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당길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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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그리고 김장

  • 길벗
  • 2007-10-29 18:3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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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 펼쳐놓고는 온식구가 120포기 김장을 합니다


민이는 풀무제에 도자기를 몇 점 출품했다

올해는 작년보다 보름이나 빨리 김장을 합니다.
무슨 뜻이 있는 것은 아니고 그저 우리 편하려고 날이 좀 좋을 때
하는 겁니다.

올해는 배추를 일찍 심었고 또 작년보다는 잘 되어서
그런 것이기도 한데 요즘 배추, 무 값이 부쩍 뛰어서 소비자들은
김장에 돈이 좀 들어갈 것이라고 하는군요.

저희도 배추와 무와 갓만 심었지, 나머지 생새우며 젓갈류는
시장에서 사올 수 밖에 없습니다.
안사람이 올해로 이제 세번째 김장을 담그는데 자신감이 많이
든 것 같습니다.

하긴 삼세번이라고, 뭐든지 세번 정도 하면 조금은 이치 터득이
되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맛을 내야 하는 음식 장만은 꼭 경험만으로는
안되는 것 같고 어쩌면 타고난 천성조차도 맞아 들어가야
모두가 감탄하는 맛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제 신혼 초에 김영사라는 출판사 당시 영업부장이던 김영범 씨가 우리 집에 와서
점심을 먹게 되었는데 우리 장모님이 담아준 김치 맛에 그만
감동을 해서 연신 감탄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로부터 한 8년 지나 제가 무슨 일로 김영사 사무실에 갈 일이 있었는데
그때는 김영범 씨가 김영사 사장으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이가 오랫만에 절 보고 반가워하면서 하는 첫마디가 그 김치 아직도
맛볼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뜻하지 않게 우리 장모님 솜씨 자랑을 좀 하게 되었는데, 그런데 제가 그간
살면서 이런저런 음식점에도 참 많이 가보고 음식에 관련된 책도 일반인치곤
좀 많이 본 편인데 대개 여인들 손맛과 솜씨는 제 엄마를 닮아 가는 것이
보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름난 음식점이나, 또는 가정주부로서 주변에 음식으로
알려진 이들은 거개가 다 그 어머니의 솜씨가 뛰어난 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뿔사, 제 안사람만은 그렇질 못해서 장모님 음식 솜씨며, 화초 가꾸는
취미며, 손으로 만드는 이런저런 기술조차 그 모두가 처제에게로 대물림이
되고 그저 제 안사람은 무덤덤, 무미건조한 장인의 성격을 그대로 빼다
박았습니다.

시골로 오고 7년, 아직도 장모님은 우리의 삶의 방식을, 또 현재 저희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외면합니다. 당신의 딸이 꿈에도 생각지 못한 농촌에 가서 손에
흙을 묻히고 산다는 게 여전히 용납이 되지 않아서 입니다.

아무튼 얼마 전 저희가 출연한 \'6시 내고향\'에서도 제가 말 했듯이
먹는 생활의 기본적인 장과 김장은 저희가 스스로 다 만들어 먹으니
참 놀랄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요즘은 안사람 솜씨도 많이 좋아져서
제법 맛도 있는 것도 같습니다.

지난 주말은 풀무제가 있어서 둘째 민이가 다니는 충남 홍성의 풀무학교에
들렀습니다. 풀무제에 대해서는 제가 작년 이맘 때 쓴 글에 잘 나와 있는 줄
압니다. 올해도 변함없이 아이들이 솜씨를 뽐내고 또 주제(올해는 \'물\')를 정해
정리를 잘 한 것 같습니다.

이왕 집 떠난 김에 풀무학교에 들러 민이를 보고, 다시 포항으로 가서 첫째 현이도
보고 오고자 한 것이 여행 아닌 여행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봐야 1박 2일 짜리 초특급 미니 여행인데 다시금 확인한 것이지만
우리나라가 정말 작은 나라라는 것을 실감한 이틀이었습니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서 홍성을 들러 저녁에는 포항에 도착했습니다.
포항 북부 해수욕장 근처에서 현이를 만나 저녁을 먹고 (이름만) 호텔에 짐을
풀었습니다.

