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이야기

농사이야기

어느새 시월

  • 길벗
  • 2023-10-03 10: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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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0.70.178.159
오늘 아침 와야리 사과밭에 가서 찍은 부사(후지) 사과 밭 중 어린 나무가 있는 곳입니다. 이제 조금씩 색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부사밭 옆에 약 70여 그루 있는 양광사과밭 모습입니다. 일주일 후면 수확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추석 지나고 기온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밤에는 10도 이하로 내려가고 일교차가 큽니다. 낮 온도도 20도 겨우 넘기는 정도가 되어서 요즘 계절 날씨가 왜 이런가 걱정을 많이 합니다. 아직은 낮 기온이 높아야되고 햇살도 좋아야 하는데 요 며칠 흐리고 날씨가 그저 으실으실한 기운을 느끼게 합니다. 10월 말 정도 되어야 이런 날이 맞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봄, 가을이 사라지고(짧아지고) 여름과 겨울만 길어지고 혹독해진다는 말이 있던데 정말 지구의 기후가 이렇게 급격히 변화하고 있는 건지. 신문과 방송에는 몇십 년 뒤에는 이제 남한에서는 더이상 사과 재배가 안될 것이라는 기사가 자주 뜨던데 그때 일이야 내 죽은 이후니까 알 바 아니지만 현재 이렇게 피부로 변화를 느끼고 또 여파를 당장 받아야 하는 농부의 입장에서는 여러 걱정과 위기감을 느낍니다.

어릴 때 땅바닥에 부지런히 오가는 개미와 땅속에 집을 짓고 사는 개미집을 오랫동안 보면서 그때 이미 우리 사람들도 저 먼 우주에서 누군가 내려다보면 이와같이 아주 조그만 존재로써 그저 지구 껍데기를 오가는 의미없는 몸짓이 아닌가 상상해본 적이 있습니다. 이제 나이를 먹고 지나온 시간들을 돌이켜보니 참 어리석은 존재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오히려 본능에 따라 그저 자기의 시간을 변함없이 어김없이 살아가는 자연의 여러 존재들이 어쩌면 우리 인간보다 더 현명하고 순한 존재들이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자연, 그속의 생명들에 대해 새삼스레 이 나이 먹어 다시 바라보게 되고 또 그 존재의 의미를 떠올리게 됩니다. 인간이 온갖 문명의 이기를 가지고 이렇게나 엄청난 편리한 생활을 영위하지만 사실 알고보면 엄청난 존재인 자연 속에서 그저 너무나 작은 몸부림을 치면서 그러나 그러한 오만한 자세를 본인들은 모른채 잰체 살아가는 미물임을 요즘 들어 많이 생각합니다.

결국 유한한 시간을 이 땅에서 보내다 어딘지 모를 곳으로 <돌아간다>는 이 설정, 그래서 이 땅의 모든 것 공기, 땅, 나무, 이웃 동물들이 그저 내게 허락된 시간만큼 나와 같이 지내는 공동체라는 것을 다시금 인식하게 됩니다. 30대 초반에 읽은 헨리 조지의 책들, 그때 만나서 인터뷰를 하고 그 덕분에 그 분의 저작을 읽게 된 대천덕 신부님이 요즘 많이 생각납니다. 우리는 그저 이 자연과 사회 속에서 잠시 이들을 맡아서 사용하다가 어느 날 <돌아가는> 것이지요.

어려서 영민하지 못해서 그저 남들이 설정해놓은 길을 따라, 그마저도 지혜롭지 못하게 막 살아온 지나온 시간들이 지금 많이 후회됩니다. 인생의 반환점을 돌아온 지점에 이르러서야 뒤를 돌아보게 됩니다. 그때, 30대 40대에는 도무지 알 수 없었던 어리석었던 시간들, 그때는 그 시간이 얼마나 귀중한 순간들이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이런게 인생이라면 앞으로 남은(얼마나 남았는지 역시 모르지만) 시간들도 또 그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러나 이제는 알게 되었습니다.

매순간 지금 이 시간과 과정을 아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으로, 그전에는 그런 것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께서 제 어릴 때에 늘 저보고 넌 늦된다고 하셨습니다. 무슨 뜻일지 그때도 지금도 모릅니다. 다만 그런 만큼 내가 영악하지도 또 머리도 좋지는 않았구나 하는 자각을 이제 합니다. 어떻게 살든, 살아왔든 그저 타고난 자기의 운명이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그 길을 따라 그저 순명하며 살 수 있다면 지금보다 조금은 더 의미있는, 행복한 시간을 이 지상에서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올 가을 예상했던 농사의 수확(홍로사과) 예상이 무참하게 깨지면서 인간의 계획은 다 부질없는 쓸데없는 짓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그저 주어진 자연의 시간을 받아들이고 알 수 없는 곳으로 가고 있는 지상의 시간도 이제는 무조건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연휴 기간 동안 저도 아무 일 없이 그저 휴식을 갖고 있습니다. 이제 다시 노동을 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이번 홍로사과로 담아서 현재 발효 중인 사과와인도 랙킹을 해야하고 일부는 벌써 여과작업도 해야 합니다. 

지난 여름 한달 넘게 드문드문 작업했던 사과증류주 만드는 작업의 결과로 나온 600리터 쯤 되는 처음 만드는 사과증류주(아직 이름을 확정짓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 후숙 중입니다)의 병도 이 달에는 정해야 하고 곧 첫 출시를 해야 합니다. 사과농사가 올해도 소득면에서는 결과가 별로 좋지 않았기 때문에 사과와인과 이 증류주의 완성과 판매가 우리 농장 운영의 중요한 키가 될 것입니다.

내년에는 시음장과 체험장을 지어야 합니다. 너무나 많은 고민과 생각이 매일 머리속을 헤매고 있습니다. 이제 내년까지 그간 계획해왔던 것들을 이루고나면 이후에는 운영에만 신경을 쓰게 될텐데 앞에서 이미 깨달았다고 했지만 우리 인간의 계획과 미래는 오직 자연의 시간 속에서만 의미가 있습니다. 제 뜻대로 맘대로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곳에 오시는 길벗님들의 말없는 후원과 관심을 늘 고맙게 생각합니다. 사실 젊은 나이에 시골에 오면서 무슨 농촌운동을 하러 온것도 거창한 이념과 사상의 실현으로써 온 것도 아니고 아주 이기적인 생각-도시생활이 싫어서, 농사가 좋아서-으로 왔기 때문에 지금도 제가 무엇을 내세울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늘 부족하고 별볼일 없는 농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저 이렇게 로빈슨 크루소처럼, 조용히 이름없는 돌맹이처럼 살다가 떠나는 그날까지 지상에서 큰 일 없이 자연 속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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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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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자안 2023-10-20
    선생님, 길벗을 우연히 알게 되어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는 서울에 사는 청년입니다. 고등학생 시절 유럽에 가서 압펠숄레를 너무 맛있게 먹었던 터라 검색하다보니 길벗을 알게 되었네요. 증류주도 여러 칵테일에 취미가 있는 입장에서 큰 기대가 됩니다. 올해 날씨와 병해 때문에 고생이 많으셨던 것 같은데, 앞으로는 더욱 순조로우시길 바라겠습니다. 제품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십시오.
  • reply 길벗 2023-10-22
    안녕하세요? 예전에는(홈피 리뉴얼하기 전) 이 게시판에서 댓글이 왕성했었는데 요즘은 거의 쓰시는 분이 없는데 소식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저희 농장과 또 술 관심있게 보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자주 오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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