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이야기

농사이야기

\'호박 오가리\'를 만들었습니다

  • 길벗
  • 2007-12-17 00:4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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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호박을 씻고


자르고, 썰고

12월 초순까지 사과를 다 팔고 나니 좀 여유가 있겠다 싶었는데
타고난 팔자가 그렇질 못한지 지난 주는 생각지 않게 바빴습니다.
대학 선배인 형진 형이 미국서 잠시 귀국한 지가 벌써 여러 날 됐는데
제가 사과 장사하느라 바빴고 또 며칠 몸도 아프기도 하여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그만 형이 미국으로 돌아갈 날짜가 임박한 것입니다.

그래서 간만에 서울 갔더니 친구인 학술진흥재단의 이종욱 단장과 후배인 벤쳐협회
오완진 부장이 나 올라온 김에 형진 선배와 함께 망년회 겸한다고 모여서 밤 늦게까지
잔을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촌놈이 오랫만에 서울 가니 도시는 여전히 빠르게 변하고
있었고 들리는 소식도 영 딴판이었습니다. 세상 먼지 묻은 뒷담화를 많이 들은
자리였습니다.

다음 날 점심 땐 대학 은사인 정현종 선생님과 소설가 성석제 형, 그리고 학술 세미나
때문에 갑자기 일주일간 서울에 온 영준 형과 인사동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제가 올 한 해는 개인사적인 모임에 거의 나가지 않은 덕분에 참으로 오랫만에
얼굴을 뵙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그날 저녁엔 다시 인사동에서 좋아하는 여러 선생님들과 송년회를 겸한 술자리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2차는 역시 까페 \'소설\'에서 마무리를 했습니다. \'소설\'은 제가
대학 3학년 때부터 다닌 그야말로 단골 술집입니다. 그때는 이름이 \'볼쇼이\'였는데
장소도 인사동이 아니라 이대 후문에 있었습니다. 주인장인 염기정 씨는 1년 전에
제주도로 내려가 요새는 다른 이가 대신 맡아 운영하고 있습니다.

월요일에 올라갔다가 수요일에 홍천 집으로 귀가 했는데 다시 금요일에 안사람이랑
서울에 갔습니다. 장흥에 있는 기숙학원 세종 아카데미 김 원장님이 집들이 겸 송년회를
했기 때문입니다.
이 모임은 매년 망년회를 부부 동반으로 하는데 권 선생님 내외와 심 대령님 내외와
우리 부부 이렇게 네 가족이 모입니다. 넉넉히 먹고 마시고 하룻밤 유하고 토요일에
집으로 내려 왔습니다.

이렇게 궁벽진 촌에, 산골짜기에 살아도 어쩌는 수 없이 서울에 가끔 가야 할 일이
생깁니다. 홍천은 산골짜기라 해도 교통이 워낙 편리해 서울 도심까지 두 시간 정도면
갈 수 있습니다. 이젠 서울엘 가도 편하질 않고 빨리 홍천 농원으로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드는 걸 보면 촌놈이 다 된 것 같습니다. 하긴 귀농 전에도 서울에서는 마음이
늘 이방인 같았었지요.

서론이 너무 길었습니다. 요즘 이곳에서 제 하는 이야기로 돌아오면 이번에 사과 장사한
돈으로 농산물 전기 건조기를 하나 장만했습니다. 공지사항에도 올려 놓았듯이
\'사과 말랭이\'를 할 요량으로 말이지요.

많은 분들이 \'무 말랭이\'는 들어 봤어도 \'사과 말랭이\'는 첨 듣는다고들 하셨습니다.
하긴 저도 사과 농사 지으면서 작년에 처음 알았고 그래서 직접 집에서 만들어 먹어
보았는데, 작년 가을엔 볕이 좋아서 자연 건조를 해서 조금 맛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나물이나 채소를 말려 두는 것을 우리 말로는 \'오가리\'라고 합니다.
두산 백과 사전에 나와 있는 설명을 보면,

[오가리]

