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이야기

농사이야기

Nobody knows but ...

  • 길벗
  • 2010-08-31 08:5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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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31일 길벗사과 사과밭


작년 가을에 담은 사과식초 항아리. 뒤에 보이는 지저분한 것은 올여름 집수리하느라 내놓은 가재도구들...

일년 동안 홈피에 글을 한 편도 못올리고 살다가 사과 익을 무렵이 되어 겨우 소식을 올립니다. 많은 분들이 왜 홈피 관리를 하지 않느냐, 글을 쓰지 않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그저 \'힘이 없어서...\'라고 대답했습니다만 핑계는 아니었습니다.

작년부터 전업 농사꾼으로 들어선 이후 예년보다 조금 더 이것저것 심었습니다. 그만큼 일도 많아지고 몸이 고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는데 그러나 규모를 늘리고 일을 더 많이 한다고 해서 그만한 댓가가 꼭 돌아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과농사에 더하여 브로콜리, 단호박, 적채 등 채소 농사를 이어짓기 하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날씨가 또 변수로 작용하니 애만 쓰고는 아무런 소득이 없는 일도 작년 올해 연거푸 일어나고 보니 말 그대로 힘이 빠질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제 내려온지 올해로 10년, 사과농사는 9년차에 들어섰으니 이제는 누가 봐도 성공한(?) 귀농인이요 정착에 성공한 사람이라고 주변에서는 평가를 합니다만 그러나 제 삶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저의 사정을 드러내놓고 소문낼 일도 아니니 1년만에 쓰는 이 글의 제목처럼 \'Nobody knows ...\'가 될 수 밖에 없는데 그러나 but이 붙었으니 누군가는 안다는 얘기입니다.

그래도 시간은 흘러 어느새 내일이면 9월입니다. 올해처럼 이상한 날씨는 이곳에 와서 처음 겪고, 덕분에 예년에 비해 사과가 더디 색이 드는 것 같습니다. 올 여름에는 풀 깍는데 아주 애를 먹었습니다. 응애도 예년보다 더 기승이었고, 매일이다시피 비가 오니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이제 더위가 한풀 꺽이고 밤이면 선선한 바람이 부니 사과도 색이 조금씩 들어가고 있습니다.

올봄에 지은 채소 농사(브로콜리, 적채)는 수확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상 저온에 묘를 심은지 며칠 지나지 않아 모두 죽어버린 것입니다. 결국 브로콜리는 다 갈아 엎었고 적채는 1/3가량 수확을 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주부터 단호박을 수확해야 하는데 내내 비가 와서 자꾸 미뤄지고 있습니다. 농사에 있어서만큼은 뜻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내년부터는 그간 몇년 동안 병행해서 지어오던 채소농사를 아주 짓지 않기로 했습니다. 대신 사과묘목을 다 심어서 오직 사과농사만 지으려고 합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괜시리 욕심을 부려 안사람만 고생시키고 몸만 고달프고 수입은 안되었던 것 같습니다. 더구나 무농약 채소농사였는지라 남보다 힘과 투자는 배로 들고 그렇다고 보람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귀농 10년이 되었는데 별다른 일 없이 지나갑니다. 누구는 책을 내라 하고, 누구는 연말에 잔치를 벌이자고 하나 그러나 그럴만한 재주도, 힘도 없는 것 같습니다. 세월이 지나간 만큼 내려올 때 39살이었던 제가 지천명을 바라보는 49살이 되었고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들이 둘 다 대학을 가고 군대에 간 것, 그리고 처녀같던 안사람이 남편 잘못 만나 촌에서 고생하고 나이 먹어 이제는 아줌마가 된 것 등이 남은 것 같습니다.

이번 주도 태풍 영향으로 내내 흐리고 비 온다고 합니다. 사과가 색이 들고 익어야 하는데 날이 이러니 속만 태우고 있습니다. 어제 색이 조금씩 들기 시작하는 사과 몇 개를 무작위로 따서 시식을 해보았습니다. 다행히 올해 맛은 아주 좋았습니다. 저희 집 사과를 주문하시는 분들이 입버릇처럼 얘기하는 첫해 수확했던 사과 맛, 아마도 올해는 그때의 맛을 재현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작년, 재작년에는 여기저기서 배운 것에다가 제 나름대로의 이런저런 방법으로 사과농사를 지었는데 올해는 다 포기하고 첫해 제가 뭘모르고 했던 방식으로 해보았습니다. 사과맛을 내는 몇가지 팁이 있는데 편리한 방법 다 버리고 몸은 고되지만 무식한 방법(?)으로 시행을 했습니다.

