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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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말고 다른 농사(2)

  • 길벗
  • 2012-09-29 21:0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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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에 첫 수확을 기대하고 있는 와야리 홍로 사과밭


올해 사과밭 옆에 김장 배추4000포기를 심었으나 무농약으로 지으려다 잎마름병과 벌레에 2/3는 죽은 것 같다. 모든 농사가 다 저마다의 재배 노하우가 있게 마련이고 그래서 그저 심어 놓으면 저절로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내년 봄에는 이곳에도 사과묘목을 심을 작정이다

올해는 봄에 적채와 고구마를 조금 심고 말았지만 한 5년간 브로콜리와 단호박을 무농약 인증을 받아 연작으로 지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사과밭은 계속 늘려갔고 일이 넘쳐 몸이 미쳐 못따라갈 때 쯤 이제는 사과농사만 전업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올해는 채소 농사를 조금 지었고, 아마 내년부터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더이상 사과 이외의 농사는 짓지 않을 것이다.

6년 전에는 사과밭 옆에 300평 정도 오이 농사를 처음으로 지어봤다. 여름내 아침 저녁으로 오이를 따고 박스 작업을 해서 농협에 납품했다. 이 동네는 여름 오이와 애호박이 주작목이라 나같이 300평 오이 농사는 농사라고 할 수도 없는데 어쨌든 몸은 무지 바쁘고 그 해 오이값은 폭락했다. 3년 전에는 농원 가까이에 위치한 서울 분 소유의 땅 700여 평을 임대하여 2년간 단호박과 쥬키니 호박을 각각 지어 봤다. 땅이 워낙 거름기가 없어 우리집 소거름을 몇 차나 갖다 부어서 농사를 지었으나 별무 소용이었다. 특히 쥬키니 호박 농사는 중반에 포기했다.

그래도 한 때는 2만 주나 심어서 제법 규모있게 했던 무농약 브로콜리 농사는 대풍은 아니어도 노동의 대가 정도는 나와 주었고 어느 해인가는 무농약 단호박도 제법 수입이 된 적도 있다.

그러고보니 이곳에 와서 만 11년 동안 오이, 브로콜리, 적채, 단호박, 쥬키니 호박, 배추농사  그리고 올해는 고구마까지 규모야 남들에 비하면 턱도 없이 작은 농사지만 나야 어쨌든 사과가 주업이니 이들 농사를 크게 지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보면 참 골고루 이것저것 사과 말고 다른 농사를 지어 본 셈이다.

그러나 그저 지었다는 경험이지 그 농사들에 사과 만큼 노하우도 애정도 쌓이지는 않았다. 또 돌이켜보면 이런 채소 농사(규모는 크지 않지만) 짓느라고 그만큼 사과에 손이 덜 갔고 결과적으로는 수입도 신통 찮았으니 지나고 보면 결국은 손해였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사과 농부다. 이게 나의 테제다. 그러나 그간 어쩔 수 없이 이런저런 겸업을 해왔다. 정말 어쩌는 수가 없었다는 것은 솔직한 나의 고백이다. 그것은 이곳에 와서 생리에 잘 맞지 않는 농사에 적응하려 무진 애를 쓴 나의 과정이었다. 굳이 성공과 실패를 논하고 싶지는 않지만 좌절은 많았다. 그리고 또한 애초 농사꾼 체질이 아닌 이가(가끔 귀농인 중에서도 타고난 농사끼가 있는 분을 본다. 부러울 뿐이다) 와서 농사를 지어보려고 몸부림쳐 온 과정일 것이다.

귀농 12년, 아직 성공도 실패도 아닌 과정 속에 여전히 있다. 달리는 자전거를 탄 기분이다. 그것도 내리막길을 달리는 자전거를. 설 수도, 내릴 수도, 뒤돌아 갈 수는 더더욱 없는 달리는 자전거, 그 속도는 만만찮다.

모든 농사에 저만의 노하우가 있다. 아주 단단한 지식이 있다고 본다. 일반 사업 못지 않다는 게 내 결론이다. 누구는 농사가 가장 쉽다고 한다. 그저 몸만 튼튼하고 부지런하면 할 수 있는 게 농사라고 말한 이도 있다. 절반은 맞는 말이다. 나는 그 절반의 절반 밖에 가진 게 없으니 아마도 그간 이런저런 농사에 실패만 거듭한 것이리라.

추석이다. 우리 집 앞 동산 위로 보름달이 둥실 떠올랐다. 마당과 사과밭이 온통 하얗다. 하얀 밤이다. 밤공기는 차고 산은 오늘 따라 가까이 거인처럼 보인다. 골짜기에선 개 짖는 소리, 그러나 그 사이 순간은 고요하다 못해 적막하다.

이제는 사과 말고 다른 농사는 짓지 말자는 게 올해의 소감이다. 사과에만 올인, 홍천에서 최초로 사과 전업농을 시작한 사람으로, 이제는 이곳에서 사과로만, 오직 사과 농부로만 살아갔으면 한다. 많은 이들이 사과 뿐만이 아니라 사과에 배, 사과에 복숭아, 사과에 자두 등의 농사를 잘도 지으며 잘 살고 있는 것을 안다. 그러나 나 같이 농사에 재주가 없는 이는 사과 농사만도 벅차며 아마도 평생 그 산에 다 못오를 것이다. 그저 농사꾼 흉내만 내다가 끝낼 확률이 높다. 그래서 겸손하게 두손을 모으고 사과 농사만 짓게 해달라고, 이 재주 없고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도 조금만 복을 내려 달라고 오곡이 풍성한 이 한가위에 기도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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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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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안김씨 2012-10-14
    누가 말했듯이 평생 지어보아야 농사는 겨우 4, 50번 이라는데..
    12년 세월 동안에 저 많은 것들 농사짓느라 뭔 노하우가 쌓였겠소..?
    그래도 가끔은 1, 2년 농사짓고도 전문가 행세를 하는 사람을 보면 부럽지요.
    잘 생각하였어요. 사과만 전업으로 해요.
    여튼 다품종 소량생산을 해 봐서 잘 알겠지만,
    몸만 고달프고 남는 것 피곤 뿐이지요. ㅎㅎ
  • 길벗 2012-10-15
    사과 농사만 지어야겠습니다. 사과만 해도 몸도 마음도 바쁘고 기술도 끝이 없는데, 뒤늦게나마 이렇게 깨달았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입니다. ㅋ ㅋ 형님이야 이미 다품종 소량 생산의 도를 터득했으니 괜찮지만 저 같이 얼치기 농사꾼은 그야말로 한 가지 잘 하기도 어렵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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