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당길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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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의 글쓰기

  • 농당
  • 2005-03-21 09:4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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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사정으로 홈피에 글을 잘 올리지 못한다. 기껏 만들어놓고 소식을 올리지 못하면 폐물과 다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리하지 못하는 것은 농사이야기에서 변명을 좀 하였다.

어쨌든 뜸하긴해도 올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그런데 잘 안된다. 사람살이가 다 그렇다고는 해도 가장 큰 적은 우선 게으름 같다.

그저께(토요일)는 실로 오랫만에 완규 선배와 철민 아빠와 함께 새벽 넘어까지 통음을 했다. 완규 선배는 귀농한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고참인데(그런데 형수와 아이들은 안오고 혼자만 와서 그간 농사를 지었다. 형수가 초등학교 교사이기 때문이다) 3월부터 10월 말까지 매주 월요일에 내려와서 금요일 저녁에 올라가곤 했다. 일찌기 주 5일 근무를 실천한 셈이다. 그런데 완규 선배가 이제 농사를 접으려고 한다. 즉 가지고 있던 농지 2천 평을 팔려고 내놓은 것이다.

그간 오미자며 감자, 고추 등을 힘든 가운데에도 지었는데 여러 이유로 해서 땅을 팔 수 밖에 없나보다. 그런데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이다. 그래서 술을 많이 들었다. 얘기도 많이 했다. 한 마디로 떠나는 형을 보는 우리도 마음이 좋지 않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이곳에 와서 만난 완규 선배와 철민 아빠, 우리 셋은 시기만 다를 뿐 똑같이 귀농이라는 행위를 통해 이곳에서 만났다. 내가 내려온 지난 2001년 2월에 우리 셋은 우연히 처음 만나 지금까지 이웃으로 살아온 것이다.

완규 선배는 또 내 대학 선배이기도 하다. 이곳에 와서 알게 되었지만 나와 친한 선배와 학과 동기이기도 했고 내 친한 과 동기와는 동아리 선배이기도 했다. 완규 선배는 또 우리 둘, 나와 철민 아빠의 정신적 지줏대이기도 했다. 굳이 철학과를 나왔기 때문은 아니다. 굳이 형의 신앙이 열려 있기 때문이라고도 말하긴 어렵다(철민이 엄마는 독실한 불교 신자). 그건 그냥 형의 인격이 그렇게 되어 먹었기 때문이다.

그간 많은 밤과 시간과 술을 함께 하면서 형이 내놓은 화두들과 경험들은 우리에게 자극과 위로가 되기에 충분했다. 참 독특하면서도 그렇게 편할 수가 없는 완규 형. 완규 선배가 그간 우리 곁에 있었다는 게 정말 행운이었다.

완규 선배도 우리 곁을 떠나기 싫어 쬐끄만 땅을 달라고 했다. 컨테이너라도 하나 놓을 공간만 있으면 자주 이곳에 올 수 있고, 우리를 볼 수 있다고 했다. 그건 우리 마음도 매 한가지다. 그래서 우리 땅 귀퉁이에 형이 컨테이너라도 하나 놓을 수 있도록 할 작정이다. 그래야 우리의 연이 아주 끊어지지 않고 어
쨌든 서로 볼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사람이 뭐길래 이렇듯 서로에게 끌리는 것일까. 왜 우리는 서로 보고 싶어하고 음성을 듣고 싶어하고 또 그 얘기에 빠져드는 것일까. 철민 아빠도 완규 선배가 떠나는 것을 섭섭해 했다. 회자정리하고 했던가. 그러나 거자필귀(이런 말이 있는지, 말이 되는지는 모르겠다)가 또한 아니겠는가.

완규 선배, 사정이 생겨 땅은 팔아도 우리 곁에 늘 나타나주오. 그건 형의 바램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우리 이 땅에 사는 날까지 함께 봅시다.
오늘은 이만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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