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이야기

농사이야기

가을이 지나가는 시간

  • 길벗
  • 2021-10-25 07: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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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중순, 서울에 있는 발도르프 유치원 원생과 선생님이 사과따기 체험을 하러 다녀갔다. 아이들의 유치원 졸업여행
 
몇 주 되지 않는 양광사과를 매년 10월이면 서울행복중심생협에서 꼭 입고시켜 달라고 신신당부. 그래서 올해도 얼마되지 않지만 3kg 박스에 담아 매장에 배달을 했다. 양광사과는 봉지재배를 해야 하는 품종인데 우리는 무대재배를 하니 표피가 거칠기 이를데 없다.
 
매년 10월 하순에 춘천 예치과 송원장과 가족, 그리고 그 후배 가족 등 3가정이 아이들 데리고 사과따기 체험을 하러 꼭 온다. 올해부터는 이러한 행사를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 분들과의 오랜 인연으로 아이들이 클 때까지 좀더 하기로 했다.


홈페이지에 한 달 넘게 들어오지 못할 만큼 바쁘고 몸도 피곤했다. 추석 전부터 사과즙 가공을 원하는 농부들의 요청에 사과즙 공장을 열어야 했고 뒤이어 이런저런 일들이 늘 넘쳤다.

홈페이지에 글과 소식을 자주 올려야 하는데 어찌나 몸과 마음이 바쁘고 피곤한지 게으름을 오래 피웠다. 그 사이 올해도 작년에 이어 작황이 망한 홍로사과(무농약 인증)를 겨우 1톤 트럭으로 1차 수확해서 사과즙을 짰고 얼마되지 않는 양광사과는 그나마 행복중심에서 두세번 요청해서 하는 수 없이 3kg 박스로 조금이나마 공급을 했다. 나머지는 역시 즙을 짜서 보관중. 앞으로 스파클링 사과즙(병)을 시험하려고 IBC탱크에 보관 중이다. 

올해부터는 일체의 사과따기 체험을 하지 않을 계획이었으나 발도르프 어린이집 졸업반 아이들과 춘천 예치과 송원장 일행은 어쩔 수 없이 받기로 했다. 오랜 인연과 아이들에게 추억을 선사하는 일이라 그랬다. 또 올해부터는 사과 생과 판매를 거의 안할(못할) 생각으로 봄부터 적과(열매솎기)도 대충하고 농약도 대충 치고 했는데 역시 수확철이 되니 이곳저곳에서 주문이 몰린다.

사과 크기가 작으니 고민이 많다. 재작년부터 나의 경우는 이제 더이상 사과밭 일손을 구하기가 어려워졌다.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해졌다. 오랜 기간 우리 사과밭에 오시던 인근 동네 아주머니들은 모두 지역 농협 공동선별장 작업장으로 다 빠져나갔다. 이 분들이 그나마 지역에 남아있는 마지막 인력이었는데 지역 농협이 그간 안하던 선별장을 짓고 사람을 모집하니 모두 그리로 간 것이다. 이집 저집 노지 농사에 일당벌이를 하던 아주머니들에게 실내에서 몇 달 안정적으로 일자리를 제공하니 누가 남의 집을 다니겠는가.

그래서 재작년부터 불법 동남아인들을 농사일에 대주는 브로커들이 지역에 몇몇 생겨났는데 농가마다 경쟁이 치열하다. 작년 봄부터는 코로나 사태로 그나마 있던 이들이 돌아가고 새로 유입되지 않아 이들의 인건비가 많이 오르고 원하는 만큼 인원도 챙기기가 더 어려워졌다. 결국 사과농사는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느냐에 따라 품위가 결정되는데 인력 투입이 제대로 되지 않으니 고품질 생과 판매는 언감생심, 더이상 제대로 된 농사를 짓기는 불가능해졌다.

