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당길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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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유감

  • 길벗
  • 2006-06-16 19:4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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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월드컵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월드컵이 열리는 것에 대해 유감은 없다. 또 독일에서 열리는 것도 문제 없다. 또한 우리나라가 참가해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에 대해서도 별 유감이 있을리 없다.

그런데 유감이 많다. 그것은 월드컵이란 것으로 인해 촉발된 우리 자신에 대한 유감이다. 사실 이런 거대한 스포츠 행사가 있음으로 해서 발견하게 되는 우리 자신의 속모습에 대한 유감인 것이다.

방송을 보니 세계 언론에서도 우리나라의 열광적(?) 응원 모습을 특이한 것으로 보도하고 있는 모양이다. 하긴 이 나라 사람인 나도 의아한 이런 모습이 그네들 눈에야 오죽 대단한 모습이겠는가.

며칠 전 서울을 다녀오면서 들은 라디오 프로에서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간 기자의 리포트 내용은 이렇다. 공항에 도착해서부터 경기장에 오기까지 도무지 월드컵 열기가 느껴지지 않아서 이상할 정도였는데 스타디움 근처에 오니까 월드컵 하는 분위기가 느껴진다는 것이다. 나는 그 방송을 듣고 그게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그 기자가 \'이상하게\' 라고 느낀 것이 사실은 \'안이상한\' 것이다.

2002년 월드컵 때도 그랬다. 일본은 전체적으로 조용했다. 월드컵 대회명은 \'KoreaJapan\'이었지만 우리와 일본은 분위기에서 극명하게 대비됐다. 작금의 월드컵 사태(이것은 가히 사태라 불러도 무방하다고 본다)를 강원도 산골짜기에서 보고 알 수 있는 것은 방송과 신문이겠는데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행태들이 계속되고 있다. 다 알다시피 온종일 월드컵으로 도배를 했다. 아니 도배도 모자라서 천지사방 칠갑(철갑이라고도 한다)을 하고 있다. 과연 이래도 좋은 것인가. 아니 되는 것인가.

방송을 보면 전국민이 월드컵으로 날이 새고, 직장마저 지각하고 그래도 상사는 빙긋 웃는단다. 왜, 토고를 이겼으니까! 정말 사태도 보통 심각한 사태가 아니라고 본다. 무엇에 미쳐 보는 것(월드컵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 미친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뭐가 미친 것인가)에 대해 대단히 긍정적으로 보는 나는 그러나 작금의 월드컵 사태는 도무지 달리 보인다. 과연 제대로 미쳐서 이런 것인가. 노우. 정말 노우다.

영국인으로 태어난 남자는 인생이 두가지 뿐이란다. 축구를 하면서 사느냐, 보면서 사느냐. 이 얼마나 훌륭한 축구 미치광이 들인가. 그렇다면 한국 남자로 태어난 우리는 4년마다 오는 월드컵을 TV로 보면서 사느냐, 현지에 가서 보는 남자로 사느냐, 이렇게 나뉘는가.

긴 말 할 필요없이 요즘 월드컵 응원에 미친듯이 나선 대한민국 인민들에게 한마디만 묻고 싶다. 일년에 K-리그 보러 스타디움에 몇번 갔습니까? 너무 어려운가? 그럼 K-리그 중계 몇번이나 시청하셨습니까? 만약 10%만이라도 두번 이상 갔다고 대답한다면 나는 통렬히 사죄하겠다. 당신들을 무시한 것을. 도대체 한국에 프로축구 팀이 몇 팀이나 있는지, 그 팀 감독들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도대체 얼마나 되길래 한국이 이렇게 축구에 미친 나라가 되었을까요??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이건 \'축구 파시즘\'에 다름 아니다. 파시스트는 누구일까요? 우리 각자다. 축구에 미친듯이 보이는 우리 모두가 다 파시스트이고 거기에 기름을 끼얹는 작자들은 바로 \'미디어\'들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내 생각은 우리의 군사 문화가 이제 너무 깊게, 도무지 치유될 수 없을 만큼, 아니 이제는 그 정도를 넘어 그것이 마치 우리의 어떤 독특한 문화인양 분장을 해대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며칠 전 어떤 방송에서는 기자의 입을 통해 이번 월드컵 응원 때 보여지는 외국인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응원 열기)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게 하기위해 뭔가 문화상품으로 만들 수는 없는가 자문하고 있다. 정말이지 단무지 속성이 물씬 풍기는 멘트가 아닐 수 없다.

