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이야기

농사이야기

봄날은 가는데...

  • 길벗
  • 2021-03-19 11: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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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즙 공장에 명패(?)를 드디어 달았다. 명실상부라고 이름에 걸맞는 제품과 실력을 선보이게 되기를...


출입문 옆에도 문패를 달고.  

내포장실 증축공사는 거의 끝나가고 이제 전기콘센트 공사하고 바닥에 레미콘 붓고 뒤이어 에폭시라이닝 마감만 하면 끝.
아래 사과즙 공장에서 윗쪽 양조장으로 오는 계단과 이어진 데크작업을 이틀 반에 걸쳐 박 선생과 둘이 끝냈다.

 

세월이, 하루하루가 너무 빨리 지나간다.

그리고 벌써 좀 지쳤다. 일은 많고(너무나) 일할 사람은 나 혼자인데(안사람은 공주님) 실제 작업에서부터 서류, 관공서, 은행, 세무서

모든 일을 혼자서(그렇다. 어차피 이 세상은 혼자 사는 곳이다) 다 처리하고 돌아다닐려니 몸도 마음도 모두 방전된 느낌이다.

아마 똑같은 상황이라도 40대 후반이거나 양보해서 50대 초반만 됐어도 아마 이쯤 일은 별 일이 아니었을 수도 있는데

내일모레 환갑이다. 하긴 100세 시대에 환갑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주변 친구들이 누누히 강조하고 있지만서도.

지칠 때 누구나 탈출구가 있을 것이다. 돌이켜보니 젊어서의 나는 그 모든 것을 술로 풀었던 것 같다. 절대 혼술은 못하는 성격이니

누군가와 취하도록 마시며 끝없이 말을 내뱉는 것으로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독기를 내뿜었던 것 같다.

그러나 여긴 시골, 그것도 고향도 아니고 혼자서 하는 자영업 농업, 정말 다행한 것이 몇 년 전 이웃에 박 작가 내외가 이사와서

그나마 숨 쉬고 산다. 그이네와 나는 마침 동갑네라 나이 가지고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서로 똑같이 자영업이라 한 마디 하면

알아듣는다. 그외에도 생각의 코드가 비교적 잘 맞으니 거의 매일이다시피 얼굴 보고 산다. 그래서 내가 아직 미치지는 않는 것 같고

아마 하느님이 불쌍히 여겨 이런 양반을 이웃으로 보내주셨나 보다. 

대개 사람들은 스트레스가 쌓이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고 한다. 여행이야말로 최고의 정신적 휴양을 제공해주는 장치이고 낯선 곳에서

우리는 잠시 삶의 에스프리를 맛볼 것이다. 그런데 요즘의 나는 여행도 싫고 술도 이젠 말술도 못되고(그보다는 술 취한 이후의 흐릿한

정신상태가 싫어진 것이다) 도무지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그냥 멍하고 좀 답답하고 머리 속에는 늘 일과 계획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죽 이어진 실타래처럼 마치 전산 프로그램처럼 보이면서 우울하고 지친 상태로 머물게 한다.

이제껏 살면서 이런 제3지대(?) 정신적 현상은 경험해보지 못했던 것 같다. 내 성격상 늘 중간은 없었는데(어느쪽이건 극단을 좋아한다, 나는)

요즘은 무어라 정의하기 힘든 애매한 정신상태에 위치해 있는 것이다.

오늘부터 2~3일간 마지막 마무리 데크작업을 해야 한다. 식초공장 앞에 보강토 블럭 위 시뻘겋게 맨살을 드러내고 있는 흙을 덮는 작업이다.

이제 이것만 마치만 그동안 한 달 넘게 미뤄두기만 했던 사과술 담는 작업을 며칠 해야 한다. 지난 주에 기다리던 사과술 공정에 쓰일

맞춤 장비가 왔으나 이런저런 일 때문에 미처 시험가동도 못했다.

해썹인증도 받아야 하고, 양조장 허가도 서류 제출했는데 보완해야 하고 자꾸 미뤄지는 나무 전정도 이젠 속성으로 마쳐야 한다.

4월엔 행복중심생협에 초절임식초도 첫 출시를 해야 하고 작년 공장 지으면서 치웠던 양계장 쓰레기들도 올 봄엔 어떻게든 깨끗이

정리해야 한다. 이어서 새로 저온저장고도 지어야 하고, 중국에서 탄산장비도 들여와야 하고 그러다보면 사과나무 적과작업이 닥칠 것이다.

제발 이 모든 일이 톱니바퀴처럼 잘 돌아가주기만을... 나의 정신과 몸은 어찌되도 좋으니 그저 일이 잘 굴러가주기만을...

 

인생은 좋은 것  Life is Fine

 

나는 강으로 내려가

방죽에 앉았다.

무엇 좀 생각하려 했으나 되지 않아

강물로 뛰어들어 잠수했다.

 

나는 한번 물 위로 솟아올라 외쳤다.

나는 두번째 솟아올라 고함을 질렀다.

그놈의 물 너무 차갑지 않았던들

물 속에 가라앉아 죽어버렸을텐데.

 

    하지만 그놈의 물

    차가왔다.

    그놈의 물 차가왔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16층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나는 애인에 대해서 생각했고

그리고 뛰어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거기 서서 외쳤다.

나는 거기 서서 소리 질렀다.

그렇게 높지만 않았던들

뛰어내러 죽어버렸을텐데

 

    하지만 그것은

    너무 높았다.

    그것은 너무 높았다.

 

그 이후 나는 아직 멀쩡히 살아있고

앞으로도 살아내리라고 생각한다.

사랑을 위해 죽을수도 있었겠다마는

내가 태어난 건 살기 위해서이니까.

 

내 외침 소리 듣고

소리 지르는 것 보았다해도 ---

애인이여, 그대가 내 죽는 꼴 보기 원했다면

나는 악착같이 살아볼 터이다.

 

    인생은 좋은 것

    술처럼 좋은 것

    인생은 좋은 것

 

- 랭스턴 휴즈(1902~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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