20년 가까이 알고 지내는 의성의 사과농사꾼 재욱 형님네는 사과농사 규모가 만 오천 평이나 되지만 그분네는 며느리가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3세다. 그래서 러시아 말은 하니 그 며느리가 러시아 사이트에서 구인을 해서 일년 내내 러시아 인들이 관광비자로 들어와 단기간 일을 하고 나가고 다시 들어오고 해서 그나마 일손 부족을 덜었다고 한다. 그 형님네도 평생 사과농사를 짓고 있는데 그동안 인근 상주나 안동에서 오던 지역민들은 이제 모두 고령이 되어 더이상 사과밭에서 사다리를 타는 수고를 할 수 없는 형편이었는데 다행히 러시아 일꾼들이 수시로 들어와 대체 인력이 된 것이다.

지금 시골 농사 형편은 모두 이런 외국인 노동자의 손에 달렸다. 신규 인력 공급이 되지 않으니 현재 남아있는 동남아 노동자들의 임금이 다락같이 올랐다. 이들도 서로서로 자기네끼리 연락을 하면서 이곳저곳의 형편을 뻔히 아니까 배짱이다. 그리고 조금만 힘이 들면 바로 야반도주. 작년까지 월 180만원 정도 하던 이들 임금이 올해는 모두 210~240만원으로 올랐다. 그래도 지역 농민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이들을 고용할 수 밖에 없다.

코로나 때문으로 모든 형편을 돌리는 것도 한편 마음이 아프다. 요즘 시골엔 그야말로 젊은이가 전무하다. 어제 밤에도 공중파 방송에서 시골의 노령화, 지역인구의 공동화 현상을 다루고 저출산 문제를 제기하던데 내 생각으로는 해답이 없는 일이다. 그저 이렇게 흘러가다가 많은 기초지자체들은 더이상 버티지 못할 것이고 결국 광대역으로 행정구역을 묶어야 할 것이다. 대도시와 중도시 중심으로 인구가 몰리고 이런 시골은 황량한 들판과 골짜기로 방치될 것이다.

누구 말마따나 버티는데까지 살면서 살아보는거 이게 아마 미래에 대한 계획이라면 계획일까. 지역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아이들 숫자는 계속 줄어들고 있고 아마 10년 안에 면소재지의 초등학교는 하나만 남게 되고 어쩌면 그나마도 위태로울 수 있다. 나의 농사도 결국 내 나이가 버틸 수 있는 한계, 생각으로는 앞으로 10년(과연), 우리 아이들이 현재의 직장을 버리고 이곳에 오지 않는 한 어쩌면 나의 평생 소원인 대를 이어 농사를 짓는다는 꿈은 그야말로 꿈으로 끝날지 모른다. 지난 20년, 우리 아들 중 하나는 이 업을 이어받는다는 가정 하에 빚을 지면서까지 농토를 늘려왔는데 이제는 오히려 걱정이 되는 형편이 되고 말았다.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해야 하는 것일까. 이제 더이상 생과 판매를 포기하고 그저 가공용사과(사과즙과 애플사이더)만 농사를 짓는 이 현실을 받아들이는 내 자신은 스스로도 씁쓸하고 일단 수입이 줄어드니 걱정도 많다. 그나마 이곳 토박이 사과농사꾼들은 형제, 친척들이 농번기에는 내려와 손을 보탠다는 후문이다. 우리 집 같은 이북 따라지는 친척도 없고 그나마 하나 있는 서울 사는 동생은 자기 사업으로 늘 먹고 살기 바쁘다. 

이제 이번 주부터는 부사 사과 수확을 해야 한다. 그저 우리 부부 둘이서 매일 조금씩 따기로 했다. 더는 기댈데도 부를 사람도 없다. 그리고 수확하는대로 사과즙을 짜서 일부는 파우치에 담아 팔고 나머지는 통에 담아서 올 겨울부터 생산할 계획인 스파클링 사과즙과 애플사이더 시험생산에 사용해야 한다. 농사를 나름 오래 지었지만 이제 또 새로운 시작이 기다리고 있다. 사실 지난 9월부터 이런저런 걱정으로 밤에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스트레스가 크다.

그러나 누구 말마따나 다 내가 저지른 일. 상황에 대한 변명을 하자면 끝이 없겠지만 그저 운명이려니 하고 이 터널을 통과해야 한다. 세월은 참 빨리도 간다. 어느새 서리가 내리고 마당에 살짝 얼음도 얼었다. 겨울. 쉬는 시간이 아니라 이제는 더 바빠진 계절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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