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이야기

농사이야기

이렇게 바쁜 봄철

  • 길벗
  • 2023-04-13 2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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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조장 설비 구축에 지난 2년간 올인했다. 돈도 많이 들고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경험도 없이 뛰어든 양조사업. 그저 책으로, 견학으로 하나씩 알아가면서 조금씩 장비를 마련하고 그러다 다시 또 부족한 것이 생기고 그러면서 사과와인을 만들었다. 품종의 한계를 절감하면서 이제 두번째 양조작업을 마쳤다. 앞으로 헤쳐나갈 과제가 크다.
증류기도 이제는 가동을 해야 한다. 지난 겨울 사과와인을 잔뜩 마련해놓았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 지 막막하기도 한데 다행히 경험 많은 분이 첫 작업을 도와주겠다고 자원하셔서 기대를 해본다.
겁없이 자동 라벨러를 질렀다, 아직 포장도 뜯지 못했지만. 7천병을 수동 라벨러로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생각했으나 그러나 자금의 압박으로 후회를, 그러나 이젠 어쩔 수 없는.
기존 탱크의 용량 부족으로 6톤 탱크를 이번 봄에 장만했다. 그러나 업자를 잘못 선택, 마음 고생이 컸다. 하긴 가공사업을 시작하고부터 우리나라가 얼마나 '안선진국'인가를 때때로 자각하고 있다.
앞으로 증류기를 이용, 증류주를 대량 생산할 것이라고 통 크게 1.2톤짜리 냉각기를 구입했다. 냉동여과를 위해 증류주를 영하 5도 정도로 냉각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너무 비싸서 며칠을 고민하다가 결국 질렀는데 결과가 좋기만을 기도해본다.
작년에 집 옆 예전에 계란작업장으로 쓰던 오래된 건물을 정식 건축물로 허가 받고 화장실과 주방 그리고 방을 들였다. 그 방에 전기판넬을 엊그제 깔았다. 벽과 천장은 단열벽지를 직접 붙일 계획인데 원래 저온저장고로 썼던 판넬집이라 단열은 오히려 좋을 것이다. 앞으로 숙식을 하는 일꾼들이 기거할 목적으로 하는 것인데 당분간은 봄, 가을에만 며칠씩 사용될 것 같다.

사과밭 전정은 큰 밭은 진작에 다 마쳤고 이제 작은 밭 한 뙈기만 남았는데 매일 아침 6시면 와야리로 가서 오전내 몇 줄씩 마무리 작업을 하고 온다. 오후에는 집에서 이런저런 해야 할 일들이 쌓여 있고 저녁에는 또 서류작업이 기다린다. 도무지 쉴 틈이 없다. 그 와중에 방 꾸미는 작업도 했다.

몸살이 오려고 하는 걸 살살 움직여서 겨우 넘겼다. 그랬더니 평생 겪어보지 못했던 잇몸이 붓고 치통이 왔다. 아, 치통이 이런 거구나... 안사람이 치과에 가라는 걸 하루만 더 참아본다고 했는데 다행히 오늘 낮부터는 가라앉고 통증도 가셨다. 그래, 병원은 사치야.

지난 주에 사과밭 첫 방제를 했다. 아침에 영하의 기온이었는데 미룰 수가 없어(화상병 방제는 의무적으로 해야만 한다) 손을 비벼가면서 서리가 내린 밭을 약차를 타고 돌아다녔다. 지난 3년 사과농사를 망쳐서 올해는 기필코 잘 지어보려고(하긴 화학적 방제를 하지 않았으니) 예전처럼 저농약 기준에 맞춰 철저히 해보려고 한다. 무엇보다 적과(열매솎기)가 가장 큰 일인데 이제 농촌의 인력난은 그 도를 넘어섰다. 필리핀, 태국, 미얀마 등 동남아에서 인력이 오지 않으면 우리 농업은 바로 올스톱이다. 지자체가 정식으로 몇 달 단기간 들여오는 인력도 있고 불법노동자도 천지이고 중앙정부가 산업연수생 명목으로 몇 년씩 비자를 주고 들여오는 인력도 있다.

과수농사는 채소농사와 달리 단기간 일손이 필요한 농업이라 그때그때 손이 구해져야 하는데 이건 이제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다. 수확도 그렇고 가장 큰 일인 적과(열매솎기)도 그렇다. 이 없으면 잇몸으로. 아마 이게 우리의 새로운 구호가 되어가고 있다.

사람들이 예전보다 사과를 덜 먹는다고 한다. 주변 사과농민들의 표정이 어둡다. 작년에 비가 많았고 수확기 서리가 내려 저장성도 떨어져서 소비자들이 외면한다는 얘기를 몇 번 들었다. 그저 한 해 지나가는 사정인가. 아니면 딸기나 수입과일에 밀려 이제 사과 인기가 시들해지는건가.

사과와인은 많은 과제를 내게 안겨주었다. 우선 품종의 문제. 맛의 문제. 유통의 문제. 하나씩 생각에 생각을 더하고 고민하고 또 시험해보는 중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것이 큰 문제. 좀더 이른 나이에 시작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행운은 주어지지 않았다. 나 어릴 때 외할머니가 가끔 넌 늦된다고 하셨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나는 철이 늦게 드는. 후회가 막심이나 그러나 타고난 운명을 바꿀 수는 없는 법.

확실히 몸은 몇 년 전과 다르다는 것을 이번 봄에 체감 중. 그저 육체적 힘도 좀 남보다 늦게 소진되는 편이기를 기도하는 수 밖에. 이렇게 바쁘고 정신없는 봄은 처음이다보니 이런 생각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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