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당길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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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 나쁜 날

  • 길벗
  • 2006-05-11 22:4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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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소먹이 주고나서 오늘은 그간 미뤄왔던 구충을 하자는 생각이 들어
주사기에 구충약을 넣어 우사로 들어섰다.
큰 소들을 10ml, 8개월 접어드는 거세 수송아지들은 5ml씩 주기로 했다.
이번 봄에 암송아지가 모두 세 마리 나왔다. 다음 달에 두 마리 더 생산할 예정이다.
현재 임신 중인 암소들 빼고 이미 순산한 놈들하고 일년 넘어 이제 수정 들어갈 때가
된 암송아지 두 마리, 게다가 거세한 수송아지 세 마리 해서 모두 8마리였다.

목걸이(소 먹이줄 때 자동으로 잠기게 하는 장치)에 머리를 넣게 하여 소가 날뛰지 못하게
해놓은 뒤, 한마리씩 주사를 놓아 나갔다. 구충제는 피하주사다. 어깨나 앞다리 위쪽의
가죽을 집어서 그곳에 살짝 주사 바늘을 찌르고 놓아주면 된다. 근육주사를 놓아야 하는 약도 있는데 근육주사는 약이 빠르게 퍼지기 때문에 구충제는 서서히 흡수되는 피하에 놓아야 한다.

한마리씩 잘 놓아주다가 수송아지 중 한 마리에게 뒷다리에 채였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바늘이 잘 들어가지 않아(소가죽처럼 질기다라는 말이 있듯이) 다시 한번 찌르는 순간 이 녀석이 뒷다리로 내 다리를 후려 찬 것이다. 반사적으로 피하긴 했는데 오른쪽 종아리를 걷어채이고 말았다. 다행히 뼈에 정통으로 맞지 않고 종아리 통통한 살을 걷어채여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눈물이 쏙 나올 만큼 아팠다.

바지를 걷어보니 살갗이 까져서 피가 조금 나오고 금새 시퍼런 멍이 들어오면서 딴딴하게 부어오르고 있었다. 방에 들어와 연고를 바르고 낮에는 사과꽃을 땄다. 계속 서서 일을 해야 하는데 한쪽 다리로만 지탱하고 있으니 허리도 아파오고 영 일할 맛도 나지 않았다.

겨우 점심까지 하고는 점심 식사 후에는 포크레인 작업을 하기로 했다. 아버님이 고추 심는다고 밭에 거름을 푸고 비탈밭 정리를 해달라고 하신지가 벌써 꽤 되어서 이참에 마치려고 했다. 포크레인에 시동을 걸고 30분 남짓 일을 했다. 미리 쌓아놓았던 거름을 이리저리 포크레인으로 옮기다가 워낙 비탈이라 그만 포크레인이 한쪽으로 기우뚱하는 것이었다. 얼마나 놀랐는지. 포크레인이 한쪽으로 넘어지는 것이었다. 나는 튕겨져 나갔고 포크레인은 넘어졌는데(그 찰나의 순간....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아무튼 나는 포크레인 운전석에서 잽싸게, 아니 무의식적으로 뛰어내렸다) 정말 큰 사고 날 뻔 했다. 다행하게도 포크레인이 옆으로 넘어가는데 마침 포크레인의 바가지도 그쪽에 있어서 바가지가 반쯤 넘어진 포크레인을 지탱한채 더이상 넘어지지 않고 궤도 바퀴 두 개 중 하나는 45도 각도로 벌렁 들린채 멈춰 서 있었다. 거름 위로 나동그라진 나는 정신을 차리고 기우뚱한 운전석에 겨우 올라가서 레버를 당겨 포크레인을 제위치로 해놓았다.

순간이었지만 얼마나 혼이 났던지. 그러나 오늘의 나쁜 운수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거름을 다펴고나니 이왕 포크레인 시동 건 김에 사과밭에 물 주는 농업용수관 끊어진 것을 이어서 땅에 다시 파묻는 작업을 하고 싶었다. 포크레인을 이동하여 땅속에 끊어진 채 묻혀있는 용수관을 파내는 작업을 하는 데 갑자기 시동이 꺼지는 것이었다.

뒤로 돌아와 포크레인 본네트를 열고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아뿔사\'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이 포크레인은 나온지 15년 된 낡은 놈이라 주기적으로 엔진오일을 보충해주어야 하는데 오늘 그만 깜박한 것이다. 엔진오일 게이지를 찍어보니 오일이 영 없었다. 허겁지겁 엔진 오일을 가져다 넣어 주었지만 이후론 시동이 걸리지 않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태산 같다. 만약 엔진이 과열로 개스킷이 녹아 붙었다면 이건 백만원 대 수리비가 드는 사건이다. 게다가 하필 포크레인이 작업 중 서버린 곳이 마당 올라오는 과수원 중간 길이었다. 우리집 봉고차가 드나들어야 하는데 사과나무와 포크레인 사이에 겨우 지나갈만 했다. 일단 마당의 차를 아랫쪽으로 옮겨놓기로 했다. 조심조심 지나가는 데 헉, 사과나무와 포크레인 후미와의 사이가 생각보다 좁았다. 결국 사과나무를 다치게 할수는 없어서 눈 뜨고 보면서 봉고 옆면 뒷부분이 포크레인에 긁히고 움푹 들어가고 하였다.

아니 이럴수가. 포크레인은 지금까지 계속 거기 서있고(이놈은 무거워서 어떤 장비가 와도 치울수가 없다. 그저 제 스스로 시동이 걸려 이동을 하는 수 밖에는) 차는 생각지도 않게 찌그러지고, 다리통은 아리고 욱신거리고, 오늘 하루 정말 운수 된통 없는 날이었다.

너무 상심해서인지(특히 포크레인 수리비...아아. 이 춘궁기에 거금이 나가게 생겼으니...) 저녁 밥맛이 다 없었다. 그래도 참고 살아야지. 암 참아야 하고 말고. 곰곰 생각해보면 하루종일 엉뚱한 생각으로 인해 머리 속이 복잡했던 것이 원인인 것 같다. 어떤 일을 하든 일에 집중하지 않으면 사고가 나게 마련이다. 아, 빨리 잊어야 하는데...

요즘 인터넷 매체 \'뷰스앤뉴스\'를 보면 이연홍이라는 전직 신문기자가 쓰는 칼럼이 있다. 어제 오늘 아주 재밋게 읽었다. 거기 글 중에 허주 이야기가 나온다. 지금은 고인이 된 정치인 허주 말이다. 다 읽고나니 세상만사 정말 새옹지마이고 그저 마음 하나 잘 다스리면 된다는 생각이 든다. 욕심 버리고....  하긴 그게 인생에서 제일 어려운 거 아닌가.

그저 잊자고 생각하고 있다. 오늘 일은 오늘 일일뿐. 내일은 새로운 날이 다시 시작되지 않겠는가. 아무튼 이래저래 여러가지로 마음 고생이 심한 이번 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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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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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선생 2006-05-19
    길선생, 그렇게 하루 종일 힘들었으면 우리 만났을 때 넉두리하고 하소연이라도 할 것이지...... 그러면 기분이 한결 좀 나아졌을텐데...... 하루가 십년같은 날이 였군. 김선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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