제가 사는 이곳 홍천 서석이 아무래도 사과 주산지보다는 꽃 피는 시기도 1주일 정도 늦고 성장도 조금은 늦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날씨만 좋으면 이제까지 추석에 거의 수확을 맞추었는데 올해는 좀더 두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며칠 전부터 매일 서너통씩 전화가 와서 왜 사과 주문장을 열어놓지 않느냐고 합니다. 추석에 과연 사과를 낼 수 있을 지 조금 고민되어서 그런 것인데 현재 생각으로는 만약 그때까지 익지 않으면 추석을 넘기는 한이 있더라도 제대로 익지 않은 사과를 팔지는 않을 생각입니다. 우리 사과 농사꾼들은 추석이 가장 큰 대목이라 이때를 못맞추면 일년 수입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지만 그러나 맛이 들지 않은 사과를 출하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지난 일년간 이곳에 글을 쓰지는 않았지만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올해는 가끔 이 농사를 포기하고 땅을 다 팔고 다시 서울로 갈까 하는 생각도 여러번 했었습니다. 다행히 마음을 돌이켜 먹었습니다만 농사로 생계를 이어간다는 것이 참 마음에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어찌보면 이만큼 세월이 흘렀는데도 아직 헤매는 것은 다 제가 어리석고 우둔한 탓입니다. 제가 농사에 재주가 없는 탓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주 없는 이가 농사에 계속 매달리는 것은 아마도 이 사업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매력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올해는 특히 많은 반성을 하며 한 해를 보냅니다. 아마도 10년이라는 기간이 주는 즉 캘린더식 행사에 익숙한 우리네 삶에서 오는, 어떤 시점을 기해 새로운 힘을 얻고 또 정리하려는 그런 기운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가을입니다. 수확의 계절입니다. 저희 집 사과처럼 저도 이 가을에 철이 들고 맛이 들기를 바라봅니다. 그러나 늘 부족하고 한없이 어리석은 것이 사람인 것 같습니다.

어서 날씨가 좋아져서 사과 수확하기에 좋은 날이 되기를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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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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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천인 2010-08-31
    길벗 노원 사과야 없어서 못먹죠. 추석이후 라도 사먹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추석선물을 마련하려 홈페이지 들어 왔다 글 남깁니다.
  • 길벗 2010-08-31
    사과 주문은 메인화면 <주문장>에서 하셔야 하는데 내일 상품구성을 올려드리겠습니다. 올해 봄부터 일기 불순하여 농사에 힘들었는데 다행히 사과는 그런대로 작황이 좋습니다. 또 올해 맛과 향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 akane 2010-09-01
    안녕하세요? 김계환입니다.
    그간 별고 없으셨는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요즘 하는 일에 너무 복잡한 상황이라 자주 연락도 드리지 못했습니다.

    주문장에 올해 추석 사과를 주문 드렸습니다. 올 해 도 잘 부탁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주변이 정리되는 데로 다시 한번 연락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길벗 2010-09-01
    계환 씨, 시간이 참 빨라. 얼굴 한번 보자 해놓고는 또 일년이 갔네... 이번 추석 지나고는 꼭 다녀가시길. 요즘 오디오는 하이엔드는 다 처분하고 참한 놈으로 잘 듣고 있다오. 주문 고마워요.
  • akane 2010-09-01
    그러게 말입니다. 벌써 일년이 후딱 지나가 버렸네요. 추석연휴 때는 정신이 없을 듯 하오고 9월 9일(목)하루 정도 시간이 날 듯 한데 그 때 당일로 잠시 찾아 뵙는 일정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창 바쁘실 듯 한데 괜찮으실런지요?
  • 길벗 2010-09-01
    언제든 괜찮아요. 유붕 자원방래하니 불역열호 아닐런지..^^
  • akane 2010-09-02
    주말이나 담주 초 정도에 상황을 봐서 전화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호진엄마 2010-09-20
    마음 고생이 많으셨겠어요. 추석 지나고 찾아 뵙겠습니다. 언니에게도 안부 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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