누구는 우리의 신명을 이야기한다. 과연 우리의 신명이 이런 상업적이고 국수적인 월드컵 응원 사태에 동원되어야 할 우리의 고유한 문화인가. 나는 저번 월드컵도 그렇고 이번 월드컵도 그렇고 우리의 응원 열광(혹은 광기)는 위에서 말한 \'군사문화\'의 찌꺼기 또는 \'파시즘\'의 똥이라고 밖에는 보지 않는다. 지난 시대에 우리가 그토록 혐오하고 목숨을 걸고 지워내려했던 군사정권(파시스트)이 그 권력은 사라졌는데 그 그림자가 우리 모두의 손가락에, 머리에,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우리는 축구를 즐기지 않는다. 축구를 잘 알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심지어 축구 경기를 잘 보지도 않는다. 그런데, 국가 대표 축구 경기는 꼭 봐야 하고, 국가 대표 축구 선수는 온국민이 다 아는 유명 연예인이고, 국가 대표 축구 경기는 꼭 이겨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니 국가 대표 축구 선수들이 세계의 축구 제전인 월드컵 본선에 나갔으니(아니 나가기까지의 과정에서도) 이렇게 열광, 지랄 발광을 한다.

무섭다. \'국가 대표\'라는 말만 붙으면 축구를 위시해서, 야구도, 배구도, 농구도 심지어 인기없는 종목도 모두다 인민들이 지랄 발광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 과연 이게 무엇인가. 온국민이, 온방송이(이번 월드컵 중계를 방송 3사가 모두 각자 한다고 한다. 한국이 낳은 위대한 축구 선수 차붐의 얘기를 빌리면 세계에 이런 나라는 없다고 한다. 자국 경기는 어쩔수 없다고 쳐도 남의 나라 경기마저 모두 방송 3사가 다 하는 나라는 지구상에 대한민국 밖에 없다고 한다) 월드컵 경기 동안 마치 월드컵만이 중요한 양, 있는 양 떠든다.

월드컵 결승이 끝나고 그 다음날 부터, 바로 그 다음날 부터 우리는 각자 일상으로 돌아올 것이다. 돌아오는 것은 당연한데 그 누구도 그렇게 떠들고 외쳐대던 월드컵이 끝난 바로 다음날부터 그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도무지 이게 뭡니까.

축구가 생활이 아닌 나라, 잔디 구장이 턱없이 부족한 나라(정몽준 의원은 모든 스포츠 중에 축구 만한 스포츠가 없다고 진지하게 얘기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그는 잔디에서 하는 축구는 그 맛을 보면 누구라도 축구를 사랑하게 되고 또 가장 안전하고 멋있는 운동이라고 했다), 축구를 그렇게 사랑하지 않는 나라(국내 축구경기-대학, 고등학교, 중학교, 초등학교 경기를 보라. 부모들만 나와서 목청 터져라 응원하고 있다. 심지어 프로축구도 올스타 전 빼고는 그 훌륭한 스타디움이 초라한 관중으로 인해 불쌍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왜 월드컵 축구에는 이리 지랄 발광인가.

모든 게 다 군사정권이 남긴 문화다. 이게 청산이 안된다. 아니, 이젠 포기해야 한다고 본다. 포기하면 남는 게 무얼까. 그래, 그저 이렇게 이상한 나라에서 죽도 아니고 밥도 아니게 살다 가면 그뿐인 인생이 남는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렇게 먹는 걸(몸에 좋은 걸) 밝히나 보다. 먹다 죽은 귀신은 때깔도 곱다던가.

