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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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더위 속 사과는 커가고...

  • 길벗
  • 2021-08-03 16: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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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무농약인증을 받은 와야리 홍로사과밭. 봄에 나의 실수와 냉해가 겹치고 인력난으로 적과도 제대로 못해 농사로서는 실패. 작년에 이어 연타석 홍로 농사 망. 그러나 내년엔 훨씬 나아지리라 여기며 위안을... 어제 이웃 김 선생 내외가 오랫만에 사과밭에 오셔서 둘러보았다.
무농약 인증을 받은 홍로밭은 말할것도 없거니와 아랫쪽 부사밭도 온통 풀 천지. 매일 아침이면 예초기를 메고 두서너 시간씩 풀을 깍는데도 돌아서면 어느새 풀이 저만치 자라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생협에 납품하고 또 이 사과로 사과즙을 만드니 제초제는 못치고 이러다 수확시기가 다가온다.

오늘(8월 3일. 화요일) 아침에 처음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지난 2주 동안 어찌나 더운지 어떤 날은 아침부터 기운이 없어 그냥 하루 공치는 날도 있었다. 이런 복더위에 사과농사꾼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풀 깍는 일 뿐. 주기적으로 관수도 해주고 그러나 올 여름은 가끔 세찬 소나기가 지나가서 그나마 나은 편. 재작년 홍천이 40도를 넘는 날도 있을 만큼 무더웠는데 올해는 덥다고 해도 그 정도는 아니어서 아주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다.

사과농사 20년에 그러나 내 농사는 늘 하수다. 제 때 약을 못치고 풀 관리도 안되니 다른 농사꾼들 눈에는 완전 건달 농사로 보일 것이다. 사실 실제로 조금은 건달 농사 맞다. 목숨 걸고 밭에 덤비지는 못하니까... 그저 첫째 안전한 사과, 둘째 맛있는 사과 이 두 가지가 나의 농사 모토일 뿐 나머지는 좀 게으르다고 해도(즉 때깔을 환상적으로 만들기 위해 부지런을 떨며 애쓰는 농사와 비교해서) 괜찮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페이스 북에 글을 안쓴지 거의 일 년이 다 되어간다. 사실 이 홈페이지도 그렇고 페이스 북도 그렇고 내 마음 속 얘기를 솔직히 있는 그대로 다 쓰지는 못한다. 그럴 필요도 없지만. 특히 사회문제, 정치문제에 나는 사실 좀 극단적인 입장도 조금은 가지고 있기에 그걸 다 표현하면 관계가 깨지거나 불편해 할 사람이 한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겹치는 이가 많기 때문이다. 젊어서(20대) 지금은 소설가로 이름을 날리는 성석제 형이 나보고 무정부주의자(아나키스트)가 아닌가 지적한 일도 있다. 문제는 그 길로 깊이 제대로 들어가보지도 못하고 그저 무늬만 그랬다는 것이 문제.

젊어서(서른 여덟에 귀농했으니) 들어온 농촌, 누군가 그 좋은 직장(대기업이 반드시 좋은 직장은 아니지만)을 스스로 때려치고 왜 농촌에 왔느냐고 나에게 의문을 표시할 때 그때는 참 마땅한 대답을 들려줄 수 없었다. 머리 속에 많은 이야기들이 맴돌지만서도. 특히 내가 대학 졸업 후 바로 고등학교 선생으로 나갔다가 역시 스스로 1년만에 사표를 쓰고 대기업으로 간 거를 그것도 이해불가라고 나를 삐딱하게 보는 사람도 있었다.

요즘 홍천 수하리에서 20년을 한 골짜기에서 살고 보니 내 인생 중 가장 한 곳에서 오래 산 장소가 이제 이곳이 되었다. 평창에서 나서 11살 때 정선으로 이사 갔다가 고등학교는 춘천에서 하숙, 대학과 직장생활을 서울에서 얼추 20년 가까이 했으나 그 사이 이사는 여러번 옮겨 다녔으니 말이다. 그러면 이제 나는 홍천 사람이라고 불리어도 족하지 않을까.

옛날에는 그 사람의 난 곳을 가지고 평생 지니고 살았다. 그래서 인명사전이나 고전에 보면 꼭 어디 사람(출신지)인지가 밝혀져 있었다. 그 기준으로 보면 나는 죽을 때까지 평창사람이란 얘긴데 이제 나는 홍천사람으로 살고 싶다. 어려서 추억은(평창과 정선에서의) 아직도 꼭 어제 일처럼 기억이 환하나 그래도 이제는 이곳에서 그것도 한 곳에서 20년 넘게 내리 살았으니 이제는 홍천사람, 아니 서석사람으로 불리고 싶다.

사실 나는 현재 살고 있는 서석에 대해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 내가 아직도 여유가 많이 없어 내 생각과 의견을 이 홈피에 피력하지 못하고 있으나 물론 그렇다고 나의 생각이 뭐 썩 훌륭하다는 것은 전혀 아니고 다만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애정을 가지고 내 사는 서석에 대해 할 말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마 나는 그것을 어쩌면 죽을 때까지 입 안에 담아두고 그러다 은퇴를 할지도 모른다.

예전에 동창 중 하나가 나이 서른을 넘기면서 얼마나 안타까워 하는지(20대가 끝나가는 것에 대해) 나로서는 당시 좀 어리둥절했다만. 요즘 내가 내일 모레 환갑이 된다고 생각하니(그래도 아직 2년 더 남았다) 많은 안타까움과 후회가 밀려든다. 그러면서 나의 은퇴 시점을 뒤로 좀더 미루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애초 계획보다 말이지. 흔히 수명이 늘어났으니(100세 시대라고 하는 말을 나는 아직 믿지 않는다. 아니 믿고 싶지 않다) 은퇴도 좀 뒤로 미뤄지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

이 복더위에 사과즙 탄산설비 장치하느라고 일하는 분들이 고생이 많다. 이제 뒤늦게 주문한 에어콤프레셔가 다음 주에 오면 이제 이 달 중순이면 시제품을 내놓을 수 있을까 전망한다. 말 그대로 시제품이다. 조그만 구멍가게 식품제조업체를 시작하고 보니 생각지도 않은 비용이 계속 들어간다. 결국 1차 산업인 농사가 최고다. 그런데 2차 산업인 제조가공업을 하려니 이건 할아버지가 땅을 많이 장만해놓고 가셨던지 아니면 아버지가 노름판에서라도 뒷돈을 많이 벌어놓았던지 해야 손자 대에 이런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무튼 비유가 좀 어설프지만 구멍가게인데도 계속 돈 들어가는 일만 보인다.

이 더위에 우리 동네 주작물인 오이, 애호박, 풋고추 농사하는 우리 이웃들 생각하면 도시사람들(언론) 농산물 가격 좀 올랐다고 나라 망할 것처럼 난리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농산물 가격이 오르거나 바닥을 치거나 농민은 늘 가난하다. 그건 숙명이다. 그러니 위로는 못할 망정 농민들 알로 보고 먼 나라 사람으로 치부하는 작금의 세태에 그저 혀를 찰 뿐이다. 이 더위에 평생 피서라는 걸 한번도 못가는 사람들이 농민들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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