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이야기

농사이야기

한 여름, 곧 추석이 오겠거니

  • 길벗
  • 2021-07-18 08: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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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름 과수원의 일상은 그저 풀 깍고 때 맞춰 방제(농약 치는 일)하는 것이 전부다. 그래서 다른 농사꾼들과 달리 사과, 배 농사(물론 한 여름에 수확을 하는 복숭아 농사는 예외)는 이맘 때가 그나마 한가한 시절이다. 뜨거운 한낮에도 일을 해야만 하는 노지 작물농사(오이나 고추 등)에 비해 베짱이가 될 수 있는 유일한 시기. 사진은 와야리 5년차 부사 밭.
7월 초 어느 날 이웃 설치미술가 박 선생께서 데크에 놓고 쓰라고 이 야외 테이블을 직접 짜서 선물을 해주었다. 파라솔까지 끼워서. 느닷없는 선물에 감읍하여 저녁식사를 대접했다. 그러고보니 박 선생 내외가 우리 농장 이읏으로 이사를 온지도 어느덧 6년. 동갑내기로 서로 의지하고 살 동무가 생겨 좋아했는데 그간 자주 왕래하며 좋은 친구로 이웃으로 잘 지내고 있다. 한 낮에 가끔 소나기가 지나가고 선선한 저녁이면 이곳에 앉아 앞산 푸르름을 감상하는 일이 잦다.


어느덧 7월도 중순. 코로나가 다시 확산세여서 비록 시골이어도 조심스럽다. 하루 중 아무도 안만나고 그저 과원과 집을 오가는 일이 많지만 뉴스를 볼 때마다 걱정이 많다. 지난 6월 신청했던 홍로 사과밭 무농약 인증은 서류 신청과 잔류농약 검사, 토양과 수질 검사를 모두 통과하여 이제 인증서 받을 일만 남았다. 하긴 올 봄 농약도 비료도 하지 않으니 나무 상태도 안좋은데다 혹진딧물의 급격한 공격에 잎이 많이 상해서 나무 모양새는 별로다.

그래도 이젠 어쩔 수 없다. 홍로 사과밭(2,300평)만이라도 무조건 무농약을 해야 한다. 인증심사원이 와서 여러가지를 보고 또 얘기를 나누다가 화학비료도 안칠 참이면 곧바로 전환기 유기 인증을 신청하시라고 권한다. 그러면 2년 뒤에 유기농 인증을 신청할 수 있다는 건데 그건 아직 좀 더 생각을 해보아야 한다. 유기농 농사는 아직 자신이 없다. 현재까지 화학비료를 비록 시비하지 않고 있지만 그러나 유기농의 그 까다로운 기준을 맞추어 농사를 지을 자신이 지금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준비는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다.

올해, 내년 홍로 사과밭 무농약을 실험해보고 자신이 붙으면 나머지 부사 사과밭까지(일부 양광 포함) 무농약을 하고 싶은 참인데 이렇게 하려는 이유는 간명하다. 첫째, 농촌에 더이상 가용할 수 있는 인력이 없어서 고품질 사과(내용이 아니라 외관을 따지는)를 생산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동남아 인력이 그나마 손을 보탰는데 작년부터 코로나로 인해 유입이 안되기 때문에 나로서는 어쩔 수 없이 손이 많이 가는 농사를 포기할 수 밖에 없다. 둘째, 나 같은 소농이 그나마 살아남기 위해서는 친환경농업(인증) 밖에는 없다는 생각에서다. 한때는 관의 인증을 무시하기도 했다. 사실 이 문제는 할 말이 많지만 생략. 어쨌든 내 혼자 내 양심으로 친환경 농사를 짓는다는 것이 아무런 도움이(수입면에서) 되질 않았다. 그래서 결국 인증을 받기로 했고 그래야 거래를 할 수 있고 또 그나마 제값(가치)을 받을 수 있다. 왜 소농이 친환경농업을 지어야 하는냐는 또다른 이슈. 셋째 결국은 작년에 지은 사과즙과 애플사이더 가공시설 때문이기도 하다. 만약 이 시설이 없었다면(하긴 그래도 무농약 농사를 지어야 했겠지만) 좀 더 고민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작년부터 정부가 가공식품에도 무농약 인증을 해주는 제도를 만들었기 때문에 내가 무농약 농사로 지은 사과로 사과즙이나 애플사이더를 만들면 가공품 포장에 이 표시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니 무농약 농사를 할 이유가 충분히 생긴 셈이다.

나의 귀농 이유 중 하나는 그야말로 생태적인 농사를 짓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꿈은 귀농 1년 만에 박살이 났고 결국은 관행농법으로 사과농사를 시작하게 되었고 그 후 몇번의 시도를 했지만 또 역시 실패로 끝났던 것이다. 이제는 어쩔 수 없이 무농약 농사나마 지어야 할 이유와 현실이 충분 조건으로 되었기 때문에(물론 떠밀려 된 면이 있다) 시작하는 것이다. 

