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이야기

농사이야기

내일(14일)부터 사과 수확을 시작합니다

  • 길벗
  • 2009-09-13 23:23:24
  • hit1560
  • 112.167.2.55

<농원 들어오는 큰 길 삼거리에 지난 8월 초에 입간판을 세웠습니다. 간판은 한 동네에 사는 \'황금소나무 펜션\'의 박기재 님이 직접 만들어 준 것입니다. 옆의 학생들은 지난 여름 우리 농원으로 2주간 현장실습 와서 고생했던 풀무농고 2학년 학생들입니다. 실습 끝나기 전 날 함께 이 간판을 세웠습니다>

일찍 착색이 시작되었는데 9월 들어 두 차례 비가 오고 날이 며칠 더웠던 관계로
색이 더디 들고 있습니다.

내일(14일.월)부터는 본격적으로 사과 수확을 시작하려 합니다.
작업이 되는대로 주문하신 순서대로 택배를 시작할 것입니다.

올해는 귀농 이후 8년간 서울로 매주 2-3일씩 다니던 투 잡(two-jobs)일을
그만두고 전업농으로 시작한 첫 해여서 그만큼 의욕적으로 일을 했고
또 벌렸습니다만, 이 시점에 와서 보면 제 뜻대로 되지는 못했습니다.

역시 아직도 저는 농사꾼으로서 너무도 부족하고 또 경험이 미천하며
배워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깊이 깨닫는 한 해였습니다.

올해 단호박 농사는 거의 망했다고 보여집니다. 유인 파이프 값이 5백여 만원,
모종값만 380만 원이 들었는데 다음 달에 수확해보아야 알겠지만 아마도
단호박 소출로는 들어간 돈을 메꾸기에도 부족할 것으로 보여집니다.

소위 농사지어서 적자본다는 것을 처음으로 경험하게 될 것 같습니다.
게다가 브로콜리와 단호박에 매여서 정작 주업인 사과농사에 손이 제 때
돌아가지 못해 사과농사도 만족할 만큼 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물론 이곳 기후와 토양이 주는 자연의 선물이야 제 노력과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특히 올해는 응애 때문에 큰 피해를 보았습니다.

절반의 실패라고 자인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절반의 실패는 곧 절반의 성공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애써 자위하고도 있습니다.
절반의 실패 속에서 얻은 교훈을 터득한 것으로 올해 농사는 큰 소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다음 제 농사 경력이 20년을 넘고 30년을 넘어설 때
이제 8년차인 현재 저의 농사 경력(귀농은 9년째지만)을 돌아보는 시간이
있을 줄 압니다. 물론 8년 중에서도 4년은 정말 아무 것도 모른 채 그저 묘목만
꽂아놓고 어리둥절한 시절이었습니다만, 어설프고 낯설기만 하던 이 시절이
그래도 떠올려지는 날이 올까요?

내년에는 3년 전에 심은 만생종 사과(부사)도 일부 첫 수확을 기대하고 있고
또 저희집 주력 품종인 홍로도 좀더 식재하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올해도 벌써 사과 주문은 예약이 다 된 것 같습니다.
꼬맹이 사과만 여유가 있습니다.

올해 초 작은 아이(민)가 홍천군에서 농업후계자로 선발되었는데 오는 연말에
산업기능요원으로 지정되면 내년부터는 3년간 집에서 군대가는 대신 농사를 지어야
합니다. 둘째 아이가 내년에 함께 농사에 손을 보태면 올해보다는 훨씬 낫게 농사를
지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제 내일부터 추석 전 배송일(28일)까지는 정말 바쁠 것입니다.
결과는 신통치 않지만 그래도 오로지 이 때를 위해 지난 봄부터 일해 왔습니다.
올해도 사과 농사에 여러 실수와 실패가 있었지만 그래도 늘 배운다는 심정으로, 그리고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많은 직업과 길이 있는데 저는 남들보다는 좀더 여러 방면에(고등학교 교사, 서점, 출판사, 대기업, 학원강사 등) 두루 다니다가 서른 아홉에 들어선 이 농부의 삶이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그간 이곳에 와서 살면서 어려울 때가 여러번 있었는데 그때는 순간
옛기억을 그리워한 적도, 이 길을 온 것에 후회도 많이 했습니다.

사과 수확을 앞두고 조금 감상적인 기분이 된 것 같습니다.
저희 집 사과(길벗사과)는 크기가 조금 작습니다. 제가 크게 키우려고 노력을 하지
않는 것도 있고(시중에는 수 많은 비대제와 요법이 난무합니다만), 또 안전한
먹거리야 말로 외관보다 더 중요한 것이라는 믿음도 함께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과가 한 알도 생산되지 않던 이곳 홍천에서 8년 전에 최초로 전업 사과농원을 꿈꾸며
홀로 사과나무를 심고 시작할 때의 그 막막함을 돌이켜보면 지금은 상전벽해의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이제는 몇 년 안에 약 1만 평 규모의 전문 사과농원을 아들과 함께 경영하는 꿈을
꿀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규모만 앞세우는 것은 아니고 그 속에서 여러가지 재미있는
일들도 함께 이루어보려고 현재 노력하고 있습니다.

늘 변함없는 많은 길벗님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이만큼 커왔고 또 지켜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과 수확하는대로 바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게시글 공유 URL복사
댓글작성

열기 닫기

댓글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