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당길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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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불출 형의 글 세 편

  • 길벗
  • 2006-10-13 10:3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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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안에서 단감과 밤 농사를 짓고 있는 김진웅 형(필명 미불출)의 글을 이곳에 옯깁니다. 형과는 서울에서 직장 다닐 때 업무 관계로 서로 알고 지내던 사이였습니다. 형이 조금더 큰 부잣집에서 머슴을 살았고, 저는 중간 부잣집에서 살았더랬습니다.

저와 속 깊은 얘기를 나눌 만큼 친하거나 자주 만난 사이는 아니었는데 제가 귀농할 무렵, 형도 고향으로 귀농을 했고, 참 희한한 것은 형도 저모르게 농원 이름을 \'길벗농원\'이라고 지었다는 것입니다. 허어 참. 우연한 기회에 한참 나중에 서로 귀농한 안부를 묻게 되었고 형도 저처럼 다석 유영모 선생을 흠모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인연으로 다시 만나 형은 <함안 길벗농원>으로 명명하고 저는 <홍천 길벗사과농원>으로 이름하여 현재까지 오고 있습니다. \'이웃집\'에 조만간 형의 농사 품목(단감.밤)에 대한
광고가 올라갈 것입니다. 무농약으로 짓는 것이니 많이들 드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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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불출의 글 세 편

귀찮은 길벗

시골로 간 길벗은 봄 되면 매실 사 달라. 여름 되면 고추 사 달라. 가을되면 밤, 감 사 달라 합니다. 이미 서로가 즐거움과 어려움 속에서 길들여진지 오래라 그냥 모른 채 할 수도 그렇다고 매번 사 줄 수도 없습니다. 길벗은 서로가 귀찮게 해서는 안 되는데 말입니다.

전에 키우던 ‘발돌이’라는 발발이가 한 마리 있었습니다. 그 놈이  아주 어릴 때 함께 들판에서 걷고 있을 때 마침 형님이 몰고 나온 검은 진돗개에 놀라 도망을 치는 바람에 잃어버린 적이 있습니다. 겨울철이라 그냥 내버려 두면 다른 포식자들의 먹이가 될 것 같아 들판에서 서너 시간을 헤매며 찾았지만 결국 찾지를 못하다가 점심을 먹은 후 산 아래에서 찾았습니다. 나도 반가움에 기쁨이 넘쳤지만, 그 놈도 어지간히 반가웠던 지 오줌을 질금질금 싸며 꼬리를 흔들어댔습니다.

상업자본주의라는 죽임의 문화에서 벗어나 살림의 문화로 여러 길벗들과 대하고 싶습니다.
무농약이라는 고행의 농사법에서 여러 길벗들의 도움은 정말 고맙습니다. 그래서 앞서 발돌이에게 나는 희망이었고, 발돌이는 내게 기쁨을 주었듯이 길벗들과 서로 기쁨과 희망을 주는 그런 사이였으면 합니다.




자녀 교육

1. 논술고사를 잘 치루는 법

   그대 아이가 논술고사를 잘 치루길 원하세요?
그러시면 밤을 많이 먹도록 하세요. 밤을 그냥 처다만 보지 말고 또 즐거움으로 그냥 지새게 하지 말고 꼭꼭 씹어서 온 몸으로 느끼며 먹도록 하세요. 밤은 어둠의 대명사! 어둡다는 것은 冥이고 玄이니, 冥은 冥想이라는 말을 할 때 쓰는 말이고, 玄은 玄門이라는 말을 할 때 쓰이는 말입니다. 도덕경 1장에서는 도의 생성근원을 玄에서 찾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깊고 깊은 곳은 어둡다는 말이고 그 어둠 속에서 明賢을 발견하자는 게 冥想이고 哲學을 하는 이유가 아니겠습니까? 철학과 명상을 하면 논리적인 사고를 갖게 되고 그러면 論을 述 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밤을 많이 먹도록, 건성으로 먹지 말고 온 몸으로 느끼며 먹도록 하세요. 이상 밤 판매 광고였습니다.

2. 부자되게 하는 법

   아버지 살아계실 때 내게 수시로 했던 말씀이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였습니다. 더 나아가 ‘남의 돈이나 물건은 내 똥보다 더러우니 처다 보지도 말아라.’였습니다. 그저 밥이나 먹고 살자고 가난한 농부의 길을 가게 된 지금의 내 모양새는 ‘황금을 황금으로 보지 못하고, 남의 돈을 내 돈으로 보지 못하게 했던’ 아버지의 그 말씀에 시원(始原)이 있는 듯 합니다.

3. 다이어트 법
   어머니 살아계실 때 남자의 길에 대해 몇 가지 누누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남자 몬난기 밥상 나무라고, 마누라 패는 기라.’ ‘그라고 남자는 아흔 아홉근이 돼서는 안되는 기라. 백 근은 돼야 하는 기라’였습니다. 그 덕분인 지 아직은 반찬투정 해 본일 없고, 마눌 팬 적은 없습니다. 다만, 도시의 삶에서는 백 근이 넘는(73kg=120 근) 삶을 살아왔는데 이제는 겨우 백 근의 몸에 머물고 있으니 이제야 어머니의 가르침을 이행하고 있는 듯 합니다,.

  결국은 내가 시골에 와서 농사지으며 살게 된 그 뿌리는 아버지 어머니의 가르침에 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사이였으면 합니다.




지지대 고개 이야기

도둑이 성행하던 조선시대에 지지대라는 고개에는 이상한 산적 한 명이 출몰하고 있었습니다.
지방에서 한양으로 가자면 지지대 고개를 넘지 않을 수 없는데 그 고개 마루에 이르게 되면 ‘한 냥만 내 놓고 가시오!’라는 점잖은 산적의 목소리를 가끔 들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산 중이라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몰라 한 냥을 땅 바닥에 던지고 얼른 지나갔다고 합니다. 그러나 기운이 억센 장정일 때는 ‘내가 왜 한 냥을 내 놓아야 합니까? 못 내 놓겠소’라고 하며 버틸 땐, 숲 속의 산적은 다시 ‘그대에게 한 냥은 작은 돈일 수 있지만, 우리 식구는 일 주일을 먹고 사는 돈이니 그냥 놓고 가시오’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함안 방어산 길벗 산적이 흉내내기를,
‘감 한 상자 사 주시오!’
‘못 사 주겠소’
‘그대에게 그 돈은 작은 돈일 수 있으나 우리 식구는 그 돈으로 일년을 살아가느니라’


길벗님들이 일년에 한 두 번씩 저희 길벗농원 농산물을 사 주시는 그 마음으로 저희 세 식구는 일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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