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당길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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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 18도를 기록한 날이었습니다

  • 농당
  • 2005-12-12 21: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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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겨울 들어 두번째로 영하 18도를 기록한 날이었습니다. 이제 1월이 되면
한 일주일 정도는 영하 20도를 넘나들겠지요.

이곳에서 한 5년 살다보니 이젠 체감으로 그날의 기온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우사에 나가서 10분 정도 있어 보면 귀가 아프도록 시리면 영하 15도를
넘어선 날입니다.

기온은 영하이지만 우리 집은 남향집이라(이곳 사람들의 표현에 따르면
우리 집은 '된양지'입니다. 그렇다면 겨울에 해가 거의 들지 않는 곳은
뭐라고 할까요. 답은 '개응달'입니다) 낮엔 따뜻합니다.
정말이지 이곳에 살면서 태양(햇빛)의 소중함과 그리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귀농 5년차에 요즘 제가 피부로 느끼는 것은 이 정부가 농촌을 정말이지
관심 두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 이전 정부도, 그 전전 정부도,
아니 애초의 정부부터 농촌은 이미 논외의 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며칠 전에는 '철민 아빠'와 늦은 저녁에 식당에 가서 한 잔을 했습니다.
지금 이 나라 농사꾼의 삶(우리 자신과 또 우리 이웃의 삶을 다 통틀어)은
붕괴 직전에 있음을 서로 얘기했습니다. 오늘 아침 영하의 기온도 지금
우리 농민의 혈관에 흐르는 체온보다는 높을 것입니다.

문제는 철저히 농업의 희생 위에서 살아가는 이 나라의 경제와 도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나아가 오히려 농촌과
농민을 무시하기까지 한다는 것입니다.
어디에도 진정으로 농민의 삶과 정서를 이해해주고 위로해주는 곳은
없는 듯 싶습니다.

5년 전 귀농할 때 그 해 여름 풋고추 한 상자 값은 만 원 내외 였습니다.
지난 5년간 늘 그 가격대 내외에서 오르락내리락 했습니다. 가끔 며칠간
고추값이 2만원을 넘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고는 그만입니다.

그런데 5년 전 농사용 전기를 설치해주는 대행료(전기업체가 한전에서
계량기를 받아다 위탁 공사를 해줍니다)가 35만 원이었는데 지금은 65만원을
요구합니다.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5년 전 오이 값은 한 상자(8키로)에 만 원 내외였습니다. 올해는 평균 만 원도
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비닐 값이며, 비료, 인건비, 위탁 수수료 등은 하루가 다르게 올랐습니다. 농사꾼의 실질소득이 이와 같을진대 농민들이 도무지 살아나갈 재간이 없습니다.

15년 전 쌀 한가마니(80키로) 값이 12만 원 했습니다. 올해 초 쌀값은
16만 원 정도 했습니다. 올 추수 후에는 수입 쌀 때문에 현재 14만 원 정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15년 사이 우리 물가는 얼마나 올랐을까요?

농민이 헐벗고 고통 당하는 그 위에 도시의 휘황한 불빛과 소비가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1년에 외식 한번도
못하고 영화 한 편도 못보는 농민들의 서러움 위에서 우리의 정치가, 경제가
미래를 운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농업이 여타 산업과 다른 생명산업이라는 이미 고전이 되어버린, 다 아는
얘기는 더이상 하고 싶지 않습니다. 핸드폰 수출해서 쌀, 채소, 과일
더 싸게 사먹으면 된다는 이젠 무식하지도 않은 얘기를 여기서 반박할
더이상의 이유도 없습니다.

어느 농민의 저주스런 말처럼 기상재해가 나서 밀 수입이 끊기고 국제
쌀값이 천정부지가 되어 차 한대랑 쌀 한 말이랑 바꿔 먹자고 해도
사먹을 수가 없는 현실이 되어야만 농촌을 되돌아보게 될런지......

철민 아빠와 늦게까지 쓴 술을 먹으면서 나눈 얘기들입니다.
언제쯤이나 농촌에 이 한파가 물러가고 따뜻한 봄날이 올런지요.
언땅은 봄이 오면 녹고 새 생명이 피어오를텐데 우리 농민의 꽝꽝 언
마음은 언제나, 또 누가 녹여줄런지요.

날씨가 하 추워 오늘 밤은 이런 글을 쓰게 되네요.
감기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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