건조채소의 일종. 예전부터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들면서, 무 ·가지 ·호박 등을 잘게 썰거나 쪼개 말렸다가 추운 겨울에 먹을 수 있는 방법이다. 무는 채로 썰거나 사방 1cm, 길이 4∼5cm의 크기로 썰어서 말리는데, 무는 오가리라기보다는 무말랭이라고 한다. 가지는 길이로 가늘게 짜개거나 둥그름하게 어슷썰기하여 말리고 애호박은 동글동글하고 얇게 썰어서 말리며, 늙은 호박은 살을 길게 오려서 빨랫줄에 걸어서 말린다. 말릴 때는 공기가 잘 통하고 햇볕이 잘 쬐는 곳에 널어서 말린다. 호박오가리 ·가지오가리 ·무오가리 등을 물에 불렸다가 간장 ·후춧가루 ·깨소금 ·참기름 ·파 ·마늘 등을 섞은 양념간장을 넣고 볶아 나물로 요리한다.


저는 물 건너 김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Apple Slice\'라고 이름 짓기로 했는데
한글 이름을 병행해서 쓰게 된다면 \'사과 말랭이\'나 \'사과 오가리\'라고 해야 할 듯 싶습니다.

\'애플 슬라이스\'용 사과는 따로 구입을 좀 해두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위에서
말씀 드린 것처럼 지난 주 내내 정신이 없어서 아직 손도 못대고 있다는 것입니다.
건조기 성능이나 사용법도 익혀야 하고 처음이니까 여러번 실패를 보아야 좀 제대로 된
\'사과 오가리\'가 나올텐데 말입니다.

아무튼 어제, 오늘은 우리가 농사 지은 무농약 호박(늙은 호박과 단호박)으로
\'호박 오가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단호박은 이미 다 팔았는데 무게가 700g 이하여서
판매를 못한 것이 좀 있었고, 늙은 호박도 반만 호박즙을 냈기 때문에 그 나머지로 하는
것입니다.

마침 방학이라 집에 와 있는 큰 아들 현이까지 동참하여 안사람과 셋이서 이틀 동안
손에 물집이 잡힐 정도로 무수히 자르고, 썰고, 깍고 했습니다. 안사람이 내년엔 절대
호박 농사 안짓는다고 몇번 얘기했을 정도로 손도 아프고, 어깨 죽지도 아프고,
좀 지겹고 그랬습니다.

안사람은 연신 이 \'호박 오가리\'는 누가 사느냐고 자문해 보다가 너무 손이 많이 가서
팔기도 아깝다고 혼자 대답하다가, 백설기 떡에나 넣어 해먹는 건데 수요가 많지
않을 거라는 둥, 그러다가 팔려고 해도 양이 많지 않아서 안되겠다는 둥 혼자 내내
중얼거렸습니다. 정말이지 내년엔 \'단호박\' 농사나 지어야지 \'늙은 호박\' 농사는
그만 두어야겠습니다.

낮에는 일부 창고로도 쓰이는 메주 띄우는 방에서 작업을 했는데 밤엔 좀 추워서
거실로 호박을 끌고 들어 왔습니다. 아무튼 양이 많지 않아 오늘 저녁부로 이틀만에
작업은 끝이 났습니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사과 오가리\'를 만들어 보아야 하는데
과연 잘 될런지 걱정부터 앞섭니다.

물 건너 김 선생님이 붙여준 이름 \'애플 슬라이스\'가 너무 매끈한 거 같아서 좀
찜찜하긴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말랭이\'들은 보기에 썩 훌륭하지는 않거든요.
어쨌든 만들어지는 대로 이곳에 또 주절주절 과정을 올려 놓아 보겠습니다.