큰 애 현이와 깊은 얘기는 못나누고 그냥 겉도는 얘기만 몇 마디 했습니다.
제가 보기에 현이는 앞으로 겪고 넘어야 할 산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일일이 제가 뭐라고 하기 보다는 그저 자신감을 넣어 주려고 몇 마디 했습니다.
지난 입학 때부터 이제까지 현이를 쭉 보아 오면서 풀무를 나와 대학 생활을 하는 것이
어쩌면 힘든 일인지도 모른다고 저 혼자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풀무제 마지막 날 낮 행사 잠깐 참관하고(매년 똑같은 형식으로 진행되기에)
저녁에는 큰 애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하면서 풀무학교에 대해서 제가 혼자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많은 하루였습니다.

예전의 우리 선배들이 그랬고, 저도 좀 그랬고 또 우리 아이들도 다 성장통을
겪으며 스스로 성숙해지는 것이겠지요. 다만 저 같이 어리석은 사람처럼 살지 말고
우리 아이들만은 제대로 컸으면 하는 바람인데, 부모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또
시대를 떠나서 다 똑같은 생각이겠지요.

일요일 아침, 현이와 헤어져서 동해안 7번 국도를 타고 영덕, 울진을 거쳐 삼척에
도착했습니다. 이미 떠나기 전부터 그곳에 근무하고 있는 옛날 직장 상사와
약속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곳은 \'파인 밸리\'라는 곳으로 리조트와 골프장을 겸한 곳인데 그곳 총 책임자인
김계환 상무님이 예전에 제가 동양그룹 홍보실에 근무할 때 바로 직속 상사였던
분입니다. 제가 대리일 때 그 분은 과장, 제가 과장일 때 차장 이런 식으로
함께 일했던 분이니 어지간히 가깝게 지냈던 분인데 제가 문화 사업하는
재단으로 팀장을 맡아 떠나고 나서는 만나는 것이 좀 뜸했습니다.

아무튼 이제 임원이 되어서 한 사업장의 총 책임자가 되었는데 같은 강원도에
살면서도 그간 방문할 기회를 잡지 못하다가 이번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들르게 된 것입니다. 안사람과 더불어 점심과 저녁까지 융숭하게 대접 받고,
숙소에서 자고 가라는 것을 억지로 뿌리치고 어둔 밤을 헤쳐 강릉을 지나
대관령을 넘어, 둔내 톨게이트로 해서 서석으로 돌아왔습니다.

참 짧은 시간 속에 강원도에서 충청도, 경상도로 해서 다시 강원도로
돌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서석에만 들어서면 마음이 참 편안해집니다.
멀리 서석읍내 불빛만 보여도 안도감이 들고 왠지 모를 편안함에
몸과 마음의 피곤함이 다 풀어지곤 합니다.

