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당길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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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넋두리

  • 길벗
  • 2008-03-27 16:4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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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트랙터가 없으니 거름 펴는 것도 다 장비를 이용해야만 한다


배수를 위해 유공관을 묻었다. 과연 4년 뒤에 멋진 사과가 달릴 것인지...

또 게으름 병이 도졌다. 귀차니즘의 귀환이다. 날씨는 변덕이 심하고 내 글 정성은
아직 한겨울이다. 봄이 왔으나 아직은 바람이 차고, 저녁엔 쌀쌀하기 이를데 없다.
어느새 3월이 다가고 꽃 피는 4월이 목전이다. 이웃 횡성에는 벌써 산수유 꽃이 노랗게
물들었고 산에 생강나무도 함께 따라 움을 내밀었다.

우리 서석의 기온은 대개 횡성보다 일주일이 늦다. 그러니 우리집 앞마당의 여러 꽃나무
들은 아직 겨울인데 다만 오늘 보니 조팝나무가 초록색 눈을 틔우고 있었다.
하는 일 없이 바쁘다는 말은 요즘의 내게 딱 맞는 말이다.

일주일에 이틀은 서울에 다녀와야 한다. 나머지 5일 중 하루는 쉬어야 하고, 그러니
4일 동안 죽어라 일을 해야 하는데 이마져도 손님이 오거나 모임이 있거나 혹 내 볼 일이
생기면 하루가 그냥 넘어간다. 그러니 밭일에 쓸 수 있는 시간은 평균 잡아 3일인데
내 몸이 아직도 농사꾼으로 화학적 변이를 하지 못한 고로 하루 되게 일하면 그 다음 날은
여지없이 푹 퍼진다.

흔한 말로 \'작년같지 않다\'더니 이번 봄 내 꼴이 꼭 그짝이다. 겨우내 운동을 하지 않은
고로 더 심한 듯 하다. 지난 주는 꼬박 와야리 사과밭 유공관 작업에 매달렸다.
논을 밭으로 전환한 곳이라 절반은 물이 나는 곳이다. 작년에 묘목 심을 때 했으면
좋았을텐데, 다 돈이 웬수다.

일년을 두고 보니 보통 물이 나는 게 아니었다. 지난 2월 말에 멀리 의성에서 온
김재욱 형이 사과 농사를 제대로 하려면 결국 배수 시설을 해야겠다고 강력하게
권고하는 바람에 어쩌는 수 없이 이번에 포크레인을 불러 작업을 했다.
앞으로 객토도 조금은 해야 제대로 된 밭이 될 것이라 한다. 이 모든 것을 다 장비를
불러 해야 하니 또 투자가 만만치 않다.

브로콜리 밭에는 현재 거름을 펴놓고 있다. 어제는 안사람과 함께 가서 유박 비료를
100포 뿌리고 왔다. 거름이 부족해 밭의 반만 채워넣은 까닭이다. 내일은 가서 트랙터로
로터리(기계를 이용하여 흙을 뒤섞는 작업을 이렇게 말한다)를 쳐야 한다.

트랙터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남의 트랙터를 빌려 로터리를 치면 평당 100원의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 2천 평이면 이것두 20만 원이다. 한번 쳐서 될 수도 있고 두세번 쳐야 할
때도 있다. 게다가 내가 꼭 필요한 시기에 일을 할수도 없다. 트랙터 주인들도 자기 농사
를 다 짓기 때문이다.

결국 오늘 횡성에 가서 중고 트랙터를 계약하고 왔다. 지난 한 달 동안 이곳저곳 뒤지고
다녀도 마땅한 게 없었는데 적당한 게 하나 나와서 이참에 결정을 해버렸다. 결국은 또
빚을 진 것이다. 기계가 없으니 농사를 마음대로 지을 수가 없고, 장만하자니 기계값이
보통이 아니고.....

귀농 8년차에 결국은 트랙터를 장만한 것이다. 요즘은 아버지로부터 농사를 물려받은
농사꾼이 제일 부럽다. 땅도 거져, 창고도 이미 있고, 그 사람들은 기계도 종류별로
이미 다 갖고 있다. 그러니 나 같이 나사못 하나도 다 돈주고 장만해야 하는 귀농인은
정말 돈 생각이 절로 난다.

