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당길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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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되돌아보는 이곳에서의 삶

  • 길벗
  • 2007-03-05 14: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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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5일, 꽃샘 추위가 왔습니다


눈도 좀 오고, 바람도 세게 불었습니다. 다시 겨울이 온 듯 합니다

엊그제 날짜로 이곳에 온지 만 6년이 되었습니다. 2001년 2월 말에 이곳으로 주민등록을
이전하고 4월에 온 가족이 이사를 왔으니 햇수로 7년, 만으로 계산해서 6년째 되는 것입니다. 물론 처음엔 내촌면의 남의 땅과 집으로 이사를 왔었고, 그러다가 그 해 8월 현재 이곳의 땅을 계약하고 9월부터 또다시 집을 짓기 시작하여 그해 11월에 이 집으로 입주한 것은 이미 저 앞 글에서 밝혔던 바입니다.

짧다면 아직 짧고, 또 길다면 긴 6년의 세월이었습니다. 그 사이 큰 애 현이는 올해 대학생이 되었고, 초등학교 5학년이던 민이는 이제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컸다면 저희 부부는 조금 더 늙은 것이 되겠지요. 서른 아홉의 나이에 이곳에 왔으니 올해 저는 만으로 마흔 다섯이 됩니다.

여섯번의 겨울과 여름을 이곳에서 맞이했습니다. 누군가의 말대로 한창 일할 나이에
도시를 접고 이곳에 온 사람들은 모두 \'미친 짓\'을 했다고 평가 받아야 할 것인지, 아니면
선구자인지, 이도저도 아니면 잘 못 온 것인지 저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저는 아시다시피 애초부터 오로지 농사 지으러 이곳에 왔고, 또 현재 사과 농사를 3천 평 짓고 있습니다. 소위 귀농은 저에게는 오랜 바램이었으며 조직 속에서 직장 생활로 생계를 이어나가는 것보다 자유로운 농사를 업으로 하는 것을 정말로 좋아했더랬습니다. 비록 그것이 관념 속에 파묻힌 것이 많았던 것은 사실입니다만, 어쨌든 농사 짓고 사는 것이 부럽고 또 좋아보였기 때문에 기회가 생겼을 때 과감히 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과수 농사의 변방이랄 수 있는 이곳 홍천에서 나홀로 사과 농사를 시작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그 많은 어려움을 지금 이곳에 쓸 형편이 아직은 못됩니다. 왜냐하면 지금도 많은 애로사항 속에서 헤매고 있으니까요. 그래도 그간 전국을 누비며(?) 다닌 결과로, 또 인터넷이라는 매체가 있음으로 해서,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농사짓는 분들의 그 순수하고 도와주려는 마음으로 해서 그나마 이만큼 유지하고 또 앞날을 기약할 수 있게끔 되었습니다.

농사 지으러 들어왔으니 일을 하는 것은 생계와도 연결되어 있으니 당연한 것이라 하겠지만 시골 생활이 단순히 농사일만 하고 사는 것이 아님을 아직 도시를 떠나지 못한 귀농 예비인들은 알지 못할 것입니다. 도시에서는 사실 바로 앞 집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 사는지 알 수도, 알 필요도 없는 것이지만 그러나 시골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서로 구속을 하고 또 구속을 주는 삶을 좋아하는 이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인간 냄새 물씬 풍기고, 사람 사는 정을 느낄 수 있어서 좋습니다. 도시야 어디 그렇습니까?
그래서 시골 생활이 훨씬 정서적으로 안정될 수 있습니다. 우리라는 의식 속에서 함께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고향이 강원도 평창이고 이곳에서 자랐지만, 대학 이후 서울에서 살다보니 많이 개인적인 의식을 가진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또 제 자란 시대가 그렇기도 한 것 같습니다. 물론 저 역시 강원도 촌놈이고 아직도 그런 의식이 제 한구석에 남아 있는 것을 간혹 발견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긴해도 도시에서 20대와 30대를 온전히 보내고 오니 시골 정서가 낯설 때도 또한 있습니다. 다 마음으로는 이해를 합니다. 그래서 심하게 갈등하지는 않지만 조금 불편할 때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간 이곳에서의 제 경제 생활은 여러 사람에게 빚진 것 덕분입니다. 제 농장에 후원을 해주신 대학 은사님과 선배는 말할 것도 없고 특히 그간 이곳에 사과 나무 묘목 심어 놓고 아무런 생계 대책이 없을 때 저를 서울에서 강의할 수 있도록 불러주신 신 원장님과 김 원장님 두 분께는 아무리 감사를 드려도 부족할 것 같습니다. 그간 매주 2-3일 씩 서울로 아르바이트를 다닌 덕분에 그나마 아이들 학비며 저희 생활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물론 일년내 하는 것은 아니고 8개월간 학기 중에만 하는 것이어서 나머지 4개월은 때때로 개인적인 빚을 진 것이 사실입니다.

만약 모든 삶이 경제적인 것으로 환원되어서 가치를 평가받는다면 아마 저는 최하위 등급에 속할 것입니다. 안그래도 줄세우고 경쟁심을 유발하는 사회로 자꾸 몰리는 대한민국 사회이긴 해도 이 시골에서도 갈수록 자본주의의 그물망이 촘촘해져 옴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에 따라 사람들의 의식도 갈수록 물신화 되는 것을 느낍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 자칫 그릇된 생각을 먹게 된다면 삶에 위기가 올 수도 있습니다.

