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당길벗

농당길벗

어느새 겨울 준비를.....

  • 길벗
  • 2005-10-11 15: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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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가 직장 생활을 전혀 하지 않고 농사만 지었다면
아마도 지금의 농사 생활에 대해 굉장히 무료하고 또 지루하다고
할 만하다.
왜냐하면 너무도 똑같은 나날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매일이 그런 나날이면서 또 매년이 그런 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시골 생활은 나날이 다르다. 그래서 언뜻 지루하면서도
어쩌면 도시생활과 비교할 수 없는 매 순간의 기쁨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요즘의 나의 생활을 적어보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우선 소 밥부터 챙겨야 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회사에 출근하는 것처럼 나는 우사로 출근을 한다. 보통 7시에서
8시 사이에 우리집 한우님들은 식사를 하신다. 나는 기꺼이 소들의
식사를 준비하고 또 여물통 청소도 한다. 때때로 손에 소똥이 묻는다.
혹자는 아침부터 손에 똥 묻힌다는 것이 상상만 해도 깨름칙하겠지만
나에게는 이젠 일상일 뿐이다.

아침을 먹고 나면 그날 그날의 일이 있다. 시골의 일이라는 게
내가 작정하고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기 때문에 어떤 날은 일이
있어도 내가 안하면 그만이다.
누가 뭐라는 사람도 없다. 이런 면에서 농사는 조금 예술 직업을
닮았다.

요즘 같이 시월 초순에는 벼베기에 바쁘다. 나는 올해는 논농사가
없기에 사과 수확이 다 끝난 지금 수확을 위한 일은 별로 없다.
줄콩이 조금 있어서 며칠에 한번씩 따기는 하지만 워낙 양이
안되니 일이라고 하기엔 그렇다.

그러니 나는 벌써 농사와 관련해서는 한가한 셈이다. 그러나
겨울이 곧 온다. 겨울 준비를 해야 한다.
어떤 것들인가 하면 작년까지는 우선 나무 준비를 해야했다. 땔나무....
지난 겨울에 심야전기 보일러를 놨기 때문에 올해는 이 나무해야
하는 심적 부담을 덜었다.

사과 농사와 관련해서 사용하는 전기로 돌아가는 펌프 몇 개에
들어있는 물을 뽑아 놓아야 한다. 안그러면 겨울에 다 얼어 터져서
몇만원 씩 금전적 손해를 입힌다. 커다란 물통(10톤 짜리가 3개 있다)에
든 물도 다 빼내야 한다. 얼기 전에.

ss기와 관리기, 예초기, 포크레인 등 농기계류들도 손 봐야 할
것들이다. 냉각수를 빼고 남은 연료는 다 없애야 한다. 엔진 오일은
내년 봄에 일제히 새것으로 갈아 넣으면 된다.

소님들을 위해서는 볏짚을 받아야 한다. 볏짚은 받을 때 아예 일년치를
받는다. 이거 트럭에서 내리고 다시 단을 쌓고 또 비 안맞게 비닐 치고
바람에 날리지 않게 마무리하고, 이게 또 며칠 일이다. 올해는 볏짚이
모자라 축협을 통해 톨페스큐라는 수입 목초를 한 차 받았다. 아직
볏짚 나올 때는 안됐기 때문이다. 8톤 한 차 목초값으로 210만 원을
지불했다. 내리고 쌓느라고 꼬박 이틀을 일했는데 그만 허리가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 요즘 그래서 조심하고 있긴 하지만.....

내년에 지을 저온저장고를 위해 터를 미리 닦아 놓아야 한다.
올가을엔 어차피 할 일도 없으니 미리 해놓아야 한다. 그런데 터를
닦자니 일단 이런저런 쓰레기들을 치워야 한다. 어떤 것들은 5년째
방치된 것들도 있다. 마대 자루에 주워담는데 이것도 하루 꼬박
걸렸다. 이제 포크레인 작업 하루, 레미콘 붓고 주변 정리하는 데
하루면 끝날 것이다.

된장을 올해는 예년보다 좀 더 담기로 했다. 그래서 항아리를 사와야
한다. 가마솥도 어제 아버님이랑 옮겨서 다시 설치했다. 오후 한나절이
소요됐다.

이곳에 내려온 뒤로 내 방이 아직 없다. 내 방이라고 하니 굉장히
호사스러운 느낌부터 앞선다. 그간 보지도 않고 모아둔 책들이
라면 박스로 100개가 훨씬 넘는 데 5년째 박스째로 뒤안에
모셔져 있다. 작년에 많이 정리 했는데도 여전하다. 그리고
내 방이 없으니 정리가 도무지 안된다. 올해는 꼭 다용도실을
개조해 내 방(0.5평이라도 좋다!)을 만들고 싶으니 이 일을 하자면
또 며칠이 꼬박 소요될 것이다. 더구나 이 일은 혼자서 안된다.
방을 꾸미는 일이기 때문에....

이제 찬 바람이 불면 김장을 해야 한다. 우리가 먹을 김장 거리 정도는
아버님이 늘 손수 심으시니까 우리야 김장만 하면 되는데
아직 우리 마누라가 손이 작다. 아니 그것보다는 자신이 없어서(더
정확히는 좀 게으른 면이 있어서) 많이 안한다.
내 생각이야 한 몇백포기 해서 아는 사람들 나눠주고 또 나눠주고
또 나눠주면 좋으련만 그게 다 일이니 마누라는 말을 듣지 않는다.
하긴 나야 주는 역할만 하지만 마누라는 만드는 일을 해야 하니
좀 이해가 가긴 한다.

담주엔 단풍 구경을 떠나려 한다. 남들은 서울서도 설악산까지 오는데
인근에 살면서(그렇게 가깝지만은 않지만) 한번도 못가봤다.
나는 살면서 남들 하는 이런저런 재미를 별로 못해본 것 같다. 그저
술만 푸고 살았다면 정확할 것이다. 사람이 좋아 사람들하고 술 먹고
얘기하는 것으로 스트레스 풀고 낙으로 삼았던 것 같다.

아직 집에 인터넷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글을 자주 쓰지 못한다.
면에 있는 우체국이나 면사무소에서 가끔씩 쓰고 있다.
그리고 인터넷도 내가 관리하는 게 아니니까 사진도 자주 못올린다.
연말까지는 고속 인터넷이 연결될 것이라 하니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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