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갤러리

농사갤러리

이 일을 어쩌나

  • 길벗
  • 2021-11-12 20:13:00
  • 222.113.162.9

20년 전, 직접 지은 저희 집입니다. 당시 서울 변두리 아파트 전세 준 돈으로 내려와 땅 사고 집 지을 돈이 없어 그 당시에는 값도 싸고 유행했던 철도 폐침목으로 제가 직접 집을 지었습니다. 덕분에 아주 저렴하게 지었는데 지붕도 당연히 당시까지는 건재상에서 팔던 슬레이트로 했습니다. 지난 20년간 비와 바람이 새지 않고 겉보기에는 저래도 겨울에도 큰 추위없이 잘 살아왔습니다. 시골에 별장 짓고 한유하게 살려고 온 사람이 아니니 그저 형편에 맞게 농사꾼 집으로 지은 소박하다 못해 이제는 보기 어려운 누옥입니다.

지난 달 집 뒤에 소나무 두 그루가 집쪽으로 기울어 부랴부랴 벌목 작업을 했는데 인부들이 팔뚝만한 소나무 가지를 지붕 뒷편에 실수로 떨어뜨린 모양입니다. 뒷산에 올라가야 지붕 뒤가 보이는데 굳이 작업하는데 산에 올라갈 엄두도 나지 않았고 또 바빠서 작업을 지켜볼 여유도 없고 해서 며칠 작업하는 겉모습만 보다가 마치고 돌아갈 때에는 밥값이라도 하시라고 조장님에게 돈봉투도 드렸는데 지붕 뒤편에 소나무 가지가 떨어진 사실은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모르고 있었는데 그저께 비가 조금 오니 그만 천장에서 물이 뚝뚝뚝... 그제서야 뒷 산에 올라가 지붕을 살펴보니 소나무 등걸이 슬레이트 지붕에 똬악 떨어진 채로 있는 것이... 그래서 오늘 지붕공사하는 업체를 연락해서 견적을 내보니 전체 지붕을 강판으로 덮는데 9백만 원 정도 소요된다고.

아아, 그나마 푼돈이라도 버는 가을 수확철 수입이 있는 줄 어찌 알고 이리 돈 먹는 하마를 내려 보내셨나이까. 일년 내 손가락만 빨다가 올해 농사 망쳐서 배 고픈데 이런 십장생 같은 일이... ㅋㅋㅋ 이웃에 사는 황 목수 형님은 빵꾸난 자리에 그저 땜빵으로 함석이나 깔자고 하시고... ㅎㅎㅎ

 

요즘 날씨가 초겨울답지 않게 매우 온화하다. 다행이다. 오늘(16일) 이웃 황 목수 형님께서 손수 지붕에 올라가 망치와 빠루 두 자루만 가지고 올라가서 소나무 등걸에 구멍난 우리집 슬레이트 지붕을 잘 수리해주셔서 당분간 비 새는 일 없이 지낼 수 있게 되었다. 마침 집 뒤안에 20년 묵혀둔 슬레이트가 온전한 것 한 장이 있어서 그것으로 대치를 한 것이다. 올라간 김에 소나무 낙엽 등 부스러기들도 싹 쓸어내주시고... 들어간 비용은 실리콘 1개 구입한 가격 7천 원(이거 지난 봄보다 딱 두 배 오른 가격이다). 이웃사촌 만세, 황 목수 형님 만세~

 

 

게시글 공유 URL복사
댓글작성

열기 닫기

댓글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