가끔 금전적인 부족에 닥치면 저도 농사일이 아득하기만 합니다. 이 시대에 1차 산업에 종사한다는 자체가 이미 스스로 가난의 길로 들어선 것임을 한번더 확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처음부터 돈을 많이 벌자고 귀농을 택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또 제가 만약 여전히 도시에서 살았다고 해도 저는 돈 많이 버는 것 하고는 좀 거리가 있는 사람이었음을 잘 압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 생활은 되어야 하기에(특히 아이들이 있으니까) 돈을 벌려고 노력은 합니다.

저는 돈 많은 부자를 부러워하지도 탓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그들이 함께 사는 삶에 좀더 관심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저는 가난을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농민은 좀 가난하게 사는 것이 좋다고 보는 편입니다. 시골에 사는 이가 도시에 사는 이들이 그랜져 타고 다니는 것을 부러워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차는 이 사회에서 자신의 신분을 나타내주는 주요한 장치이긴 해도 농부가 돈 많이 벌어 외제차라도 타고 다니는 것을 성공으로 보는 것은 농민을 왜곡하는 심사라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농민은 이 세상 사람들의 먹을 거리를 생산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다른 것은 그 무엇과 바꿀 수 있어도 먹거리 만큼은 그렇지 못합니다. 장사는 누구나 할 수 있어도 농사는 누구나 못합니다. 농민이 귀하고 또 뜻이 있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겠습니다.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서 농민이 천대받고 또 어렵게 사는 것이 당연시 되었지만 그래도 우리 농사짓는 사람들은 세상을 용서해야 할 줄로 압니다.

이곳에서 저는 아직도 이방인입니다. 7년째가 되었지만 아직도 동네 깊숙이 침투하여 이곳 토박이 분들과 자연스럽게 교감하고 서로 오가고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반성할 문제이긴 합니다만 그러나 제 성격적인 부분도 있고 해서 무리하게 부자연스럽게 다가서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그저 피해나 주지 않으려는 정도로 제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나서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아마 10년이 지나도 조금은 이방인 같이 살지 않겠나 싶기도 합니다.

제가 이곳에 오기로 작정하고 나서 그러니까 2001년 3월에 지리산 쌍계사 부근에 있는 쇠점터 농장에 급히 온가족을 이끌고 갔었드랬습니다. 그곳에는 1973년에 귀농한 어떤 부부가 계셨는데 바깥분은 당시 서울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곧 교수로 임용될 분이었는데 20대 후반의 나이에 그리로 내려가셨습니다. 장인 되시는 분은 박 정권 때 문교부 장관을 지내셨던 분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그 분께 이제 저도 귀농을 합니다 하고 인사도 드릴 겸 갔는데 마을 어귀에서 장사하는 분들에게 길을 물으니 \'아, 그 서울 양반\'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30년을 한 곳에 정착해 살아도 여전히 \'서울 사람들\'인 것이 현실인 것입니다.  

얘기가 좀 빗나갔습니다. 아무튼 저는 이곳에서 아직까지는 특별히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이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표현하는 것은 저 자신의 삶을 스스로 뭐라고 평가하기가 좀 그래서 그렇습니다. 제가 현재 살고 있는 홍천군 서석면 수하 1리는 풍광이 빼어나고 물이 좋으며 또 주민들 인심도 참 좋은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시골이 모두 그렇다고 여겨지기는 해도 저희 마을도 모두들 웃어른을 공경하는 데 열심이며 이웃의 대소사에 너나없이 자기 일처럼 달려들어 돕는 풍속이 아름다운 마을입니다. 이런 곳에 사는 제가 잘 못 살수가 없겠지요?

오늘은 3월 5일인데 어제 오후부터 여름비 같은 굵은 비가 오더니 오늘 새벽부터는 진눈깨비로 변했습니다. 바람도 세게 불었고 지금은 싸래기 눈이 내립니다. 그간 봄이 일찍 왔다고, 너무 덥다고 난리였는데 갑자기 이렇게 눈이 쌓이고 영하로 떨어지니 그저 자연의 무쌍한 변화에 우리 인간은 한없이 작은 존재로 여겨집니다.

날이 좀체로 갤 줄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어느새 눈이 쌓여서 사과밭이 허옇습니다. 이렇게 날이 궂은 날은 어쨌든 하루 공치는(쉬는) 날입니다. 휴식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또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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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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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진웅 2007-03-10
    가므님이 휴식을 주시니 농당 선생 글도 보게 되네.
    난 시골 생활이 무지 좋은디...물론 고통이 없는 건 아니고.
    또 고통없이 행복은 없다라는 것도 알았고. 행복하다는 마음을 시골에 와서야 가져보았으니.
  • 길벗 2007-03-11
    어둠이 없는 빛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이겠지요. 고통도 행복을 위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살전 5:16~18 절 말씀이 절로 가슴에 새겨지겠습니다그려...
    가끔 형의 농원 까페에 들어가서 참다운 시골 생활에 대한 형의 지혜와 인내에 감탄을
    합니다. 늘 건필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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