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이야기

농사이야기

오늘(Today)...

  • 길벗
  • 2018-04-26 21: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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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가 짧다. 그리고 시간은 내 마음대로 가지 않고 어딘가 이미 정해진 궤적을 따라 저대로 지나는 것 같다. 사월이 이렇게 장마에 기울어지는 가지 많은 나무처럼 슬로우비디오처럼 가기도 처음인 것 같다.

오늘 스태커가 드디어 배달됐다. 작년부터 사고 싶었던 기계이다. 지게차를 쓰기 어려운 곳에서 역할을 대신하는 것인데 가격이 천만원을 넘어간다. 농사 지은지 17년이 됐는데 몇년째 매년 새기계를 사고 또 건물을 짓는다. 생각해보니 선생이나 회사원은 그저 책상 하나면 만사 오케이고 그 마저도 주최측(?)에서 제공하니 몸 쓰는 것은 같은데 돈 쓰는 것은 천양지차구나.

출신이 프롤레타리아인데도 어려서부터 작고 이쁜 것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한때 만년필을 꽤 오래 사용했고 볼펜도 이것저것 많이 사기도 했다. 책갈피가 유행할 때는 모으기도 했는데 장서표에도 관심이 많아 관련 책을 사서 보기도 했다. 그러나 다 지나갔고 그때 뿐 남은 것은 없다.

오늘 지난 주말에 작업을 맡긴 농장 직인 도장이 택배로 왔다. 오래전에 중국돌을 받은 것을 내내 가지고 있다가 이번에 새긴 것인데 돌이 바뀌었다. 이유는 내가 맡긴 중국돌이 너무 단단해서 칼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 아무튼 원주 호호스캘리그라피 이은심 여사께서 성의껏 만들어주었다.

내일 남북 정상의 역사적인 만남이 있다. 그러고보니 나는 1982년 가을 대학 2학년 때에 강제징집을 당해 최전방에 배치되어 군생활중 GP에도 근무해보고 DMZ 매복, 수색활동도 했는데 비무장지대의 원시 비경과 복사무가 자욱히 낀 새벽의 고요, 그리고 금 그어진 남북을 자유로이 오가던 철새떼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때를 영원히 잊을 수 없다. 더불어 한겨울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오밤중에 매복 철수 명령을 받고 칠흙같은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며 크레모아를 회수할 때의 팽팽하던 긴장과 뜨거운 여름 한 낮 비무장지대 수색 중에 울린 한 발의 총성, 그리고 눈 앞에서 \'에이 씨팔\' 한 마디 내뱉고는 고목나무처럼 쓰러지던 동료, 동시에 철모 아래로 뿜어져나오던 시뻘건 피...

저녁 뉴스에선 온통 내일을 얘기하고 있다. 난 오늘 하루를 겨우 보냈는데 내일이라는 오늘은 또 어떻게 지나갈지. 그러나 궁금하지는 않고 어느새 인생이 조금은 지겨운 나이가 되었나 싶은데 그건 내 체질은 아닌 것 같고. 어쨌든 난 농부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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