큰 목소리로 목이 터져라 외치는, 짜자작 짝짝 \'대한민국\' 그 구호 속에 무엇이 있는가. 과연 대한민국은 그렇게 목 터져라 불러도 좋을만한 자랑스런 혹은 사랑스런 나라인가. 안정환이가 승리 골을 넣었을 때 눈물 짓는 아리따운 그 처자는 과연 무엇이 그렇게도 북받치는 것일까. 나라가 있다는 것이, 우리나라가 이긴다는 것이 그렇게도 자랑스럽고 우리나라에 태어난 것이 그렇게도 뿌듯한 것인가. 그렇다면 왜 축구와 국가대표 야구와 국가대표 배구와 국가대표 레슬링에서만 우리는 감격하는 것일까, 눈물을 흘리는 것일까.

이런 감정이 어디서 왔을까. 어디서 배웠길래 나라를 대표해서 이기면 눈물이 나는 것일까, 그 어린 처자들 눈에서. 대한민국이라고 악을 써가며 외쳐대는 그 구호 속의 대한민국에 대해 과연, 어떤 생각이 제대로 있는가. 모를 일이다. 이런 \'스포츠 민족주의\'를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할 일이다. 우리가 일본을 축구에서, 야구에서 100:0으로 늘 이긴들 그것이 과연 진정으로 우리가 일본을 넘어선 그 무엇일까. 그것이 과연 우리가 일본과의 동아시아 관계에서 서로 함께 가야할 그 무엇을 보여준단 말인가. 아닐 것이다.

흥분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라(일본을 이기는 것은 기분좋은 일임에 틀림없다) 이렇듯 월드컵 축구 혹은 월드컵 그 무슨 스포츠에 광분하고는 그 뿐인, 눈물짓는 이런 \'유사 민족주의\'에 우리는 속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이게 다 지난 시대 그 파시즘에서 연유한 것임을 자각하고 \'사이비 국가, 사이비 민족주의\'에 우리는 함몰되지 말아야 한다. 합리성을 갖춘 개인의 깨어있는 의식 위에서 우리는 \'대한민국\'을 외쳐야 하고 우리의 자랑스런 태극전사들을 돌보아야 할 것이다.

나는 가끔 섬뜩함을 느낀다. 그것은 \'대한민국\'이라고 외치는 그 함성 속에서 폭력성을 감지하기 때문일 것이다. 파시즘의 폭력성, 무지성, 강제성을 느끼기에 그럴 것이다. 그리고 더 아픈 것은 그렇게 외치고 말 대한민국이 아니어야 하기 때문에 더욱 가슴 아린 것이다. 지난 시대, 모든 것이 국가라는 이름으로 미화되고, 옹호되고, 용인되는 군사 정권 시대의 그 대한민국이 이제는 아니어야 하기 때문에 가슴이 쓰린 것이다.

그런데 월드컵 응원에 매몰된 대한민국을 보면 그때의 그 정서가, 문화가, 행태가 고스란히 묻어있다. 한발짝도 나아가지도, 변하지도 않았다. 한마디로 맹목적이다. 그래서 똑같다고 느끼는 것이다. \'박스컵\'에서, \'킹스컵\'에서 또 \'인니컵\'에서 우리는 지난 시대 지겹도록 보지 않았던가.

우리는 지금 월드컵 응원에 온 인민이, 온 방송이 그렇게 온 종일을 떠들 때가 아니다. 월드컵이야 4년마다 열리는 것이고, 선수들도 매번 새로운 걸출한 스타가 나오는 것이고 그것을 즐기면 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2006년 6월의 우리에게는 월드컵 말고도 너무나 중요한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싹 외면하는 \'대한민국\'이 이제는 무섭다.

