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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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마지막 날에 쓰는 농사이야기

  • 길벗
  • 2008-09-28 22:5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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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27일, 이웃한 내촌면에서 매년 하는 단호박 축제에 올해 처음 참가를 해보았습니다


떡메도 치고, 토속 음식 장터도 서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어제까지 늦게 딴 홍로를 모두 출하하고 이제는 조생종 부사(부사 변이종으로 저희 집은
\'히로사키\'라는 품종입니다)를 10월 6일부터 출하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해거리 한 덕분에 올해 사과 수확량이 좀 많을 거라 예상했는데 꼭 그렇지 만도 않았습니다. 우선은 적과를 철저히 못해서 소과가 많았던 덕분에 판매하지 못할 정도로 작은
꼬맹이 사과가 엄청 저장고에 쌓여 있는 덕분입니다.

그러나 큰 걱정은 없는 것이 이놈들은 모두 \'사과 식초\'를 만들 계획입니다.
엄청난 양(?)의 사과 식초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를 해봅니다. 사과 식초의 효능에 대해서는
여러 책자에서 보고 또 이미 만들어 파는 분에게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11월 초순에 한꺼번에 담을 계획인데 식용과 농사용으로 구분하여 담으려고 합니다. 우선 식용은 항아리에 담으려고 하고, 농사용은 큰 고무통을 이용하려고 합니다. 식초를 담그는 시기 전후해서 사과 식초에 관한 글을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앞 글에서도 밝혔지만 올해로 사과를 세번 째 수확하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또 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적과를 철저히 해서 대과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고 또 이제껏 별로
신경을 써오지 않았던 사과 외양에 대해서도 좀더 세밀한 관심과 적용을 해야만 하겠다는 것입니다.

또 올해 저희 집 홍로 사과가 재작년보다 맛이 덜하다는 중평이 있었는데 이에 대해서도
나름의 판단을 하고 있고 그에 따라 내년 농사의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제 사과 선생님인 상주의 김칠성 선생님도 \'석회 보르도 농가 모임\' 까페에 올린 글에서 올해 전반적으로 조중생종 사과의 당도가 예년만 못하다고 지적하기는 하였습니다.

하긴 농사라는 것이 공산품처럼 일정한 품질을 인간의 뜻대로 보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긴 합니다. 매년마다의 기상과 또 사람의 정성과 품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농사는 평생 공부이고 또 매년 긴장하게 되나 봅니다. 이제까지 사과농사 칠 년 동안 단 한 해도 긴장을 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아마 삼십 년이 되어도 그것은 마찮가지겠지요. 더군다나 저는 농사의 초보로서 당연한 처사라고 생각됩니다.

올해 브로콜리 후작으로 심은 단호박(무농약 인증)은 그야말로 풀 섶에 가려 잎만 드문드문 보일 뿐 호박은 모두 풀 아래에 가려 있습니다. 가본지도 꽤 여러 날 되었습니다. 헛고랑에 비닐이나 차광망을 깔아야 하는데 차광망을 사놓고도 아차 하는 순간에 그 시기를 놓쳐 그만 그리 된 것입니다. 그래도 두번이나 헛고랑에 나오는 풀을 예초기로 깍아주었는데도 그 모양입니다. 과연 약 한번 안치고 그저 내버려둔 단호박이 어떤 모습으로 나올런지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도 많이 됩니다. 사실 단호박 모종값만 백십만 원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시월 육일부터 수확을 시작하여 출하를 하려고 하는 조생종 부사가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지금까지는 색이 잘 들고 있습니다. 올해 처음으로 수확다운 수확을 해보는 건데 역시 적과를 철저히 못해서 잔사과가 많기는 해도 제법 대과도 많아서 양이 좀 될 것 같습니다. 홍로가 아주 단단하여 아삭한 반면 단맛만 있는 데 비해 조생종 부사는 과즙이 많고 단맛과 신맛이 고루 배어 있어 찬바람이 슬슬 불기 시작하는 시월에 우리 입맛에 잘 맞는 사과라고 여겨집니다.

오미자는 그저께까지 모두 땄는데 뒤에 거둔 것들은 현재 햇볕에 말리고 있습니다. 매년 전량을 오미자 효소만 담궜는데 말린 것 찾는 분들도 있고 또 항아리도 여유가 없어서 올해는 뒤에 딴 것들은 모두 말리고 있습니다. 올해는 가을 햇볕이 좋아서 뭐든지 말리기에는 아주 좋은 해입니다.  지난 주에 잠시 일산 신도시에 선배 만나러 갔다가 기다리는 동안 백석동 뉴코아 지하 식품부에 갔었는데 북한산 말린 오미자를 일백 그램에 육천 칠백 원 받는 것보고 까무라치는 줄 알았습니다. 정말이지 대단히 고가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과나무 뽑고 그 자리에 오미자를 다 심으면?  계산을 머릿 속으로 하다가 복잡하기도 하고 싱거워서 말았습니다.

