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이야기

농사이야기

지난 이야기2 - 홍천사과축제가 열리기까지

  • 길벗
  • 2018-05-03 19:35:22
  • hit1018
  • 222.113.162.103

강원도에서는 처음 열린 사과축제. 제1회 홍천사과축제는 기대 이상으로 많은 사람이 모였고 관심을 끌어 대성공을 거두었다.


홍천 사과농가들도 대부분 이틀 동안의 이 축제에서 많은 사과를 판매했고 축제를 보러온 시민들도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즐기는 등 성공적인 행사였다.

-----------------------------------------------------------------------------------------------------

이제는 정년 퇴임한 홍천군농업기술센터 소장님이었던 윤용권 소장님은 내가 도시와 농촌을 아울러 이제까지 살면서 보아온 공무원 가운데 가장 훌륭한 분이었음을 여기 적어둔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 분이 공복으로서 가장 훌륭한 점은 민원인(그분에게는 대부분이 지역 농민이었겠다)의 얘기를 잘 듣고 경청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끊임없이 대화를 이어나가는데 선약이 있거나 민원인이 먼저 일어나기 전에 그 자리를 파하는 적이 없었다. 내가 귀농하여 이런 분을 만난 것을 나는 내 귀농 인생 최고의 행운으로 여긴다.

또한 윤 소장님은 늘 새로운 것에 대해 공부하고 자신의 풍부한 경험과 지식을 아낌없이 나눠주기를 주저하지 않으신 분이다. 그러니 나와 한번 자리에 앉아 얘기를 시작하면 끝이 잘 보이지 않을 만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야기가 흘렀다. 그리고 겸손함, 결코 자신의 위치를 내세우거나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는 언행을 하지 않으신다는 점에서 인간적인 성숙함과 깊이를 알 수 있는 분이었다.

나는 홍천사과연구회 회장으로서 세 번에 걸친 내 임기 6년 가운데 그분과 2년 반을 함께 할 수 있었고 이후에도 평회원인 농민으로서 주저없이 소장실 문을 열고 자주 대화를 나누었다.

이 분과의 에피소드는 나중에 따로 한 챕터를 써야 할 만큼 많고 또 진하다. 나는 윤 소장님이 은퇴하신 이후에도 일년에 두 세 번 그 분이 거주하는 춘천으로 가서 사모님을 모시고 식사를 꼭 해왔다. 그리고 명절에도 잊지 않고 예를 갖추었다. 이러는 나에게 윤 소장님은 당신이 재직시에 내게 개인적으로 해준 것도 없는데 은퇴 뒤에도 찾아와주어 고마움과 미안함을 토로한 적이 있는데 내가 만약 그 분 재직시에 뭐라도 개인적인 사업지원을 받아서 그런 것이라면 그것은 길종각이라는 인간의 인간성에 대한 모독일 것이다.

각설하고 6월 어느 날 소장실로 윤 소장님을 찾아가 사과축제를 해야겠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최 회장이 얘기를 하지 않았느냐고 했더니 금시초문이라고 했다. 나는 그럴 줄 알았다고 하고 그래서 내가 직접 의논드리러 왔다고 했다.

“가을에 홍천사과 축제를 하고 싶습니다”

“축제요? 기존에 하는 사과판매 행사를 말씀하시는 거지요?”

“아니요. 몇 년 째 홍천오미자연구회와 같이 하는 그 판매행사 말고 따로 사과만 떼어서 축제를 하고 싶습니다”

“축제는 규모와 예산이 다른데 그게 가능할까요?”

“그래서 소장님을 찾아왔습니다. 뭔가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나는 5월에 있었던 사과연구회 임원회의 때 내가 왜 올해 사과축제를 해야하는지에 대해 임원들을 설득한 얘기와 최 회장이 끝까지 반대했다는 것과 그러나 이제는 사과축제를 해야 할 때라고 힘주어 윤 소장님에게 역설했다.

“그럼 현재 사과와 오미자 판매행사 지원예산이 각각 5백만 원씩인데 이걸 추경에서 같은 금액을 증액해드리겠습니다. 그럼 좀 판매행사 규모를 키울 수 있을 겁니다”

“소장님, 저는 지금 이제까지 해오던 판매행사를 좀더 크게 하자는 얘기가 아닙니다”

“그럼 홍천배도 같이 하시면 어떻겠습니까?”

“소장님, 제 의견은 이제는 사과 단독 축제를 하자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다른 작목과 합동으로 하는 판매행사는 안하겠습니다. 오직 사과 단독 행사를 원합니다. 다만 우리 사과축제에 다른 작목반이 와서 판매를 하는 것은 좋다고 봅니다”

“작년에 보니 가을에 북방면 사랑말 한우판매 축제 때 관내 여러 농산물을 가지고 가서 판매가 잘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럼 사과축제도 그때 거기서 같이 여는 것은 어떻습니까?”

“아닙니다. 저는 남의 축제에 사과가 끼어드는 것 반대합니다. 오로지 사과축제를 해야겠습니다. 우리 축제에 한우도 배도 오미자도 와서 판매하는 것은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행사 이름은 홍천사과축제가 되어야 하고 방금 소장님 말씀처럼 홍천사과배축제라거나 홍천사과오미자축제라거나 이런 것은 안됩니다”

“축제가 그냥 되는 것이 아니고 예산도 많이 들고 또 할만한 역량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 사과연구회 형편으로 되겠습니까?”

“그래서 이렇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 사과축제를 하고 나서 남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을지라도 저는 올해 반드시 사과축제를 해야 하고 그래야 홍천사과의 미래가 있다고 봅니다”

“알겠습니다. 일단 매년 해오던 사과와 오미자 판매행사 예산은 올해 작년의 두배인 천만원까지 지원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중에 축제가 끝나고나서 윤 소장님은 내가 초여름에 소장실에 와서 축제를 연다고 했을 때 판매행사 규모를 좀 크게 하는 것으로만 끝까지 인식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즉 매사에 앞서가고 나와 얘기가 잘 통하는 소장님조차도 그때는 축제는 무리라는 생각을 갖고 계셨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구체적으로 손에 잡히는 아무런 것도 없이 그저 축제의 당위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도 임원회의에서 축제를 하는 것으로 결정이 났으니 나중에 어떻게 꾸려지더라도 축제는 이제 해야 하는 것으로 우리 앞에 다가와 있었다. 그런데 나의 이런 주장과 돈키호테식 일 진행으로 아무 일도 안한 오미자연구회가 덩달아 가을판매행사 예산이 거저 5백만 원 증액되는 행운을 안게 되었다(계속)
게시글 공유 URL복사
댓글작성

열기 닫기

댓글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