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이야기

농사이야기

사과 수확을 마치고...

  • 길벗
  • 2018-09-19 06:49:26
  • hit1917
  • 220.70.178.179

막바지에 이와 같이 탄저병에 걸린 사과들이 많이 나오고 또 이보다 작은 바늘구멍 같은 점이 찍힌 사과도 무수히 나온 한 해 였습니다


사과 박스 작업과 배송을 마친 어느 날의 작업장 풍경. 올해는 일손이 부족해 세번에 걸쳐 택배 작업을 했습니다. 예년 같으면 대여섯번 했을 작업인데 모아놓았다가 박스 작업을 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내년부터는 아무래도 외국인 노동자들의 손을 빌려야 할 듯 싶습니다

--------------------------------------------------------------------------------------

참 어려운 올 가을 사과 수확 시즌이었습니다.
수확을 하면서 막바지 수확 직전 두 차례의 가을 장마비가 지난 여름 고온에 이어
엎친데 덮친 격으로 사과에 큰 손상을 주었습니다.

홍로 과원 옆 조그만 도랑에 사과 수확하면서 소리를 내며 흐르는 물을 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그만큼 올해는 여름의 폭염도 가을의 세찬 비도(과원이 있는 내촌면에는 8월 말 100밀리미터 정도 내렸습니다) 모두 사과 농사에 치명적인 피해를 주고 갔습니다.

\'껍질째 먹는 사과\' - 이 모토를 사과 농사 지으면서 처음부터 고수해 왔습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친환경 저농약 사과 인증은 수확 한 달 전까지 농약을 방제하는 것이
기준이었습니다. 그래서 보통 잔류기간이 보름인 농약을 칠 경우 그 두배, 즉 수확 한 달 전에 마지막 방제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기준을 이제까지 지켜왔습니다. 반드시 30일이라는 날짜를 문자 그대로 지킨다는 의미보다 약 한달 전이라는 기준을 지켜온 것입니다. 올해는 8월 10일 마지막 방제를 하였으니 대략 수확 일을 9월 10일로 본 것인데 실제는 9월 6일 첫 수확을 했으니 25일 정도 기간을 둔 셈입니다.

그런데 8월 말 두 차례에 걸쳐 큰 비가 내렸고 아직 고온인 날씨 관계로 수확 직전에 탄저병이 온 것입니다. 탄저병은 고온다습한 기후에 발병하고 그 방제는 결국 농약이 사과에 코팅이 되어야 균이 과실 표면에 가해하는 것을 막는 것인데 농약은 잔류 기간이 있게 마련이고 결국 결론은 8월 20일 무렵에 한번 더 농약 방제를 했어야 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아무튼 농사를 지어보니 늘 양심과의 다툼인 것 같습니다. 아예 무농약이거나 유기농이라면 모를까 농약 방제를 하는 입장에서 그 시기를 두고 늘 갈등을 겪습니다.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내 가족, 소비자들과의 약속과 기준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나 역시 사과 수확하면서 과원에서 따는 즉시 사과를 먹어보기도 하고 또 일하는 아주머니들도 새참 시간에 사과를 수시로 드시는데 <껍질째 먹는 사과>라고 홍보하면서
나(우리)만 껍질을 칼로 깍아먹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또 수확기가 되면 조카도 처제도 와서 손을 보태는데 이 조카딸은 사과를 너무 좋아해
일 도와주면서 종일 사과를 입에 물고 다닙니다. 그런데 이모부 말을 믿고 그냥 쓱 옷에
문질러 닦기만 하고 사과를 먹는 것입니다.

올해는 폭염으로 전에 없이 낙과도 많았고 막바지 병해로 정품 사과도 많이 줄었습니다.
봄에는 냉해로 사과에 동녹이 유례없이 끼기도 했습니다. 사과의 품위에 결정적인 흠인 것입니다.

사과 농사 17년 만에 최악의 해로 기록될 것 같습니다.
농사는 일년짜리 자영업. 제가 겪어본 결론입니다. 작년에 아무리 농사가 잘 되고
맛이 있었다고 해도 올해 그대로 되리란 법이 없습니다. 올해 우리 길벗사과는
작년보다 당도도 아삭거리는 식감도 모두 떨어집니다. 작년에 워낙 맛이 있었기 때문에
올해 주문은 폭주 하는데 사과도 없고 또 막상 받아보신 분들도 실망을 많이 하셨습니다.

어쩌는 수가 없습니다. 특히 올해는 선물용 대과 사과가 거의 나오질 않아서
추석 수요가 많은 선물용 사과는 주문을 받고도 사양을 해야 하는 일이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후배 부인들이 모여 자치적으로 만든 단체에서 받은 사과 주문을
막바지에 결국 보내지 못해서 큰 실망과 피해를 준 일은 두고두고 미안하고
갚아야 할 빚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제 농촌에서 일손 구하기가 어렵다 못해 하늘의 별따기가 되어서
수확철이 되면 두려워지기까지 합니다. 이웃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소개해줄테니
써보라고 하는데 올해는 고민만 하다가 결국 고용하지는 않고 처제 가족과 이웃 귀농한 친구 부부, 대학 동창생들 그리고 남의 농사일에 일당벌이로 오신 것이 처음이라는
근처에 귀촌하신 분 부부 등의 일손으로 사과 수확과 선별, 포장을 하였습니다.

저도 처음으로 밤 늦게까지 불을 켜고 혼자 작업을 하는 등 갈수록 농촌에서
농사 일손 구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아직 일손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나 근처 대파 농장으로 또 지역 단위농협 공선장(공동선별장)으로 그나마 있던 지역 인력들이 빠져나가
우리 같이 단기간 집중적으로 수확하는 과수원에서 일손 구하기가 어렵게 된 것입니다.

올해 우리 길벗사과를 받고 실망하셨을 많은 소비자들께 양해와 미안한 마음을
여기서 전합니다. 농사는 늘 내년을 바라보고 짓습니다. 올해 좋아도 내년은 또 어떨까, 올해 나쁘면 또 내년은 좋아지겠지 하는 마음입니다.

오래전 사랑과 평화 이남이가 부른 \'울고 싶어라\' 노래가 생각나는 올 가을입니다.
윤항기의 \'나는 어떻하라고\'도 생각납니다.
그래도 농사꾼은 실망도 절망도 모두 마음에 묻어두고 어떤 일이 있어도 사라지지 않는 땅을(저에게는 사과나무) 바라보면서 이 가을을 또 겨울을 보낼 것입니다.

이곳에 오시는 모든 길벗님들 추석 명절 잘 쇠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게시글 공유 URL복사
댓글[4]

열기 닫기

댓글작성

열기 닫기

댓글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