더 무서운 것은 지금 이 시대에 \'영애 박근혜\'양이 \'승리자\'로서 대한민국을 활보하고, 아니 활약하고 다니는 것이다. 지난 시대에 영부인 아닌 영애로서 독재자의 옆구리 역할을 하던 그 처녀가 이제 다음 대권을 넘보는 위치에 올라 매일 언론에 오르내린다는 사실이다. 누구는 말한다. 애비와 딸을 구분하라고. 과연 그런가. 구분이 되는가. 아버지는 독재자로서 부하의 총에 맞아 죽고, 어머니도 안타깝게 괴한의 총에 맞아 돌아가셨다. 남동생은 마약에 빠져 헤맨적이 있다. 우리끼리 얘긴데 그렇다면 평생을 구도의 자세로 조용히 남은 인생을 살았어야 했을 것이다. 제 아버지 박통 때 억울하게 살다간 그 많은 사람들의 원혼을 생각해서라도 말이다.

그런데,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마치 월드컵 응원이 보여주는 저 파시스트적 문화와 같이 정치에서도 박근혜 대표가 활약하니 나는, 나는, 이 강원도 촌구석, 오지에서도 도무지 맘이 편하지가 않는 것이다.

지금 이 나라 온 인민의 건강과 직결된, 목을 쥐고 있는 한미 FTA 첫 실무 협상이 있었다. 그런데 이 나라 인민과 이 나라 주요 언론이 그것에 보여준 관심과 태도와 그런데 그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월드컵에 보여준 이 나라 인민들과 언론들의 열광을 보면 알 수 있다. 우리 \'대한민국\'이 얼마나 쓸모없고 무지한 나라인지를.

심지어 얼마전 농진청에서 있었던 농민 교육에서, 어떤 농민은 자랑스레 말했다. \'한미 FTA가 와도 우린 살아날 수 있습니다. 아니 살아나야 합니다. 그럴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가 노력해야 합니다.........경쟁력 운운.....\'
농민조차도 의식없이, 마치 과거 관제 데모에서 원고 읽어대던 수준의, 주류 언론이 내뱉는 논조를, 무책임한 정부의 사탕발림을, 대기업의 이익을 위해 저런 말을 하는 것이다. 아마도, 아마도 우리 모두는 이런 식의 사고와 세계 인식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래도 월드컵에서는 \'대한민국\' 짜자작 짝짝 목청껏 외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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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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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금성 2006-06-20
    지난 번 토고와 축구하던 날, 풀무학교 아이들 행동을 보며 희망을 가져봅니다. 축구를 보고싶어하는 아이들이 있어, 볼 사람은 강당에 모여 보게한 모양입니다. 그런데 여느 학교 같았으면 다 몰려가 보았겠지요. 그러나, 길현 친구 해뜨리 말을 들어보니, 자기나 길현을 포함해서 반 친구들 거의 반 이상이 강당에 내려가 축구를 보지 않고 평상 때 처럼 생활관에서 자기 할 일을 그대로 했답니다. \"왜? 보고싶지 않았어?\" 물으니, \"아, 뭐 궁금하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 학교 아이들이 그런 축구때문에 전체가 할 일 안 하고 거기에 매달리는 게 어째 정상은 아니라고 생각했지요.\" 아무 생각없이 몰려다니고 쏠려 살아가는 흐름을 거스르고 지내는 아이들이 신선해 보이고 듬직해 보이더군요. 어린 아이들이라도 분명 뭐가 길이고 아닌 걸 알 건 어느 정도 알지요.
  • 길종각 2006-06-20
    회장님, 댓글 감사합니다. 축구를 좋아해서 그래서 밤을 새면 어떻고, 독일까지 날아가면 또 어떻습니까? 다 좋은 일이지요. 다만 중심이 없이 이리저리 휩쓸려 사는 세태가 걱정인데 우리 풀무 아이들은 다 제 뿌리를 갖고 살아가니 참 고마운 일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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