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당길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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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道 - 새해 새로운 마음으로

  • 길벗
  • 2008-01-06 23: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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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밝았습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이곳에 온 이래로 매해 나름대로 한 해의 계획을 세워보고 또 다짐을 하기도 하였습니다만
올해는 그저 \'농사 자립의 해\'로 정했습니다.
그러고보면 나이가 마흔 중반이 넘어가고 있는 이때, 몇년 전과는 달리 구호성, 거창한
계획은 이제 사양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약간 움츠린 모습일수도 있고 어쩌면 이젠 건방을 떨 나이는 지난 것
같기도 한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용기마저 수그러든 것은 아닙니다만, 어쨌든 지난 해
실농의 여파가 조금은 마음에 남아서 이제는 뭔가 \'내실\'있는 삶이 되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조바심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겠습니다.

사실 올해 농사도 실패하면 저도 남들처럼 이곳을 떠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생각만해도 두려운 것이지만 그것이 현실이기도 합니다.
귀농 8년차, 남들은 이제 자리를 잡았다고들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저의 무능과 운 없음과 실수까지 겹쳐 아직도 \'자립\'을 못하고 있습니다.

사실 농사는 그 어떤 사업보다도 투자가 많이 되는 사업 같습니다.
그걸 모른 채(알 수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온 많은 귀농인들은 설마 도시 생활보다야
힘들겠냐 하는 마지막 보루로써 택한 결심인지는 모르겠으나
농사로 생계를 이어간다는 것이 참으로 쉽지 않으며 또 투자를 굉장히 많이
요하는 사업이라는 것을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됩니다.

저도 그간 빚이 많이 늘었습니다. 반은 생계를 이어가느라, 나머지 반은 계속적인
투자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올해는 어떤 일이 있어도 어느 정도 농사에서
결실이 나와야 겨우 한 해를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새해 벽두부터 좀 어려운 얘기를 했지요?

오늘 저녁은 같은 동네 \'눌언동\'에 사시는 전직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셨던 윤 선생님이
새해라고 저녁을 사주셨습니다. 윤 선생님은 원래 김포에 사셨는데 명퇴를 하시고는
이 시골에 조그만 집을 지으셔서 노후를 이 동네 노인분들과 아주 즐겁게 보내시고 계시는
분입니다. 물론 일주일에 한번은 김포에 있는 가족들에게 다녀오시고 또 이곳에서
멀리 여행도 다니시고 하면서 멋진 은퇴 생활을 하시는 분입니다.

그 윤 선생님이 오늘 식사 중에 여러 말씀을 해주셨는데 그 가운데 한 말씀이 제 가슴에
새겨둘 말씀이라 여겨져 오늘 새해 인사를 드리는 이곳에 기록을 해두고자 합니다.

\'어떤 일을 하든지 正道를 걸어라. 그러면 끝내 이길 수 있다\'

제가 지난 해 실농을 해서 어려운 제 형편을 살피시고는 여러 위로의 말씀과
걱정을 해주시는 가운데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고보면 이십 몇 년 전 제가 나온 춘천고등학교의 교훈이 바로 \'正道\'였습니다.
그런데 몇 십 년 잊고 살았던 그 말씀이 오늘은 왜 그리 가슴에 와 닿는지요.

요즘 세상이 어지러워 술수 부리는 자들로 가득하고, 또 그런 이들이 득세하는 가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른 길(正道)로 가자고 하는 이 말씀을 이 새해 벽두에
제 가슴에 꼭 새겨 두려고 합니다.

어려움이 닥치면 누구나 좀 쉬운 방법을 택하게 마련입니다. 또 소위 머리를 굴려
얄팍한 방법으로 헤쳐나가려고 하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방법이 용인되고 또 있을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가는 길을
올바로 가는 삶이야말로 우리가 사는 이유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요즘 제가 다니고 있는 교회에 좀 분란이 있습니다.
목사가 전횡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 교회에서 지난 해 회계를 맡았고, 올해도
계속 회계를 맡기로 한 저에게는 소위 종교적 \'시험\'이 될수도 있는 일입니다.
조그만 시골 교회(세례 교인이 서른 명도 채 안되는)에서 민주적이고 헌신적인
교회 운영을 하기는 커녕 모든 것을 제 마음대로 하려는 목사 한 사람으로 인해
교인들이 지금 다 뿔뿔히 흩어지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1-32)는 말씀은 제 나온 대학교의 표어이기도
한데 오늘 저녁 곰곰 생각해보니 \'正道\'와 같은 뜻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세상적 가치와 기준을 이미 버린 사람들일진대 그래서 교회는
세상과 구분된 코이노니아를 실천하는 곳이어야 할텐데 오히려 목회자라는 사람이
이렇게 세속적일수가 있을까 하는 실망감에 교회에서 깊은 좌절을 맛봅니다.