올해는 봄에 계획했던 여러 농사 일들이 많이 펑크가 났습니다. 우선 고추를 좀 심겠다고 중고 고추 지주대도 몇백 개나 구했는데 그만 심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또 남의 밭을 빌려 쥬키니 호박을 몇 백 평 심겠다고 계획하여 쥬키니 호박 박스를 오백 장이나 주문하여 창고에 쌓아 놓았으나 역시 헛방이었습니다. 심지어 한 여름에 심어야 하는 올 김장 배추조차도 못심고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이러구러 제 자신에게 스스로 사깃꾼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긴 올 봄 친구인 백 상무에게 꾼 돈도 무이자이긴 해도 일부를 연말까지 갚아야 하는데 단호박 농사를 망치게 되면 이것도 어그러지게 됩니다. 사람이 장담하기는 쉬워도 사깃꾼 되기는 한순간인 것 같습니다. 사실 이런 생각도 뜨겁던 한 여름에는 나지도 않았는데 요며칠 아침 기온이 사 도까지 떨어지면서 무척 쌀쌀해지고, 오후 햇살이 완연한 초추의 양광인 것을 보니 저절로 올 한 해 농사와 일이 떠오르는 것입니다.

요즘 농사꾼은 풍년이 되어도 한 숨, 흉년이 되어도 한 숨이라고(이건 속담이 아니고 속설) 합디다. 풍년이건 흉년이건 요즘은 뉴스 보기가 정말 겁나고(겁나는 정도가 아니고 가슴이 쿵하고 충격을 받기도 합니다) 투 엠비 얼굴이 나오면 잽싸게 채널 돌려버리게 되니 이 아니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올해 농사는 본전만 해도 다행이라는 것이 요즘 이곳 농민들의 자조섞인 한탄이고 보면 과연 말로만 생명 어쩌구 하면서 정작 그 생명을 키우는 농민의 생계는 자꾸만 나락으로 떨어지는 현실을 볼 때 안타깝기만 합니다.

구월 마지막 날이니, 들판엔 누렇게 벼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그 황금 물결이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 요즘입니다. 농민들의 어깨에 신명이 얹어져 들썩거려야 할 이 가을 수확의 계절에 그러나 온통 한숨소리만 들녘에 가득합니다.
그래도 어쩌는 수 없이 하루하루를 이어가야만 하는 숙명을 타고난 것처럼 또다시 내년을 바라보며 수확을 해야겠지요. 간단없이 계속되는 이런저런 먹거리 파동을 보면서도 우리 국민들이 대오각성하지 않는다면 정말로 이 나라의 미래도, 농촌의 미래도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 정부 하에서 무엇을 더 기대하겠습니까.

시월이 오고 있습니다. 시월은 사월이나 오월처럼 혁명의 달이 아니어서 좋습니다. 발음조차도 입 속에서 부드럽게 이어집니다. 한 해를 마치는 것은 십이월이지만 정리는 시월에 하는 것 같습니다. 저도 시월에는 올 봄 못다한 와야리 사과밭 정리와 집 주변 정리를 올해는 꼭 하려고 합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마음 턱 놓고 살았는데 이제 구월 마지막 날이다보니 이런 생각도 듭니다.

이곳에 오시는 길벗님들 아름다운 시월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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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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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산지기 2008-09-29
    보는 이들에게 시월은 풍요롭고 아름다운데 농부들에게도 그렇게 되기를 소원해 봅니다.

    부사를 수확할 때 사러가겠습니다~
  • 이명수 2008-09-29
    친구야!
    나는 사과가 참 맛이 좋았다
    그리고 이글을 보면서의 느낌은 너의 고집스러운 농사의철학에 박수를 보낸다.
    나는 한 알의 사과를 먹기보다는 너의 그 철학을 먹는다. 친구야
  • 길벗 2008-09-30
    명수야, 동창회 행사 진행하느라 수고가 많았구나. 지난번 입원한 뒤에 건강은 괜찮은지 늘 걱정이 든다. 사업도 몸 챙겨가며 쉬엄쉬엄 하기를 바란다.
  • 길벗 2008-10-02
    조이 닥터님. 저희 집 사과를 어떻게 알게 되셨는지는 모르나 아무튼 맛있게 드셨다니
    고맙습니다. 길벗사과 많이 사랑해주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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