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이야기

농사이야기

속 썩이던 홍로수확이 끝났습니다

  • 길벗
  • 2023-09-21 07:10:00
  • hit553
  • 211.218.156.33
올해 홍로사과 작황은 7월까지 좋았다. 그러다 긴 장마와 뒤이은 폭염에 전국적인 탄저병 유행으로 우리도 그 여파를 피해갈 수 없었다. 아마 전체 수확량의 절반 가까이 땅에 버린 것 같고 수확 후에도 선별 과정에서 또 1/3 가량이 버려졌다. 물론 이 사과들은 흠집과 병반을 도려내고 사과즙을 짜는 공정으로 넘어간다.
아마 약 5톤 정도의 사과가 이렇게 사과즙 가공으로 들어가서 와인과 식초로 이용될 예정이다. 사과와 배는 생과로 상품성 있는 것을 팔아야 소득이 되는데 올 추석사과 홍로 농사는 그야말로 최악이다.


어제는 종일 장대비가 내렸다. 여름 장마비 못지않은 위세였다. 사과 수확을 앞두고 벌써 몇 차례 비가 왔고 지난 주에는 연속 3일 비가 내렸다. 사과 농사꾼에게는 최악의 해로 기록될 것 같다. 예상했던 수익의 절반도 채 못한 것은 물론 그나마 선별해서 보낸 사과 중에 미처 못본 점 찍힌 것 같은 탄저병 사과들이 배송 중 손톱 크기로 커져서 막상 사과를 받은 소비자들의 항의를 받아야 했다. 

올해는 다행인지 동네에 와있던 동남아 인력 부부를 3주간 우리집에서 숙식을 제공하고 추석사과 홍로 작업을 했다. 중간에 인력회사에 두번 추가 인력을 요청해서 이용하기도 했다. 그렇게 들어간 인건비만 3백만 원이 넘는데 올봄 심기일전하여 적과(열매솎기)작업에 투입된 인력비도 만만치 않다. 거기에 올해부터 다시 치기 시작한 농약값(물론 저농약 수준이긴 하지만)을 더하면 올 홍로농사 수입은 모두 이 지출에 할당될 판이다.

결국 남은 양광과 부사 수확에서 나올 수익이 우리의 순수입이 될 것이다. 올 홍로농사를 치르면서 처음으로 홍로 사과나무를 베버릴까 하는 고민을 했다. 이렇게 더운 날씨에 추수를 해야 하는 품종의 특성상 앞으로도 날씨가 도와주지 않으면 결국 고생만 하고 아무런 보람을 얻기 힘들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 고민은 아마 겨울까지 계속될 것 같고 향후 어떻게 운영을 해야 할지 많은 생각을 해야 할 것 같다.

덕분에 내년 사과와인과 증류주 만들 사과는 많이 나온 셈인데 지난 2년간 만들지 않았던 사과식초를 올겨울엔 한 배치 만들 계획이다. 특히 올 가을이나 겨울에 첫선을 보일 사과증류주(아직 이름을 짓지 못했다)의 시장 평판에 따라 내년에도 증류주를 많이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사과와인 제조에 많은 사과가 필요한 시점이다. 올해도 작년처럼 내 사과에 더해 이웃의 사과를 일부 구입해야 할 것이다.

아무튼 홍로사과 수확이 거의 마무리되었고 지난 3주간 수확과 포장, 배송에 힘들었던 시간을 한 숨 돌리고 좀 쉬어야 한다. 그러나 농사는 일이 끝이 없다. 늘 새로운 일, 다른 일이 이미 대기하고 있다. 올해 홍로사과 품위는 아주 나빴다. 이 때문에 일부 소비자들의 사진 제보(?)도 있었다. 하긴 홍로사과 판매하면서 매년 겪는 일이긴 한데 올해는 솔직히 사과박스를 보내는 나로서도 참 기운이 빠지는 한 해였다.

이곳에 오시는 길벗님들에게 감사와 죄송한 말씀을 드린다. 

게시글 공유 URL복사
댓글작성

열기 닫기

댓글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