오늘 아침 저희집은 영하 10도를 기록하였습니다. 어제 새벽에는 눈도 좀 왔습니다.
한동안 푸근했는데 이제 본격적인 겨울로 접어 들었나 봅니다.
저희 집은 언제나 튼튼한 안사람만 빼고 저와 현이는 감기에 걸렸습니다.
길벗님들, 감기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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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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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진웅 2007-12-17
    진작 감기 조심하라했으면 걸리지 않는 건데..ㅎㅎ. 일 손 바쁘고 힘만드는 늙은 호박농사는 마님 말씀 듣는 게 좋을 듯. 그리고 호박 오가리를 저렇게 칼로 껍질을 벗겨내니 한 두개도 아니고 손이 울메나 아플꼬? 감자 깍는 칼이나 거긴 없을 지 모르겠는데 감나무 껍질 벗기는 기구로 그냥 긁어내면 호박 손실도 적고 힘도 덜 들터인데..
  • 길벗 2007-12-17
    형님 부지런도 하십니다. ㅎㅎ 감자 깍는 칼로 안해본 것은 아니나 호박에는 칼날이
    먹히질 않더군요. 혹 감나무 껍질 벗기는 기구라면 모르겠습니다. 안그래도 호박즙하고
    박오가리하고 안사람이 조금 보낸다고 합니다. 보내주신 귀한 쌀은 정말 맛있게
    먹고 있습니다. 형진 형과, 종욱이와 완진이는 여전합니다. 대신 안부 전합니다.
    형수님과 겨우내 감기 걸리지 마시고 건강하셔요.
  • 동산지기 2007-12-17
    일찍 집을 비우신 모양이군요. 길벗님의 댓글 달린 시간을 확인하고 8시30분쯤 댁으로 전화드렸더니 받는 사람이 없더군요.^^ 한솔이는 이번에 한동대 수시에 합격하였습니다. 길벗님의 도움이 컸습니다. 현이가 집에 와있다고 하니 물어볼 것이 있는데, 학교에서 노트북과 데스크탑중에 어떤것이 실용적이고 도움이 되는지를요. 둘중 하나는 마련을 해줘야 할테니까요. 호박 오가리, 사과 오가리, 먹기는 쉽지만 여간 정성이 들어가는게 아닐텐데...매일 매일의 삶이 기쁘고 즐거운 삶이 되시기를, 즐거운 성탄과 복된 새해를 맞이하시기를!
  • 김진화 2007-12-17
    저렇게 말린것이 정식명칭이 오가리로군요.저 어릴때 저희 할머니가 저리 늙은 호박을 말려서 시루떡에 넣었던 기억이 있습니다.그때엔 참으로 맛이 좋았지요.홍천 날씨도 만만치 않게 추운 곳이지요.제가 화천에서 군생활을 해서 그 쪽의 기후에 대해서 좀 알지요.ㅎㅎ애플슬라이스란 이름 전 좋은데요.생김새와 맛은 아직 모르지만요.길종각님!추운 날씨에 감기조심하시고 항시 편안한 일상 되십시요.
  • 흑곰 2007-12-17
    감기에는 뜨거운 오미자 차가 정말 좋습니다.저희 식구는 감기 증상이 있으면 좀 진하게 차를 타서 숟가락으로 떠 먹을 정도로 뜨거울때 마십니다. 늘 건강 조심하시고 안녕히 계십시요.
  • 길벗 2007-12-17
    목사님, 한솔이의 한동대 입학을 축하드립니다. 현이에게 물어보니 노트북이 아무래도 편할 거라고 하는군요. 현이도 작년 이맘 때 노트북을 하나 장만했는데요, 잘 쓰고 있습니다. 늘 찾아 뵌다고 하고서는 가보지 못했는데 이번 주 내로 사택으로 방문하겠습니다.
    진화 님, 오셔서 감사드립니다. 화천이나 홍천이나 겨울에 춥기는 매일반이지요. 늘 건강하시고 좋은 말씀 올려주십시오.
    흑곰 님, 우리 집에서 수확하여 담근 오미자 차가 집에 있는데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요. 일깨워주셔서 고맙습니다. 또 오십시오.
  • 수피벼리 2007-12-18
    어린시절 방학때마다 할머니께서 호박이며,고구마,사과 말린것 보내주실때는
    몰랐었는데 이제 보니 오가리를 말려서 보내주시는 그 수고로움이 얼마나
    크셨을지 ...
    어릴땐 너무도 당연하게 받았었던것들이 지금 생각해보면 참 감사한것들이
    아닐수 없네요..
    길벗님 글을 보고 잊고 있었던 할머니의 사랑이 그리워지네요 ^^
    참 요즘 감기가 참 독한거 같아요~~ 감기에서 얼른 회복하시고
    추은 겨울 따뜻하게 보내세요 *^^*
  • 길벗 2007-12-19
    이왕에 건조기를 구입했으니 앞으론 이것 저것 말려서 겨울 식량으로 준비를
    해둘 참입니다. 그런데 수피벼리 님 말씀대로 촌에서는 그저 되는 것이 하나도
    없지요. 모든 것이 손이 여러번 가야 입으로 들어올 만큼 되는 것 같습니다.
    감기는 아직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얼른 나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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