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저녁에 두세시간씩 과수원 풀을 계속 깍는 중이다. 6천평 과수원을 혼자서 하다 보니 늘 일은 끝날 줄을 모른다. 사진 속 이 과원은 3년생 핑크레이디 품종이 심겨져 있다. 홍옥보다 더 신맛을 자랑하는 극만생종이다.
한낮엔 그야말로 땡볕, 다행히 밤엔 이제 시원한 바람이 분다. 장미 뒤끝에 집 올라오는 길가 소나무가 쓰러져 전선을 덮쳤다. 오후 늦게 발견, 한전에 연락하니 밤 8시에 와서 깜깜한 밤에 1시간 넘게 작업하여 문제 해결하고 갔다. 이런거보면 참 고마운 시절인데 큰 사고가 계속 터지고 뒤이어 하는 소리를 들으면 복장이 터질 지경이다.
날이 쨍하니 그간 간단없이 발병하던 사과밭 병해는 바로 스톱을 했다. 이제 사과색이 들면서 굵어지는 시간. 수확 때까지 큰 태풍만 없다면 그저 평년작은 될 것이다. 노지에서 짓는 농사는 어찌됐든 몸을 써야만 하는 직업. 그러나 수입은 별게 없고 몸만 고되니 젊은이들이 기피하는 대표적인 업이 되었다.
하긴 이곳에서 내가 겪어보니 농사꾼인 부모부터가 자식이 농사를 한다고 하면 거의 대부분 결사 반대다. 그러니 이젠 농촌엔 노령자만 남았다. 일손이 빈 자리에 동남아 인력이 들어와 다 메꿨다. 농사뿐이 아니라 면소재지 식당에도 어딜가나 동남아 인력이 서빙과 주방에 들어차 있다. 더 늦기 전에 이민을 받아들이는 정책을 서둘러야 하는게 아닐까.
내 경우 아들 둘 중 하나는 반드시 나와 같이 농사를 짓게 하려고 농업계통 학교에 보내고 농업후계자를 만들고 농사 공부좀 더 하라고 먼 독일까지 돈 들여 유학을 보냈건만 대학원 졸업 후 결국 그곳에서 직장을 잡아 이제는 돌아와 농사는 커녕 아예 그곳에서 눌러 살려고 하는 아들놈을 보며 내 인생의 한 실패를 실감하는 중이다.
롱펠로우 시에 나온 것처럼 자식은 화살이라더니 시위를 떠난 화살을 이제 어쩌랴. 여름 휴가를 맞아 3주간 한국에 와있는 아들놈과 어제 간만에 길고 깊은 얘기를 나눴다. 그간 그나마 혹시, 어쩌면, 설마 하면서 때가 되면 들어와 나와 같이 농사를, 양조장을 이어가겠지 하던 나의 기대는 무참히 깨지고 나는 큰소리도 못치고 그저 아침 일찍 일어나 예초기를 메고 홀로 사과밭으로 갔다.
이상하게 사과밭에만 들어서면 아프던 어깨도, 상심하던 마음도 다 잊혀지고 그저 작업에 몰두하게 된다. 나뭇잎은 나의 기분을 어루만져주고 둥근사과와 허공을 찌르는 가지는 나에게 얘기를 걸어온다. 그들은 표정이 있다. 순간 나는 바보같이 세상의 일과 나의 형편을 모두 잊어버리고 그저 나무와 노는 순한 머슴이 되어 있다.
친하게 지내는 이곳 토박이 농부 세영 형님은 올해 칠십인데 말로는 팔십까지 농사를 짓겠다고 큰 소리를 친다. 그래 나도 칠십까지는 지어야겠다. 아니 농사꾼이 은퇴가 어디 있어, 끝까지 가는 거야. 이러다 묻고 떠블로 가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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