사람들(소비자)이 내가 만든 사과 가공품에 무농약 마크가 붙는다면 더 비싼 돈을 지불하고 구입할까? 그리고 나도 결국 삶의 태도로서가 아닌 그저 돈벌이 수단으로 친환경농사를 짓는 그런 농사꾼의 대열에 합류하는 것인가? 어쩌면 좀 멋있어보이고 싶은 속물적인 근성이 아직 남아서인가?

농사와 농사짓는 행위에 대한 그 무슨 거창한 화두와 가치로운 담론과 인생에 대한 글과 얘기는 차고 넘치게 읽고 듣고 보았다. 내가 녹색평론 창간호부터 독자가 아닌가 말이다. 그리고 30대 초반부터 귀농을 꿈꾸어 왔고 천규석 선생을 비롯한 한국 현대농업의 이단자 선배들(소농운동, 유기농운동, 농민운동)의 삶과 글을 빼놓지 않고 읽고 직접 찾아가 뵙고 육성을 들은 사람이 아닌가. 더구나 독일 슈타이너가 제창한 생명역동농법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일찍 접했고 또 그 현장(독일, 이탈리아 심지어 이집트까지)을 직접 보고 온 사람이 나다.

그러나.... 그 모든 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사람은 그릇의 크기가 있게 마련이고 타고난 성정이 있는 것이다. 마치 책상머리에 앉아 평생 책만 본 먹물이 실제 경제나 삶을 모르듯이 그저 저 혼자 조용히 살려고 내려온 농촌에서 그 모든 지식과 경험을 내 삶 속에서 밀고 나가지 못했으니 그건 전적으로 나의 능력과 게으름과 소아병적인 성격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이제 와서 그간 관행농법으로 사과농사를 20년 지었는데(그 사이 무농약 브로콜리와 단호박 농사도 2천평 규모로 5년 정도 지었다) 갑자기 무농약 사과농사를 한다고 이곳에 끄적인다는게 자못 부끄럽고 쓸쓸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현실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이제는 친환경농사를 짓게 되었으니 할 말이 사실 별로 없다. 아주 평범하게, 그저 남들처럼 살았다고 하면 좀 위안이 될까. 어쩌면 이제와서 친환경 농사를 짓게 되었다고 괜히 센치해지는 이 자체가 어쩌면 과장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저 남들처럼, 돈이 되니 친환경 농사 짓습니다 라고 하면 안되나(그렇다고 반드시 돈이 되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왜 무슨 거창한 가치를 전제해야만 이런 짓(친환경 농사가 아마 전국 평균 4% 이하일 것이다)을 하는 것에 맘이 좀 편할까.

나이가 드니 이제는 풀 깍는 일도 예전만 못하다. 그리고 심리적으로도 아주 힘이 든다. 그래도 꾸역꾸역 새벽이면 일어나 예초기를 메고 사과밭으로 간다. 다른 선택이 1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한 낮에 더우면 선풍기 틀고 소파에서 낮잠을 청하고 늦은 오후 다시 예초기를 메고 사과밭으로 가고자 하지만 몸이 무겁다. 역시 낮잠은 내게 안맞아. 예전의 나는 반주라는 걸 몰랐다. 그러나 이제는 저녁밥 먹을 때 하다못해 맥주 한 캔이라도 해야만 하는 몸이 되었다. 그러다 하루가 가고 일주일이 지나고 돌이켜보면 그저 짐승처럼 먹고 자고 일어나 일하고 다시 먹고 자고한 일상이 시간의 전부다. 책을 여전히 부지런히 사모으기는 하지만 읽는 일은 과거에 비해 절반도 안되는 것 같다. 왜 사나?

하긴 사는 게 팍팍하니 형제들과 친구들에게 안부 전화하는 일도 점점 사라진다. 신세진 많은 사람들께 생각으로는 가끔 이곳 소식도 전하고 안부도 묻고 싶지만 그저 생각만으로 끝난다. 요즘은 더워서 더 그런지도 모른다. 더위에 약하고 땀을 많이 흘리는 나로서는 소처럼 여름나기가 힘이 든다. 오히려 추운 겨울이 내 체질에 맞지 싶다. 평생을 월화수목금 일하고(혹은 학교 가고) 일요일은 쉰 그 버릇을 몸이 가장 먼저 안다. 그래서 오늘같이 일요일에는 아침부터 몸이 늦잠을 잔다. 일이 끝없이 넘쳐서 생각만으로 계획을 잡아도 줄줄이 사탕인데도 일요일엔 아무런 일을 할 수가 없다. 몸이 늘어져 있는 것이다. 농부에게는 월요병이 없을까요? 적어도 나에게는 아직도, 아직도 월요병이 있다는 사실.

어제 박 선생과 이웃마을에 기거하는 선배님을 모시고 사과즙 공장에 스파클링 기계 배치하는 일을 오전에 좀 했다. 이 이야기는 농당 길벗에 사진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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