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이야기

농사이야기

분주한 나날

  • 길벗
  • 2021-04-02 06: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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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께 올해 심을 사과묘목이 도착하고 어제 핑크레이디 200주를 이웃 박선생 내외와 마침 휴학하고 내려와 있던 형진 형 조카 도움으로 다 심었다. 오늘은 꽃사과 280주를 집 앞에 심어야 한다.


16년을 그 자리에서 우사로, 창고로 버텨주던 사연 많은 하우스 축사를 어제부터 철거하기 시작했다. 홍천읍내 철거전문 고물상하는 분이 와서 일을 하고 있다. 이참에 작년에 공장 지으면서 나온 폐기물도 다 치우기로 했고 아울러 마당 옆 오래되고 녹슨 컨테이너도 가져가기로 했다.


누가 와서 그랬다. 이 큰 공장과 농사를 어찌 혼자 다 할 수 있냐고.

어쨌든 이제 새로운 시작이니 올해는 손 닿는대로 안사람과 둘이 그리고 필요하면 이웃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꾸려나가보기로 했다.

이건 선택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과제다. 이제 촌에 더이상 인력이 공급되지 않는다. 전통적인 이 동네의 농사들(고추, 오이, 애호박)도

모두 동남아인들의 손에 넘어간지도 꽤 되고 고령화는 오늘도 쉼없이 진행되고 있다.

면 단위에 있는 각급학교(초중등)의 학생수가 지난 10년 사이에 절반 이하로 떨어졌고 상가들도 활력이 줄었다.

어쩔 수 없는 인구의 감소와 노령화는 이제 피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고 작던 크던 농사와 가공업을 이어나갈 인력의 수급은 이제

더이상 기대할 수 없다. 오래 전부터 나는 앞으로 소규모 비지니스(농사를 포함해서)는 가족이 아니면 더이상 유지할 수 없으리라고 보았다.

물론 아직 읍 단위와 시 단위 인구가 그나마 밀집한 곳에서는 우리 같이 촌에 사는 사람들의 걱정을 피부로 느끼지 못할 것이다.

갈수록 인구의 도시에로의 집중은 더 가중되고 있고 면 단위 이하 촌은 쇠락할 것이다. 인구소멸, 농촌소멸은 이제 진행중이다.

다만 내가 보기에 그나마 내가 사는 서석면은 우리가 하기에 따라서 이 시대적 퇴행을 피할 수도 있는 여건이 좀 있다.

그건 이 고장이 지닌 훌륭한 하드웨어(자연환경과 접근성)에 우리의 소프트웨어(사람들이 찾아올만한 것을 만들고 유지하는 프로그램)를

개발한다면 소위 일년에 50만, 100만명이 찾는 고장으로 변신할 수 있다면 결코 서석은 소멸하지 않을 것이다.

이 얘기를 일찍부터 지역 군의원에게, 면장에게도 했지만 일개 무식한 농민의 소리를 과연 그들이 얼마나 귀담아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박사학위를 갖고 있거나 유력한 기관의 컨설팅이라야 눈길을 줄지말지. 내가 생각하는 이 고장(서석)의 여러 신나고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있지만 이런 것들을 어떻게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할지 잘 모르겠고 하긴 주민자치위원회 구성도 토박이 이장들의 반대로 무산되는

지경이고보면 아직 현주소 농촌의 인식 수준이 기대할만 하지 않은 것도 같다.

아무튼 봄이니 농사꾼은 분주하다. 나는 더 그렇다. 이제 나의 사과농사 여정에서 사과묘목 심기는 올해가 마지막이라고 다짐해본다.

물론 꽃사과나 그외 야생사과 묘목을 좀더 심을런지는 모르겠다. 어제 사과술(애플사이더) 때문에 핑크레이디를 200주 와야리 사과밭에 심었다.

11월 중하순에 수확하는 극만생종 품종이다. 산도가 홍옥의 두 배. 이 사과가 수확되면 애플사이더의 맛에 획기적인 변화가 올런지.

꽃사과 역시 애플사이더 때문에 굳이 심는 것이다. 과연 나의 구상과 계획대로 될 것인가. 그리고 이 좁은 술 시장에서 과연 애플사이더가

한 자리를 꿰차고 덕분에 우리 양조장이 계속 유지를 해나갈 수 있을 것인지.  

올해는 공장 주변 미화에도 신경을 쓰는 첫 해이다. 그동안 이 골짜기에서 20년을 살면서 별로 신경을 쓰지 못했다. 아니 안했다.

그럴 이유도 여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씩 매년 가꾸어나가야 한다. 앞으로 양조장 시음장을 만들어야 하고 필연적으로

사람들이 방문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나무도 사람도 풀도... 앞으로 그 시간을 나의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고단한 노력이 기다리고 있다.

오늘은 나의 쉰 여덟번째 생일이다. 학교 나이로는 쉰 아홉, 호적상으로는 쉰 일곱이 된다. 세 가지 나이를 가지고 이제껏 살아왔다.

저녁에는 홍천읍내에서 생축 식사모임. 가까이 지내는 이웃 강호철 선생이 호출.

봄날의 꽃 잔치 구경은 아직도 먼 남의 얘기. 그저 매일 일 속에 묻혀 하루하루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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