어제 토요일 오전에는 서울 명동 전진상 기념관에서 큰아들 현이와 씨알재단에서 여는
강연을 들었습니다. 아들을 키워 함께 강연을 들으러 다니니, 또 그 아들과 서로 대화가
되니 얼마나 좋은지요. 어제 강연은 유영모 선생의 사상과 일생에 대한 것이었는데
평생 유 선생님을 모신 박영호 선생님이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물론 유영모 선생님과 함석헌 선생님의 신앙관은 한국 보수 기독교계의 교리와는
너무나 먼 거리를 갖고 있음을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저의 신앙의 뿌리는 김교신 선생을
통해 알게 된 \'우찌무라 간조\' 선생의 무교회주의 운동이 시작이었고, 그러다 나아가
다석과 함석헌 선생을 비록 책으로나마 접하면서 자랐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후 저는 두레교회 김진홍 목사를 만나면서부터 서울 동부 이촌동의 온누리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고, 그 교회 하용조 목사님의 설교에서 많은 감화와 감동을  받았던 것을
지금도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교회가 전부인 것으로 알았던 제가 세상에 교회의 필요와 사명도 깨닫도록 해준 것이 바로 온누리 교회였음을
인정합니다. 제 나이 스물 아홉 살 때의 일들이었습니다.

다석 선생과 함 선생님은 지금도 흠모하는 저의 사상가요, 신앙인이요, 인생의 위인입니다.
어찌보면 기성 교회에 나가면서 두 분의 강좌와 사상을 여전히 따르고 또 읽는다는 것이
이율배반이라 여기는 분도 계실지 모르지만 저는 너무나 다른 그 두 세계를 제 속에 함께
가져 가려는 노력을 계속 해나갈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기독교인이라고 스스로를 여기는 한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그만둘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늘 패배할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상처 투성이 인생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정신은 온통 구정물이요, 우리의 육체는 나약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승리자요, 완전자입니다. 다석의 말씀에 따르면
씨알이 우리에게 들어오면 우리는 짐승 같은 탐.진.치에 속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 로마서 8장에는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 새해 벽두에 저는 새로운 마음으로 또다시 오는 한 해를 시작한다고 위에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새롭다고 하는 것은 다 부족한 인간인 저의 착오에서
비롯된 것이고 기실은 이 모든 것이 이미 이 세상에 다 있었던 것인데 다만 제가
그것을 이번에 다시 보게된 것일 뿐입니다.
그래도 다시 보게 해주시고 또 생각케 해주시는 그 분께 감사드리면서
또 한 해를 시작하고 싶습니다.

모든 길벗님들에게도 새해 큰 소망과 복이 가득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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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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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갈비뼈 2008-01-07
    우리가 새로워 질 수 있음은 새이신 하나님,곧 지금은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우리안에 내주 하실 수 있게 과정을 거쳐 완결되신 그 영을 받아 들일 때 곧 생명의 씨로 우리 안에 영접해 들여 우리의 영안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의 혼 즉 생각 감정 의지안으로 확산될때우린 비로소 새롭게 될 수 있습니다.그래서 우리가 알고 우리와 많이 닮은 베드로의 서신을 보면 길을 잃은 양처럼 방랑하던 그의 혼이 혼의 목자이신 주께로 돌아 갔을 때 안식이며 평강 가운데 있음을 봅니다.우린 모두 베드로 보다 더 육적이며 천박한 사람일지도 모릅니다.그래도 소망이 있음은 우리가 신의 성품에 참여함으로 점점 더 그 아들의 형상에 이르도록 변화 가운데 있음입니다.이런 산 소망을 가지고 한 해를 기쁨으로 출발합시다.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
  • 동산지기 2008-01-09
    요즈음 \'개독교\'라든가 \'안티 기독교\'라는 표현을 하는 세상의 이야기들을 교회가 되새겨 봐야 하지 않을까요. 길벗님이 거론하신 김진홍목사님이나 온누리교회도 세상의 도마에 올라 있고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우리들도 다 해당이 된다고 여겨 집니다. 바울의 말씀이나 틸리히의 주장처럼 \'New Being\'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돌아보고 반성하며 기도해야 하겠지요. \'좁은문과 좁은길\'이 \'정도\'이기에 쉽지는 않겠지만, 신앙의 정도와 삶의 정도를 가기 위해 애쓰는 님의 한 해에 주님의 동행하심을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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