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당길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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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정선생님의 퇴임과 이사

  • 농당
  • 2005-01-20 10: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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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은사이신 정현종 선생님의 이사를 도왔다. 올 2월 정년 퇴임을 하시기 때문에 연구실의 책과 짐을 새로 마련한 개인 연구실로 옮겨야 했던 것이다. 새로 마련하신 공간은 선생님 자택 근처 자그마한 아파트를 전세로 마련하셨다. 이삿짐이야 전문 회사에서 날라주었지만 그 많은 책의 먼지를 털어내서 새 책장에 꽂는 일만은 우리의 일이었다. 대학원생 넷이 와주었고 성석재 형도 당연히 왔다. 쓸고 닦고 정리하고 좀 분주한 시간이 지나고 저녁엔 식사와 술을 하러 나갔다. 선생님이 식사와 2차 맥주집까지 쏘셨다. 밤 10시쯤에야 자리는 파했다.

참 오랫만에 자유를 갖게 되었다는 선생님의 퇴임의 변, 학교의 선생님 연구실 앞을 지날 때마다 낯선 명패를 볼 때 서운할 것 같다는 대학원생의 말, 그리고 선생님이 모교로 1982년 2학기에 오실 때 하셨던 강연 '숨과 꿈'을 경청했던 당시 학부 2학년이었던 나의 기억 등에 대한 토로들이 술자리에서 오고갔다. 그러고보니 지금 내 나이 때 선생님은 모교의 전임강사로 오셔서 이제 23년을 보내고 퇴임의 자리에 서 계신다. 석재 형 말마따나 한 시대가 흘러갔다. 참 오랜 세월 동안 선생님을 중심으로 '우리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아왔다. 석재 형, 재길 형, 영준 형, 기형도 형, 나희덕, 홍철욱 형, 나, 경신이 그리고....또 몇...    

우리가 복학했던 85년 이후 우리는 자주 선생님과 신촌의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술잔을 나눴다. 그 얘기를 다 하려면 며칠도 부족하다. 선생님의 형형한 눈빛, 힘센 머리칼(40대부터 이미 은빛이었으므로), 휘적휘적 걸으시는 큰 걸음, 우리의 가슴을 따뜻하게 또는 놀라게 하던 언어의 빛나는 춤, 어린아이같은 웃음.... 우리는 선생님과 젊음의 한 시대를 오롯이 함께 지내왔다. 다들 출판사의 주간으로, 작가로, 신문기자로, 방송국이나 잡지사 기자로, 회사원으로 바빴지만 그래도 늘 시간이 되면 신촌이나 이촌동에서 우리는 뭉쳤다. 때가 되면 산행도 했다. 그 어느 시간 속에서도 선생님은 우리들 보다 늘 더 젊었다.  

이제 또 새로운 시대(선생님의 새로운 공간 마련과 함께, 자유인이 된 이 마당에)가 시작되려 한다. 앞으로도 선생님이 여전히 우리 마음과 또 이 시대의 가슴에 늘 서늘하고 빛나는 언어로 깨우쳐주시기를 기원해본다. 언제나 청년인 우리 선생님의 건강도 아울러 빌어본다.

2005년 1월 20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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