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5시에는 기상하여 와야리 사과밭으로 적과를 하러 간다. 1차 적과 때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혹은 두고 지나간 것들을 계속 솎아주고 있는 것이다.
사다리를 타야 할 때도 있고 고지가위를 이용하여 손이 안닿는 곳에 있는 사과도 솎아주고 있다.
올해는 현재까지 홍로 작황이 좋다. 수량도 많고. 다행이 큰 병해는 아직까지 없는데 그간 자주 온 비 때문에 점무늬낙엽병이 살짝 왔다.
지난 3년간 무농약하다가 초반에 그만 병충해를 잡지 못해 농사를 완전히 망친 덕분에 올해는 예전대로 저농약 방제로 하고 있다.
무농약 혹은 유기농 사과에 대한 꿈을 이제는 완전히 접었다. 적어도 내 실력과 자본으로는 사과 무농약 농사는 이제 무리라고 본다.
친환경 농사는 농사철학과 삶의 태도와 관계된 가치의 문제인데 현실적인 문제(지난 3년간 사과농사로 인한 수입이 전무한)를 이겨낼 재주(부모가 빌딩이라도
물려 주었다면 그것으로 버틸 수 있었을런지 ㅋ)가 내게는 없기 때문에 이제는 포기한 것이다.
그래도 껍질째 먹는 사과라는 나의 오래된 사과농사 원칙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비록 농약 방제를 하더라도 소비자가 먹는 시점에서는 농약 잔류가 없어야
한다는 원칙은 계속 이어갈 것이다.
어쨌든 이제는 슬슬 판매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이 많은 량의 추석 사과를 어찌 다 팔것인가. 아니 또 수확작업을 할 인력은 어찌 구할 것인가.
모든 것은 다 불확실하다. 늦은 장마가 다음 주부터 시작될 모양이다. 모든 농사에 장마는 가장 큰 걱정거리이다. 그러나 자연이 하는 일을 어찌 막아낼 수가
있는가. 그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사과농사는 재미있다. 적어도 나는 이제까지 사과농사가 지겹다거나 힘들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다. 비록 수입이 매년 들쑥날쑥, 어떤 해는 그야말로
손가락을 빤 적이 있어도 사과농사를 원망해본 적은 없다. 언제나 사과밭에 들어서면 기분이 참 좋다. 나무가 이쁘고 땅과 거기에서 사는 잡초가 모두
사랑스럽다. 매년 같은 시기에 같은 풍경을 보여주는 농사이지만 매년 새롭고 밭에만 가면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환해진다. 그것은 사과농사가 주는
수입과 관계없이 그저 그 풍경과 나무와 열매가 사랑스러운 것이다. 사과나무 사이 열간에 들어서서 이런저런 일을 하다보면 시간이 언제 가는지 모르고
세상 번뇌, 시름 같은 것은 떠오르지도 않는다.
나무는 살아있다. 집에 고양이와 강아지와 닭이 있지만 그것 못지 않게 말없고 움직이지 않는 나무가 주는 위안과 사랑스러움이 있다. 거기다 그네들은 매년
달콤한 열매를 우리에게 선사한다. 바람에 팔랑이는 나무잎과 가지들은 마치 우리에게 무언기 노래를 들려주고 싶어하는 듯 하다.
그래서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사과밭에 간다. 어쩌다 하루 쉬는 날이 있다. 그런 날도 사과밭에 가지는 못하지만 그 풍경을 떠올리고 마음은 거기에 있다.
육체적 힘이 다하는 날까지 이 농사를 짓고 싶다. 누가 이 농사의 후계자로 올지 모르지만 오래도록 사과나무와 함께 나의 시간을, 생을 함께 하고
싶은 것이다. 올해 무난히 여름을 보내고 풍성한 가을을 보고 싶다. 그리고 그 열매를 가지고 올 겨울 맛있는 술과 식초와 사과주스를 만들고 싶다.
자연이 주는 이 무한한 수레바퀴 같은 시간과 그 속에 담긴 의미를 농사 속에서 지구별에 사는 동안 함께 만끽하고 싶은 것이다.
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