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당길벗

농당길벗

또 비가 내립니다

  • 길벗
  • 2006-07-28 21:0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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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장마는 정말 큰 일입니다. 우리 강원도에 유사 이래 이런 난리는 처음인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한달 넘게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골짜기마다 패여 나가고 집이 쓸려 내려가고 농경지가 자갈밭이 되어 버렸습니다.

또 해가 나질 않아서 애써 심은 오이며 애호박이 수정도 되질 않고 흑성병이 돌아 수확이 거의 되질 않는다고 합니다. 채소 수확량이 줄어드니 아마도 값은 천정부지로 올라갈테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농민에게 수익이 되지는 않습니다. 어차피 수확량이 적으니 농민에게는 풍년이 되도 고민, 흉년이 되도 걱정이기는 매일반입니다.

며칠 전 애써 복구했던 길이 다시 패여 나가고 우사 똥도 쳐야 되는데 날이 궂어서 자꾸 미뤄지니 소들에게 미안합니다. 해가 안나니 마르지도 않고 제 때를 넘기는 바람에 우사가 질퍽합니다. 날이 개이는 데로 우사 똥부터 쳐야할 듯 싶습니다.

사과도 걱정입니다. 이제는 제법 크기가 단감만 해졌는데 이 장마비에 병이 오질 말아야 하는데 정말 걱정이 큽니다. 아직은 눈에 보기로는 이상이 없습니다. 올해는 주지하시다시피 유기농업 자재인 \'석회보르도액\'을 가지고 방제를 한 덕분에 아직까지 이런저런 병을 하지는 않습니다.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미루어 짐작컨대 예년처럼 화학농약으로 방제를 했더라면 아마 지금쯤 \'점무늬낙엽병\'이 기승을 부렸을 것입니다.

비가 오니 아무런 일도 못합니다. 그러니 그냥 요즘은 무위도식 그 자체입니다. 아침 먹고 비 구경하고, 점심 먹고 또 비 쳐다보고, 저녁 먹고 다시 빗소리 들으며 잠에 듭니다. 정말이지 밥 먹기도 미안하고 그렇다고 굶을수도 없고.....

이런 가운데 제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선배 이영준 형이 미국에서 잠시 귀국을 했습니다. 그간 9년간 하버드 대학교에서 석박사 과정을 했는데 이제 박사 학위를 받아서 잠시 들른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 수요일 저녁에 인사동 모 술집에서 소설가 성석재 형과 은사이신 정현종 선생님, 그리고 \'페이퍼\' 편집장이자 후배인 황경신 양, 또 그 잡지의 발행인인 김원 씨 등이 모여 오랫만에 정담을 나눴습니다. 저녁 7시에 모여서 새벽 2시까지 총 3차에 걸쳐 그간의 회포를 풀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마지막은 늘 인사동 \'소설\'이라는 까페에서 마쳤습니다.

비는 내리고 오랫만에 보는 선배들과 선생님과 후배와 막걸리 잔을 돌리며 술맛을 돋구웠습니다. 그러고 보니 영준 형, 석재형, 정선생님 만난지가 벌써 25년이 되었습니다. 정말이지 오랫동안 만나고 있습니다. 다들 제 인생에 큰 영향을 준 선생님이고 형들입니다.

이글을 쓰는 지금도(28일. 금요일)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간만에 서울 올라갈 때도 비가 내렸고, 만나는 중에도 비가 내렸으며,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서울서 대학 동창인 민우가 전화를 했습니다. 일본에서 영자가 와서 우리집에 올려고 계획했으나 \'비\' 때문에 못가게 되었으니 그대신 저보고 올라오라는 것입니다. 일본인에게 시집간 영자는 1년이나 2년에 한번 서울 친정집에 다녀가는 모양인데 이번엔 저도 꼭 보고 가겠다고 하니 모임에 나오라는 것입니다. 아니, 또 서울에 가야 하는가 싶은데 비는 계속 내리고 정말 오랫만에 보는 친구라 안갈수도 없고 올 여름을 나는 제 신세가 이렇습니다.

영자 역시 대학 동창인데 이 친구 때문에 제 인생이 180도 바뀌게 된 장본인입니다. 1982년 가을의 일이니 참 오래된 일인데, 언젠가 한번 그때 얘기를 써보긴 하겠습니다. 별 것도 아닐수도 있지만, 제 인생이 휙 뒤바뀐 일이라, 지금에 와서는 편히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그때는 정말 심각했습니다. 영자 때문에(하긴 꼭 영자 때문이라고 해야 하는가 싶기도 합니다만, 어쨌든 영자를 구출하다가 그리 됐으니) 제가 경찰에 잡히고 결국 최전방으로 강제로 끌려가 입대를 당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대학 2학년 때, 전두환 시절의 이야깁니다.

비가 내일까지 오고 그친다고는 하는데 요즘 일기예보를 믿기가 어렵습니다. 기상대가 못미더운게 아니라 기상이 오락가락하여서 말입니다. 장마 전선이 북상한다더니 바로 내려와서 지금 이 난리 아닙니까.

따가운 햇빛이 그리워집니다. 높이 뜬 흰구름도 보고 싶고, 진녹색의 여름 숲도 좀 보고 싶습니다. 올 여름의 비, 정말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습니다. 갑자기 강창민 시인의 시가 생각납니다.

비가 내리는 마을

회화선생 윌리엄은
비가 올 때마다 \'피\'가 온다고 한다.
그에게 내리는 피는 비지만
우리에게 오는 비는 피였다.

온 몸이 온 마을이 피에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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