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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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정리

  • 길벗
  • 2021-03-30 06:17:00
  • 222.113.162.61

 

7년을 창고로 이것저것 그저 쌓아만 놓았더니... 안쪽에 있던 박스 등은 먼저 옮겼다. 이제 한나절이면 마저 다 치울 수 있다.

1톤 트럭은 농가의 필수 아이템.

골짜기 윗쪽에 새로 장만한 비닐하우스 창고. 앞으로는 좀 깔끔하게.

뒤지다보니 아랫집 환수 형님이 준 맷돌도 나오네. 한동안 잊고 살았다. 형님이 직접 만들었을 저 어처구니, 이 맷돌을 새로 지은

사과즙 공장 입구 잘 보이는 곳에 전시품처럼 꾸며 진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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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에 직접 지은 우사였다. 그땐 젊어서 힘이 남아도니까 파이프를 직접 저 높은 곳까지 사다리 놓고 어깨에 메고 올라가 일일이

연결하고 나사못을 드릴로 박고 다만 아랫부분 용접만 일당인부를 불러서 했다. 소 밥통은 지금은 고인이 된 아랫집 환수 형님과 함께

직접 블럭을 깔고 그 위에 시멘트 미장을 해서 만들었던 것이다.

딱 10년을 이 허름한 비닐 우사에서 한우를 키웠다. 이 홈페이지를 뒤져보면 한우 키우던 시절 사진이 많이 나온다. 많을 땐 열 두너서마리,

송아지들을 팔고나면 여덞내지 열 마리를 키워 소똥은 중고 포크레인을 사서 치웠다.  그러니까 사과밭에 쓸 거름을 직접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축산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농촌생활 그 어느 것도 쉬운 것은 없었다.

소는 살아있는 생물이라 사람과 마찬가지로 감정이 있고 때로 병에 걸리기도 하고 건강한 놈, 약한 놈 모두 있었다. 몇 마리 되지 않아서

모두 이름을 붙여 불러주었는데 그렇다고 집에 개처럼 자기 이름을 알아듣고 반응을 하지는 않았다. 사료와 건초를 끊임없이 사서 재워두고

먹이고 해야 했는데 특히 볏짚 혹은 수입건초를 1년치를 한번에 받아 이것을 쌓아두고 비 안맞게 덮어주고 다시 풀러서 먹이 때마다

이동해서 주어야 하는 일이 매일 아침 저녁 두번씩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니까 작년에 그만 둔 양계도 그렇지만 가축을 기르면 단 하루도

꼼짝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큰 수익이 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농사도 밭농사이건 가축이건 규모가 크면 그에따라 수입이 커지지만

내가 했던 한우나 닭의 경우 모두 아주 작은 규모라 거기에 들이는 노동에 비해 수입은 보잘 것이 없었다. 

모든 게 그렇다. 투자가 크면 그에 비례해 아웃풋도 커지게 마련. 소농은 작게 투자했으니 수입도 적은 것이 당연.

아무튼 한우가격이 바닥을 칠 때 두 가지 선택이 있었다. 이 참에 우사를 크게 지어(최소한 100평 이상) 송아지 입식을 하여 본격적인

축산농가로 갈 것인지, 아니면 과수원을 하니 적자를 감수하고 계속하면서 그저 거름똥이나 받자고 할 것인지.

과수농가냐 축산농가냐, 아니면 둘 다 크게 키울 것이냐. 결국 모든 것은 돈의 향방이었다. 그리고 대규모 투자는 결국 어느 정도의 모험을

감내해야 한다. 그때 홍천에서 한우 분야에서는 꽤나 인정받고 있는 가까이 알고 지내던 분이 이참에(송아지 값이 쌀 때) 규모를 키워

본격적인 축산농가로 들어올 것을 권유했다. 축협에서 크게 융자를 얻어 집 앞에 과수원을 밀고 그 자리에 축사를 짓고 송아지 입식자금도

소개를 해줄테니 그리 하라고 일렀다. 며칠 고민을 좀 했다. 아마 그때 그 분 충고를 따라 그렇게 했다면 지금은 아마 한우 농가로

변신해 있었을 것이다. 요 몇 년 한우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 있으니 그랬다면 어쩌면 소위 성공한 농사꾼 대열에 끼이게 되었을까.