이렇게 투자에 투자를 해놓았는데 과연 그에 상응하는 결과로 돌아와 줄 것인지, 마음은
여간 무거운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농사짓는 주제에 무슨 큰 수입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그저 빚 이자나 갚고, 애들 학교나 보냈으면 하는 것인데, 와서 살아보니 농사 지은
수입으로 제대로 된 생활을 하는 것이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님을 절감하고 있는 중이다.

올해 계획은 2천 평 빌린 밭에 브로콜리를 우선 심고, 후작으로 배추나 단호박을 심어
그 밭에서 소득을 좀 올리는 것이다. 물론 사과는 올해는 잘 열린다고 보고.....

내가 이곳에 와서 농사를 지으면서 마음 속에 나의 농사 스승으로 세 분을 꼽게 되었다.
제주도에 계시는 오재길 선생님은 정신적 농사 스승으로 여기고 있고, 경상도 상주에
사시는 김칠성 선생님은 친환경 농업에 대한 실제적 자문을 해주시고 아울러 농사짓는
삶에 대한 길잡이 역할도 해주시는 스승이며, 의성에 있는 김재욱 형은 나이를 떠나  
항상 솔선수범하는 농사꾼으로서 말없이 앞장서서 가시는 모습이 또한 나의 스승으로 모실만한 분이다.

그밖에 강원도 이 오지에 와서 이만큼 버티는 것은 또한 신 원장님과 김 원장님 두 분의
은혜가 실로 크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능력으로나 인간적으로나 부족함이 너무 많은
이 사람이 주위 여러 분들의 배려와 도움으로 또 올 봄을 넘기고 있다고 생각하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농사일에 힘이 딸리고 또 지쳐도 이러저러한 사정을 생각해보면 하늘 아래 사람 사는 것이 다 매일반이고 또 그저 감사할 일 뿐이니 밥 심도 심(힘)이려니와 이런 마음 심으로
오늘도 하루를 넘기고 있다.

내일 트랙터가 도착하면 바로 밭에 로터리를 치고, 며칠 있다가 다시한번 치려고 한다.
모레 토요일에는 멀리 김천까지 묘목을 가지러 다녀와야 하는데 몇번 다녀보니 만만치
않은 거리다. 일요일엔 묘목을 가식해야 하고, 다시 다음 주 월,화는 서울에 그리고
4월 3일 목요일에는 대구 사과시험장으로 하루짜리 교육을 받으러 다녀와야 한다.

브로콜리는 4월 둘째 주 중에 하루 날 잡아 밭에 정식해야 할 것 같다. 브로콜리는
모두 15,000주인데 심는 날 인부(주로 아주머니들)를 모두 10명 정도 맞추어 놓았다.
정식하기 전에 밭에 두둑을 켜고, 그 위에 비닐을 씌워야 하는데 이 일은 내 혼자서
다 마무리 해야 한다. 처음 짓는 브로콜리 농사가 잘 되기만을 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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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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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산지기 2008-03-27
    길벗님의 마음 심이 능히 다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커 보이는군요. 마치 궁핍에도 비천에도 풍부에도 자족할 줄 알았던 바울의 마음 처럼요!
  • 백인선 2008-03-27
    우리 친정엄마가 길벗 사과 나올 때만 기다리시는데, 게다가 브로콜리까지 나오면 당뇨 때문에 식이요법 하시는 엄마한테는 기다릴 게 또 하나 늘었네. 무엇보다 건강 조심하고 댁내 가족들 다 평안하시길! 얼마 전 중국에서 이정이가 왔다 가서 잠깐 얼굴 보았어.
  • 길벗 2008-03-28
    동산지기 님, 어리숙한 농꾼에게 과분한 말씀입니다.
    인선아, 오랫만이구나. 무농약 인증을 받아 키우는 브로콜리니까 어머님께, 또 아이들에게도 좋으리라 여겨진다. 6월에 수확하면 1착으로 보내마. 안부 전해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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