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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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3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홍콩농민시위'에 관한 특파원 기사

  • 길벗
  • 2006-01-13 18:4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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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중앙일보를 구독하고 있다. 홍콩 농민 시위에 관한 특파원 기사가 박스 기사로
실렸기에 이곳에 전재해 본다. 혹 이런 행위가 저작권법에 위배되는 일이라면
누군가 저에게 알려주시기 바란다. 그렇다면 삭제를 하겠다.
이번 사태를 보는 우리 언론의 시각이 담겨져 있다고 보기에 이곳에 옮긴 것이다.

그저께 초저녁에 KBS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진행자가 개그우먼 김미화가 아닌듯 싶다)을 우연히
들었는데 홍콩 농민 시위대 재판이 끝나서 그 당사자 중 한 사람과 국제 통화를 연결해서
생방송으로 현지 사정을 묻고 대답하는 내용이었다. 그 통화 당사자(농민 시위대 중 한 사람으로
이번에 재판을 받은 사람이었다)는 홍콩 시민들이 얼마나 우리 농민 시위대들에게 잘 해
주고 친절했었는지, 또 관용적이었는지 불편함이 전혀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기소된 11명 중 8명은 법원에서 무죄 석방되었다며 홍콩 검찰의 터무니없음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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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서 "만세" 부를 일인가

게재일 : 2006년 01월 13일  [6면]  글자수 : 1043자

  
11일 오후 홍콩 섬의 맞은편 주룽(九龍) 지역 관탕(觀塘)법원 앞에선 "만세"소리가 터져나왔다. 지난해 12월 17일,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 폐막 전날 폭력시위 혐의로 기소됐던 한국인 11명 중 8명이 홍콩 당국의 공소 취하로 풀려났기 때문이다. 나머지 3명은 3월 1일 다시 재판을 받는다.



한국인 시위대는 12일 "8명이 무혐의로 풀려난 것은 당연하며 나머지 3명도 무죄"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낯선 이국 땅에서 일주일 동안 단식투쟁까지 하면서 고초를 겪었다. 가족들도 마음이 아팠을 것이다. 이들 중 단순시위 가담자는 더더욱 억울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정을 모두 감안해도 이들이 승리를 자축할 상황은 아닌 것 같다. 지난해 12월 17일로 돌아가 보자. 당시 홍콩 도심에선 한국인 시위대가 홍콩 경찰 허가 없이 시위를 벌이면서 이를 제지하는 경찰들에게 죽봉과 각목을 휘둘렀다. 중심가는 10여 시간 동안 무정부 상태였고, 한국인 시위대 1000여 명이 연행됐다. 퇴근길의 홍콩 시민들은 50여 년 만에 가장 큰 불편을 겪었다.



WTO 각료회의 시작 전 시위대 집행부가 두 차례나 평화시위를 다짐했던 게 무색했다. 이후 홍콩 시민들은 "한류(韓流)가 폭류(暴流)가 됐다"고 비꼬았다. 홍콩에 사는 한인들조차 "폭력시위 주동자를 법에 따라 엄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콩 당국이 고심 끝에 공소 취하 결정을 내린 것은 이들의 무죄를 믿었기 때문이 아니다. 과거 50여 년간 폭력시위를 접해 보지 못해 시위 현장에서 충분한 증거를 확보치 못했기 때문이다. 또 홍콩 내 민주파 정당.단체들이 이번 사태를 '행정장관 직선제' 관철 운동에 연계할 움직임을 보인 점도 작용했다. 그래서 홍콩 언론들은 12일 "이번 공소 취하 조치로 홍콩의 법 질서가 무너졌다"며 당국의 '무죄 석방'을 맹비난했다. 한국인 시위대가 홍콩 사회에 남긴 '과격.폭력시위'의 기억은 오랫동안 남아 있을 것 같다.



최형규 홍콩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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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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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완규 2006-01-13
    wti.or.kr 에 들어가서 논문 및 기고글에 그시각 거기에 있던 엄기호님이 남기신 글을 읽어 보면
    이번 홍콩에서 있었던 일에 대한 또 다른 보고서를 볼 수 있읍니다만
    최형규의 글과는 너무나 대조적 이란 소회 입니다 어쨌든
    사고방식의 다름이 지역감정도 아니고 양반상놈타령도 아니고 하 답답합니다
    사족이지만 서구에서는 구체적인 자료를 근거로 하냐 마냐가 진실이냐 허위냐를 넘어 형사상 유죄무죄의 기준으로 삼는다 합니다 이는 시위나 글쓰기 에 공통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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