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당길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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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 \'길벗농원\'에서 보내온 서신

  • 길벗
  • 2007-12-27 23: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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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감과 밤 농사를 짓고 있는 함안 김진웅 형. 서울서 직장 생활 할 때 모임에서 만났고 이후 비슷한 시기에 각자 귀농을 했는데, 우연히도 삶터 이름도 똑같이 \'길벗농원\'이라고 지었습니다

2007년을 보내며

올 한 해는 시골생활 6년 동안 가장 심(心)들었던 한 해였다.
시골생활을 포기할 생각까지 하였으니까 말이다. 서 있기조차 힘들 정도로 몸이 아무리 피곤하고 만 가지 생활이 불편하더라도 시골생활을 포기할 그런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다. 올 과수농사가 엉망이 되어서 그랬던 것은 더 더욱 아니다. 이미 처절한 과수농사 실패는 2년 전에도 맛을 보았기에, 올 해도 나와 형님의 그 고됐던 노력에 대한 대가가 허무하게 무너지는 걸 보면서도 그저 담담할 수 있었다. 물론 속이 상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一日一生의 삶인 오늘을 행복하게 살자는 생각이 절망하지 않고 견딜 수 있게 하였다는 말이다. 우리 삶에 무슨 목표가 있는 게 아니라 살아가는 과정이 쌓여 인생이라는 탑이 완성되는 것처럼, 농사도 꼭 무슨 결과가 있어야 된다는 생각으로 짓지 않는다. 그러니까 보통 농사꾼들이 농사를 지을 때 100이 나오는데 내가 지은 농사가 겨우 20만 나왔다고 해서 그렇게 낙담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왜냐면 농사를 짓는 과정에 겪어야 했던 그 고통들이 있었기에 나와 아내와 형님, 세 식구는 서로가 서로를 아껴주고 위해주는 마음을 나눌 수 있었고, 노동 후 배고픈 식사는 또 그 무엇으로 바꿀 수 없는 즐거움을 주었고, 그리고 땀으로 범벅된 몸을 시원하게 씻을 수 있는 샘물은 내게 더 할 수 없는 행복을 주었는데 이 모두가 내 삶 속에 고스란히 쌓여 내 인생을 장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전혀 돈 없이 살아갈 수는 없겠지만 돈은 조금 벌더라도 그저 끼니를 이어갈 수만 있다면 너무 큰 결실에 연연하지 말자는 것이다.

올 한 해를 돌이켜 볼 때 기억에 남는 마음에 상처를 주고받은 일이 세 번 있었다. 연초, 나는 어떤 한 친구에게는 인터넷 상에서 글로 마음에 상처를 주었고-물론 전혀 의도는 없었지만, 또 다른 친구한테는 말로서 상처를 받았다. 그리고 또 다른 어떤 이한테는 서로 말로써 상처를 주고받았는데 이 부분이 제일 심(心)들었다. 내가 상처를 준 친구는 다행히 우여곡절 끝에 진즉에 우정을 되살렸지만, 내게 상처 준 친구와는 오랜 동안 화해를 하지 못했다. 이미 내 마음은 용서를 하였지만 그 친구를 해방시켜 주지는 못하여서 지난 12월 초 안양에 갔을 때 만나서 그 매듭을 풀려 했지만 그 친구 사정이 허락지 않아 매듭을 풀지 못했다. 다행히 며칠 전 그 친구가 술기운을 빌어 전화를 해 왔다. 그는 내게 상처 준 날짜가 2월 14일이라고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얼마나 심(心)들었으면 난 잊어버린, 생각지도 않고 있는 그 날짜까지 기억하고 있었을까 싶다. 그는 그날 내게 상처 준 그 말을 한 것이 부끄럽고 미안하다 했다. 나는 나로 인해 더 괴로워했을 그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고 끝냈다.