그때 내가 결국 대규모 축산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몇 가지가 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다 관념적인 어떤 고집 때문이었다.

우선 우리나라에서 축산(규모가 있는)은 결국 환경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과연 이 분뇨를 어찌할 것인가. 내가 2001년에 들어와 사는

이 골짜기는 3천평 작은 터인데 여기에서 소 100마리 남짓 키운다면(이 정도는 되어야 적어도 투자를 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하루 아침에

그렇게 될 수는 없고 3년 정도 기간을 잡고 서서히 해나간다면 가능한 일이었다) 과연 그 결과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남들처럼 그렇게? 그것은 내가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고(내가 20년간 와야리 사과밭 옆 젖소 목장하던 이의 행태를 봐왔기에. 그이는

정부에서 퇴비사(분뇨 임시 저장고)를 지으라고 지원해준 돈으로 퇴비사 짓고는 거기에는 볏짚이나 농기계 넣어놓고 소똥은 맨날

우사 밖으로 그냥 밀어내 쌓아놓았다가 봄이 되면 동네 사람들 거름으로 팔았다. 그러니 일년내 산처럼 쌓인 똥이 겨울이면 꽝꽝 얼었다가

봄이면 쓰나미처럼 흘러내려와 우사 주변 밭을 온통 진흙뻘로 만들었다. 그이네 땅은 사천평이었는데 젖소는 50마리 남짓. 그 광경을

20년을 보아왔는데 촌이라 이웃들이 고발을 하지 못했다. 물론 나도 혀만 차고 차마 고발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러니 열 마리 남짓 기르던

한우 규모를 키운다면 3년 내 100마리 정도는 되어야 하는데 일단 투자 규모가 우사며 퇴비사며 소 입식 자금이며 나의 간뎅이를 너무

오버했기에 시도를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정도 투자를 하면 오직 소에만 매달려야 하기 때문에 이제껏 하던 사과농사를 접어야 하고

그것은 뭔가 나의 귀농에 대한 배신같기도 하고 처음 시도한 홍천에서의 사과농사, 그리고 그 부흥을 위해 뛰어오던 사람의 배반 같기도 한 그런 생각.

아무튼 그래서 하던 사과농사나 계속 하자며 우사는 창고로 쓰게 되었다. 사과농사 초창기에 한동안 친환경 농사를 해야 한다고 설치며

이런저런 농기구와 자재를 사놓고 한두번 쓰고 방치하게 된 것들이 참 많았다. 결국 우사는 반 쓰레기 창고 비슷하게 되어 갔고 한번 쌓이기

시작하면 나중에 치울 때까지 계속 쌓이는게 쓰레기의 속성.

작년과 올 봄, 집 앞에 사과즙과 애플사이더 양조장을 짓게 되면서 이제는 이 우사(보기엔 이래도 정식으로 축사 건축물로 등록을 해서 건축물 대장이 있는

건물이다)를 치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이전과 다르게 사람들이 이 골짜기에 많이 오게 될 것이고 그러면 보기에 어울리지 않는 이 우사가

거슬릴 것이기 때문이었다. 소 키우는 동안 지붕에 비닐을 씌우다가 재재작년에는 천막을 씌웠는데 7년은 간다던 천막쟁이의 말과는 달리 벌써 천정에

구멍이 뚫리고 비만 오면 조금씩 새고 있기도 하다.

내촌고물상 하던 박남재 씨 소개로 지난 주에 홍천에서 철거 전문을 하는 이를 불러서 철거를 요청했다. 다행히 그냥 뜯어가겠다고 해서

이번 주에 가져가기로 하고 혹 쓰레기 나오는 것은 1톤 트럭에 40만원 받고 처리해주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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