터 담배를 피며 복도를 천천히 걸어와 교실 문 앞에서 담배를 신발로 비벼 끄고는 문을 열고 들어오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그때가 어제 같고 그제 같은데 이제는 머리에 서리가 내린 나이가 되었다. 그래도 저렇게 웃고 만날 수 있으니 이 순간 만큼은 어쩐지 그 세월로

돌아간 듯한 인상들이 아닌가. 남은 시간이 얼마가 주어졌는지 모르지만 여유가 허락하는대로 가끔 보면서 인생 후반을 지혜롭게 살아가는 내 자신과

친구들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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