세 경우 중 나머지 하나, 서로 상처주고 받은 이 경우가 나를 참 심(心)들게 하고 많이 반성하게 하였다.  사람은 나이 들어가며 생각도 행동도 많이 변한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내 스스로는 어떤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내 기준으로 판단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소중하게 받아들이자고 하면서도 그렇지 못했던 나를 종종 발견하곤 했는데 올 7월 더욱 절실하게 느낀 것이다.  말을 잃고, 생각도 잃고 살아갈 꿈마저 잃어버렸던 일주일이 지난 7월 달에 있었다. 살 곳 찾아온 시골에서 죽음 맛을 톡톡히 보았던 것이다. 2005년 겨울에는 3개월 동안 몸이 죽어가는 맛을 보았는데 올 여름엔 맘이 죽어가는 맛을 본 것이다.

예전에 나는 이런 노래를 읊은 적이 있었다.

여기 오래되고 녹슨 수레 있어
삐걱거리며 겨우 겨우 굴러감.
제 구실 하게 새로 고쳐야.

허나 섣불리 손 댈 수 없음은
수레를 영 망가뜨릴 까봐
솟난 기술 가진 장색(匠色)을 그림.

그런데 맘이 죽어가며 이 생각도 시시해져버렸다. 누가 누구를 고친단 말인가!

다행이 기약 없을 것 같았던 마음의 고통은 일주 일만에 한 여름 밤의 악몽처럼 싹 지나갔다. 어떤 과정으로 싹 사라졌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자세하게 얘기하지 않겠다. 부러진 뼈가 붙으면 더 굳세어지듯 주고받은 마음의 상처가 외려 약이 되어 서로를 더욱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음은 지금도 감사할 일이다.

그리고 그 후 류시화가 번역한 시 ‘75세 노인이 쓴 산상수훈’ 과 ‘어느 17세기 수녀의 기도’를 보며 다시 한 번 많은 걸 생각했다. ‘75세 노인이 쓴 산상수훈’에서는 우린 누구나 늙지만 그렇다고 늙은이를 모두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는 걸 일깨워주었고, 그리고 ‘어느 17세기 수녀의 기도’에서는 원융무애(圓融無碍 : 한데 통하여 어느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무엇에나 거리낌이 없음)의 삶을 살아라는 가르침을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기게 하였다.

<75세 노인이 쓴 산상수훈>에서,
내 굼뜬 발걸음과 떨리는 손을 이해해 달라는 것,

다른 사람이 말하는 걸 알아듣기 위해  
오늘 내 귀가 얼마나 긴장해야 하는가를 이해해 달라는 것,

같은 말을 하였을 때
나더러 그 얘긴 오늘만도 두 번이나 하는 것이라고 핀잔주지 말아달라는 것.

그리고 <어느 17세기 수녀의 기도>에서,
늙어가며 아무 때나 무엇에나
한 마디 해야 한다고 나서는 치명적인 버릇에 걸리지 않게 해 달라는 것,

그리고 모든 사람의 삶을 바로잡고자 하는 열망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달라는 것,

내 기억이 다른 사람 기억과 부딪칠 때
혹시나 하는 마음이 조금이나마 들게 해 달라는 것,

더불어 살기 어려운 성인보다는 적당히 착하게 살게 해달라는 것.

송봉모 신부는 ‘상처와 용서’<길벗농원 카페 : ‘공감가는 글’에서 요약해 놓았음>라는 책에서 우리가 살아가며 실천하기 힘든 두 가지 일이 죄 짓지 않고 사는 것, 그리고 남에게 받은 상처를 용서하는 일이라고 했다.
어느 길벗 얘기처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삶이란 결국은 지지고 볶고 사는 것일 터이다. 나의 이 긴 푸념이 길벗들 삶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한 해를 마무리 짓는 이즈음 내게 상처 준 모든 이들 씻은 마음으로 용서하여 새해엔 흘러간 물이었던 양 그저 담담히 서로 아름다운 얼굴로 대할 수 있었으면 한다.

무자년(戊子年) 새해에도
여러 길벗들 가정에 행복 반, 즐거움 반이 함께하길 진심으로 기도한다.  

2007년 12월 27일
경남 함안 길벗농원 김진웅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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