이제 이 낯설던 서석이라는 고장이 저의 새로운 고향이 된 것일까요?
이런 기분은 사실 제가 고등학교 유학 시절, 어딜 갔다가 돌아와 춘천에 들어설 때의
기분과 똑 같습니다. 한때 제가 춘천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나 대학교 때나 이다음에 꼭 춘천에서 살게 해달라고
신께 빌었던 적도 있습니다만, 아마도 그래서 춘천까지는 못갔지만
이렇게 지척의 홍천에서나마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짧고도 긴 여행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아들들의 문제에 대해서도
또다시 생각해야 할 고민들이 생겼고 어쩌면 이런 것이 다 인생의 수레바퀴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무엇인가를 잘 할 능력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잘 할 수
있게 되는 기회를 주신다고 했다.\' 큰 애가 근래에 쓴 글 중에 나오는 말입니다.
대학에 가서 잘 난 아이들을 많이 보면서 스스로의 능력에 대해 요즘 많이
회의하고 자존감을 잃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저 스스로 잘 헤쳐나가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세상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오늘은 너무 사적인 얘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혹 이 글을 읽고 마음이 불편한
분이 계시지는 않을지 걱정 아닌 걱정도 해봅니다.
그러나 제 홈피를 찾는 길벗들에게는 모든 것이 다 이해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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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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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몽화 2007-10-30
    기회를 주신 것에 감사하는 현이는 스스로 잘 헤쳐 나갈 것 입니다.
    만들어진 아이들은 자생력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저희 아이도 일반계 고등학교를 나와 운이 좋아 포항공대에 들어 갔는 데
    잘 견디고 있습니다.
    멋진 두 아드님이 부럽습니다.
    서석이 그립습니다.
  • 길벗 2007-10-30
    유몽화 선생님, 글 올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주문하셨던 배추는 조만간 연락을 드리고 배달(?)을 해드릴까 합니다.
    겨울사과는 조금 더 있다가 주문을 받겠습니다.
    춘천은 가까운 곳이니 한번 나들이 기회를 잡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현숙 2007-10-30
    민이는 한 번 보고 현이는 본적이 없지만 내 아들같이 생각이 드는군요. 김장하시느라 고생하셨겠네요. 담에 꼭 맛보러 가야겠습니다. 된장찌게 끓일 때마다 된장 담가주신 길벗농원의 선생님 댁을 생각합니다. 맛있거든요.
  • 길벗 2007-10-30
    어제 배추 절이고, 오늘 속 버무려 김장을 마쳤습니다.
    120포기 김장을 안사람과 아버님 둘이서 잘도 하더군요 ^^
    저는 조금 도와주다가 사과나무 전정하러 밭으로 나갔습니다.
    올해 김치는 아주 맛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꼭 김치 맛보시러 오시기 바랍니다.
    건강하십시오.
  • 유몽화 2007-10-31
    배추가 금값이라는 데 몸 둘바를 모르겠습니다.
    바쁘시면 제가 가지러 가도 되고 나들이를 오신다면 제가 술 한잔
    올릴까요.
    고맙습니다.
  • 김미영 2007-11-02
    민이 엄마 정말 대단하네요. 120포기나 되는 김장을 너끈히 해내는 걸 보면.. 저는 그런 분들을 볼 때마다 한참 기가 죽곤 한답니다. 풀무 엄마들이 한번 모여서 민이네 놀러가기로 했는데, 그 때 맛있는 김치 맛을 볼 수 있겠네요.
    민이 아버님의 매력은 뭐니뭐니 해도 솔직함이라고 해야 할 것 같아요.
    말씀에도 글에도 듬뿍듬뿍 묻어나는 그 솔직함에는 다른 사람을 무장해제 시키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원래 그런 성품을 가지신 분인지, 아니면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새로이 얻게 된 성품인지 궁금하군요.
    현이가 좀 더 넓은 세상에 나가서 얻게 된 깨달음을 후배들과도 함께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민이 엄마 2007-11-02
    재영이 어머니, 꼭 한번 놀러오셔요. 김치가 맛이 있을런지 모르겠어요. 배추는 달고
    아삭하더군요. 올해는 새우젓 대신 생새우와 멸치액젓을 넣었어요. 현이는 겨울방학 때
    서울에서 영어학원에 다닐 계획이라고 하더군요. 아무래도 영어가 많이 부족하겠지요.
    조만간 뵙게 되기를 기대할께요. 건강하세요.
  • 김미영 2007-11-03
    벌써 입안에 침이 그득 고입니다. 달고 아삭한 배추.. 오늘 아침에 웅이 어머님과 통화를 했어요. 누구나 어느 정도 다 그렇겠지만 웅이도 학교생활에서 어려움이 좀 있는 모양입니다. 진로 문제도 그렇고.. 11월 중순 지나서 어느 정도 한가해 지면 민이네서 모여 찐하게 얘기하자고 했습니다. 이제 또 그 날만 기다리면서 살겠네요^^
  • 민이엄마 2007-11-03
    알았습니다. 저도 그 날만 기다릴께요 ^^ 꼭 오셔요.
  • 유몽화 2007-11-03
    그 귀한 것을 배달(?)까지 해주신 두분께 어떻게 사례를 해야할지...
    두 분 많이 닮으셨습니다. 부럽습니다.
    사과가 기다려집니다.
    길벗 농원이 보고싶어서..
    귀한 선물이라서 맛있게 담가야 할텐데 걱정이 됩니다.
    거듭 고맙습니다.
  • 길벗 2007-11-04
    맛있는 점심을 먹고 잘 귀가하였습니다.
    사과 수확하는 대로 이곳에 공지도 하고 따로 연락도 드리겠습니다.
    오랫만에 서석에 오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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