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당길벗

농당길벗

오래된 사연

  • 길벗
  • 2021-02-17 15: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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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 홈페이지를 2004년에 열고(그때는 길벗사과농원) 꾸준히 일상사를 써왔는데 그만 이명박이 들어서고나서부터는

전혀, 전혀 글을 쓰고 싶지 않았고 또 쓰여지지도 않았다. 그래서 푹 쉬었는데 아니 박근혜가 다시 들어서는 바람에 나의 애꿎은 절필은

인연을 이어갔다.

나는 편협한 사람이라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몸도 마음도 다 네거티브해지는지라 더는 사람 사는 꼬라지가 눈에 들어오지도

기운도 나질 않았다. 그러다 문재인 대통령이 들어서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이 돌아왔는데 마침 내가 사는 마을 마을사업을 생각지도 않게

참여해서 할 때라 좀 쓸거리가 있었다.

이후 바빴다. 그리고 오래 쉬었다. 나의 사랑하는 선배 영준 형이 어느 날 내게 충고하기를 매일 새벽에 일어나 조금씩이라도, 아무 글이라도 매일 쓰라고

조언을 해주었다. 나도 동감했고 나의 생각은 그럴 듯 했다. 그러나 게으름은 나의 운명, 머리와 뜻과 몸은 늘 따로 구실을 찾았다.

어쨌든 내켜야 뭐든 손이 거드는 성격이라 오늘은 춥고 바람이 세고 온다던 사람도 안오고해서 <농당길벗>에 수년만에 몇 자 끄적거려본다.

 

늙은 도마뱀

 

바짝 마른 길에서

근사한 도마뱀(악어의

한 퇴화인)이

명상에 잠겨 있는 걸 보았다.

악마의 수도원장의

초록 프록코트

적절한 거동과

빳빳이 선 깃,

그는 늙은 교수의

슬픈 모습을 하고 있었다.

무너진 예술가의

시든 두 눈,

어떻게 그것들은 오후를 바라볼까

낙심 속에서!

 

친구여, 이게

그대의 황혼녘의 건강을 위한 산책인가?

부디 지팡이를 드시오!

그대는 아주 늙었소이다, 도마뱀 선생,

그리고 동네 아이들이

그대를 놀라게 할는지도 모르니,

그대는 길에서 뭘 찾고 있소,

내 근시의 철학자여,

바짝 마른 오후의,

너울거리는 환영이

지평선을 망가뜨렸다면?

그대는 죽어 가는 하늘의

푸른 구호품을 찾고 있소?

어떤 별의 돈 한 푼?

아니면 아마

그대는 라마르틴의 어떤 책을

읽었는지도 모르고, 또 혹시

새들의

플라테레스코풍 두음을 즐기는지?

 

(그대는 지는 해를 바라보오,

그리고 그대의 눈은 빛나오,

오, 개구리들의 마왕이여,

인간적인 광채로,

생각들과, 노 없는 곤돌라들이

그대의 타 버린 눈

의 그늘진 물

을 건너가오)

 

그 사랑스런 숙녀 도마뱀을

그대는 찾아왔소?

오월의

밀밭처럼 푸르고,

잠자는 샘의

긴 꼬리처럼 푸른,

그대를 깔보고, 그러고는

그대를 그대의 터전에 내버려 둔 그녀를?

오, 상쾌한 사초 속에서

부서진, 감미로운 목가여!

그러나 사시오! 얼마나 멋진 악마요!

나는 그대를 좋아하오.

"나는 뱀에

반대한다"는 모토는

기독교 대주교의

위엄 있는 겹턱에서 의기양양하오.

 

인제 해는 산맥의 잔

속에 녹아 들었고,

양떼는

길에 떼지어 가오.

헤어질 시간이오;

 

메마른 길과

그대의 명상을 남겨 두시오.

틈이 나

벌레들이 그대를 먹을 때

그대는 별을 바라볼

시간이 있을거요.

 

귀뚜라미 마을 옆

그대의 집으로 돌아가시오!

굿 나잇, 내 친구

도마뱀 선생!

 

인제 들은 텅 비고,

산들은 어스름에 잠기며,

길은 황량하다.

단지, 이따금,

뻐꾸기가 포플러 숲의

어둠 속에서 울고 있다.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1898~1936)

 

이니스프리의 호도(湖島)

 

내 인제 일어나 가리, 이니스프리로 가리,

거기 외 엮어 진흙 바른 오막집 짓고

아홉 이랑 콩을 심고, 꿀 벌통 하나 두고

벌들 잉잉대는 숲속에 홀로 살으리.

 

또 거기서 얼마쯤의 평화를 누리리, 평화는 천천히

아침의 베일로부터 귀뚜리 우는 곳으로 떨어져 내리는 것,

한밤 중에는 등불 깜박이고, 대낮은 자주빛으로 타오르며

저녁엔 홍방울새 날개소리 가득한 곳,

 

내 인제 일어나 가리, 밤이나 낮이나

호수가의 잔잔한 소리 듣고 있으니

한길이나 잿빛 포도(鋪道)에 서 있으면

가슴 깊은 곳에서 그 소리 듣네.

 

-W.B.예이츠(1865~1939)

 

춘천·4 -중도(中島)

 

바람이 분다. 섬이 사라진다.

 

사랑하지마

오지않는 시간을 기다리는 건

사랑이 아니야

바람이 분다

언젠가 돌아올 시간을 데리고

강 건너로 달아났을 때

섬이 다시 보인다.

사랑하지마.

 

어둠이

짙은 안개를 빚으며

나를 무서움이라 한다.

아침이면 건강한 나무로 살아 생을 유혹하고

햇살을 흔들며 긴 긴 오후의 그림자를

미끼로 드리울 때

나는 잠시 이 도시를 떠난다.

무서움이 깊으면 어둠도 깊어라

 

허나 모든 시간은 금빛인 것을

바람이 불고

때가 되어

보이지 않아도

섬은 저 혼자 흐르고 있다.

 

바람이 분다. 섬이 보인다.

-길종각(1981년에 쓴 시)

 

시는 우리에게 삶의 에스프리를 가져다준다. 때로 비수도 보여주고 마음이 얼어붙을 때 나를 숨 쉴 수 있게 해준다.

마음이 답답하고 주위가 어지러울 때 두보를 읽으면 위로를 받는다. 쓸쓸한 기운이 도는 날씨에 마음이 차분해지면 강은교 시를 꺼내든다.

군 복무 중에 정 선생님의 시집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을 재길 형이 소포로 보내주었을 때 그 시집에 실린 이 시를 읽고 마음이 얼마나 푸근했던지.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그래 살아봐야지

너도 나도 공이 되어

떨어져도 튀는 공이 되어

 

살아봐야지

쓰러지는 법이 없는 둥근

공처럼, 탄력의 나라의

왕자처럼

 

가볍게 떠올라야지

곧 움직일 준비가 되어 있는 꼴

둥근 공이 되어

 

옳지 최선의 꼴

지금의 네 모습처럼

떨어져도 뛰어오르는 꼴

쓰러지는 법이 없는 공이 되어

-정현종(1939~ )

 

오래된 사연은 나를 침묵케 한다.

한동안 기온이 올라 살만했는데 어제부터 다시 한 겨울이 온 것 같다.

봄이 오려니까 벌써 겨울이 그리워진다. 시간은 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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