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이야기

농사이야기

어느새 봄이 오고

  • 길벗
  • 2022-03-03 17: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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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를 파쇄해서 이처럼 죽같이 만들어서 탱크로 이송한다.
파쇄된 사과 머스트는 세니터리 로브 펌프(이 펌프 가격이 5백만 원이 넘는다는)를 통해 탱크로 이송되어 하룻밤을 재워두게 된다.
마세라시옹 전용탱크가 따로 없어 작년에 이렇게 콘형 탱크를 주문해서 쓰고 있다. 이제는 구조를 다 알게 되어 주문 제작을 할 수 있지만 작년까지는 잘 이해를 하지 못했었다.
기존 사과즙 공장 외에 애플사이더 양조장에도 이처럼 따로 사과 세척기를 두어 사이더 만드는 사과도 깨끗이 씻어서 사용하고 있다.


세월은 물처럼 흐른다. 시간은 마치 부엉이 같다. 어느새 3월.

애플사이더는 그간 두번의 랙킹을 거쳤고 이제 숙성을 하면서 계속 청징이 진행되고 있다. 병입 직전 필터링을 한번 해야 할 것이다.

그 사이 서류작업을 해야 한다. 현재 박스 디자인 작업에 들어가 있고 길벗사이더하우스(애플사이더) 전용 홈페이지도 제작 중에 있다.

일단 4월 중에는 750ml 미디움 스윗(medium sweet) 스틸 <홍천애플사이더>가 출시될 것이다. 오늘 라벨 디자인을 의뢰했다.

그리고 이 제품을 스파클링으로 내놓지 못하는 이유는 현재 보유하고 있는 탄산병입기가 330ml 전용이기 때문이다.

750ml 와인병에도 스파클링 애플사이더를 만들어 내놓으려면 또다시 전용 탄산병입기를 구입해야 한다.

작년에 몇 번 메일을 주고 받은 캐나다 회사의 제품은 우리 돈으로 3천만 원 정도. 국내 수제맥주 공장 몇 곳에서 이 장비를 사용하고 있다.

330ml 병에 담을 애플사이더는 당연히 스파클링이다. 다만 중국제 이 장비를 아직(들여온지 6개월이나 지났는데도) 시운전도 못해봤다.

이제 시작을 해야 한다. 계획으로는 330ml 애플사이더는 5월에는 나와야 한다. 이름은 apple rock이다. 라벨 디자인은 이미 작년에 해두었다.

와야리 사과밭에 가서 이제 슬슬 농사도 지어야 한다. 어제 오늘 햇살이 따스하다. 바람은 아직 차지만.

오늘은 지난 주에 구입한 사과(작년에 내 무농약 사과농사 망해서 부족한 양을 채우기 위해 지역 농민의 사과를 60박스 구입했다)로 애플사이더를

조금 더 만들기 위해 첫 작업을 했다. 오늘 작업은 위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일단 세척하고 파쇄해서 머스트를 만들어 하룻밤 재우는 작업이다.

재작년 프랑스 노르망디 사과농장에 가서 직접 보고 듣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이더(시드르)에 관한 책 여러 권을 읽은 결과 내가 도입한 방식이다.

물론 이 방식은 프랑스 사람들만 하는 작업이다. 이를 따라 일부 다른 지역(미국 서부) 업자들도 견학을 와서 배워간다고는 한다. 

내일은 이 사과반죽을 짜서 즙을 내야 한다. 짜낸 즙은 키빙을 위해 또 다른 탱크에서 며칠을 보내야 하고 그 이후 발효에 들어가는데 여기서부터가

아직 나의 고민과 현실적 문제가 남아 있다. 그 첫째는 우리 사과의 품종 문제인데 이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서양인들은 포도와인처럼 술 전용

품종이 사과에도 있다. 걔네들은 심지어 요리에 적합한 사과 품종도 가지고 있고 사과마다의 특성을 자세히 알고 기술해놓았을 뿐 아니라 적용하는

과정도 다 풀어놓았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오직 생과(술도 아니고 요리도 아닌 그저 입으로 들어가는) 품종만 그것도 후지(부사)만 그득한 것이다.

후지(부사) 사과는 서양인들 분류로는 디저트 사과이다. 즉 달기만 한 사과인 것이다. 쓰고, 시고, 텁텁한 그런 품종의 사과는 우리에게는 아예 없는 것이다.

이렇게 푸념을 늘어놔봐야 별무소용. 아무튼 이런 한계 속에서 걔네들처럼 맛있는(프랑스에서 먹어본 시드르는 정말 먹을만 했다) 애플사이더(시드르)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많은 고민과 시도를 현재 하고 있다. 아마 이런저런 고민 끝에 어떤 결론이 나오려면(현실 제품) 3년은 걸릴 것이다.

아무 생각없이 들어간(부모의 강권) 대학에서 적성에 맞지 않는 학과에 간 나는 그야말로 수업도 시험도 거의 멀리한 채 아웃사이더로 놀았다.

다행히 나와 비슷한 무리들이 있는 곳을 발견해서 다행히 그네들과 재밋게 보낼 수 있었다. 그들중 몇몇은 나중에 유명한 소설가와 시인들이 되었고

나도 재학중에는 학교신문에 소설도 연재하고 교지에 시와 소설을 게재한 적도 있지만 그러나 재주가 일천함을 일찌기 깨닫고 졸업과 동시에

그저 생활인의 자세로 사회에 나왔다. 아주 자유롭고 분방한 대학생활을 만끽하고(학점은 개판. 군대도 강제징집 당하고) 그러나 좋은 선배들을 만나

다행히 세상을 보는 눈이 편협하게 된 것 같지는 않다. 

친구들은 은퇴하는 나이에 나는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만든다고 이 개고생을 하고 있는데 생각해보니 다 업보(팔자소관)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에 얽매이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니 아마 그래서 직장 생활 10년도 채 못채우고 마흔도 안된 젊은 나이에 귀농을 했나보다. 요즘 걱정이 많다.

과연 내가 만든 이 술이 누군가 돈을 지불하고 사먹을만한 것이 될 것인가. 과연 부끄럽지 않은 일인가.

일주일 뒤면 선거. 또다시 이명박근혜 시절로 되돌아가게 될까봐 잠이 잘 오지 않는다. 그런 터널속같은 어두운 시절이 또 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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