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연휴도 지나가고 이제 본격적인 한 해 농사가 시작되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6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는게 도무지 믿기지 않고 언제 그 많던 시간(세월)이 흘렀는지 어리둥절하기만 합니다.
너무 평범하게 혹은 너무 못나게 살아온 한 평생이 아닌가 자문해봅니다. 하긴 가능한 조용히 살고 싶어 하기는 했지만
뜻과 다르게 재주가 없어서 그런 생각이 자연스러웠는지도 모릅니다.
지난 가을 장인께서 돌아가시고 이후 올 겨울은 많이 쓸쓸했습니다. 아무런 꺼리낌도 없이 어린 저를 사위로 맞아주시고(저는 스물다섯에 안사람과 결혼)
이후 이제껏 살아오면서 많은 도움을 주신 분. 때로는 친부보다도 더 가깝게, 걱정도 기쁨도 늘 곁에서 돌보아 주시던 분.
이제 두 어른이 다 세상을 떠나고 더이상 기댈 곳도 마음을 의지할 곳도 없어졌는데 지금 내 나이 때의 그 분들 모습을 애써
그려보니 그분들에 비해 나는 아직도 어린아이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돌아간다는 우리 말, 그러고보니 이 세상에 뜻 없이 던져진 후 한 세월을 보내고 어느 날 홀연히 돌아가는 순환의 법칙,
어디가 시작이고 끝인지 여전히 알지 못하는 가엾은 인생을 그저 숨가쁘게 허덕이며 살아내고 있습니다.
오늘은 바람이 몹시 불고 며칠 따뜻했던 기운이 다시 영하의 추위를 보내왔습니다.
삼월의 과수원
내 사과나무는
벌써 그늘과 새들을 갖고 있다.
이 무슨 도약인가 내 잠이여
달에서 바람에로!
내 사과나무는
그 팔들을 초록으로 물들인다.
어떻게 삼월이 간 뒤, 나는
일월의 흰 이마를 보는가!
내 사과나무......
(낮은 바람)
내 사과나무......
(높은 하늘)
-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정현종 역. <강의 백일몽>에서)
대학시절 정현종 선생님의 시창작론 수업시간에 선생은 자주 청송대에 나가서 수업을 하곤 했는데 그때 이 로르카의 시 영역본을 가지고
선생이 번역한 원고를 복사해서 돌려읽고 서로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 나중에 민음사에서 그때 수업교재로 썼던 선생이 번역한 이 로르카 시와
네루다 시 모두가 시집으로 묶여서 나왔다. 나는 90년대 초에 미국에 유학가있던 친구가 이런저런 책을 보내줄 때 같이 왔던
로르카 평전을 선생님께 전해드렸었다. 그때는 내가 출판사를 해보려고 이런저런 자료를 수집하던 때였다.
가끔 춘천을 가게 되면 내가 고등학생 때 자주 들르던 청구서적과 학문사 자리(모두 명동에 있었다)를 가보게 된다.
지금은 모두 옷가게로 변해있지만 그때 수업 마치고 하숙집으로 돌아가기 전, 거의 매일이다시피 두 서점에 번갈아 들렀었다.
그때 읽었던 책 중에서 내게 큰 울림을 준 책은 소로우의 <숲속의 생활>, 볼노브가 쓰고 최동희가 번역한 서문당에서 나온 <실존철학이란 무엇인가>였다.
그리고 청구서적은 서점 안쪽 제일 끄트머리에 시집 서가들이 있었는데 거기서 이성부, 황동규, 강은교 등의 시집을 꺼내 읽곤 했다.
소설보다는 시를 더 많이 좋아하고 또 많이 읽었는데 그런다고 시인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고등학교 때 교지에 소설을 실었고 대학에 와서도
교지에 시와 소설 모두 한 편씩 게재했었고 학교신문인 연세춘추에는 짦게나마 소설을 연재하기도 했었는데 그런다고 소설가도 되는 것도 아니었다.
책 읽는 것도 좋아했지만 대학에 가서부터는 술을 더 좋아했고 술 보다도 사람을 더 좋아했으니 내가 글쟁이가 될 수 있는 팔자는 아니었던 것이다.
작년부터 벌려놓은 일들이 많다보니 주변에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다 해야만 하는 일 투성이고 몸은 '점점' 시들어가고 그러니 피로가 쉽게
쌓인다. 예전에 그렇지 않았는데 갈수록 날씨에 예민해지는 것도 이전에 몰랐던 구석이다. 그러니 나이들면 캘리포니아로 가야만 하는 것인가.
명절 마지막 날 이 동네에서 내가 유일하게 가깝게 지내는 토박이 세영 형님네에 들러 점심으로 형수가 내놓은 만두국을 먹으며 서로 덕담을 나눴다.
형수가 몇 년 전 우리 동네 이장을 하면서 내가 함께 마을사업추진부위원장으로 마을일을 한 덕분에 가까워진 분이다. 형수가 현재 전국농가주부연합회
회장이라 집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술(안동소주인 듯)이 있어 같이 몇 순배 나눴다. 또 농식품부 장관은 곶감과 양념기름류 선물세트를 보내왔다고
하니 과연 전국규모 조직의 회장은 할 만하다. 이곳에서 나고 자라고 한 평생 시골에서 농사를 지어온 분들인데 형님과 형수가 모두 인품이 원만하고
특히 형수는 도량이 크다.
장인 돌아가시고 파주에 혼자 기거하시는 장모님이 그저께 오셨다. 며칠 큰 딸과 지내고 싶어 오셨는데 오실 때 마음과 달리 오시자마자
두고온 빈 집 걱정이 대단하다. 이제 여든 중반을 넘기시는 연세이신데 우리들 걱정과 달리 아직은 혼자서 지내시기에 불편이 없다고 자부심이 대단하시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우리 곁에서 언제까지고 함께 사시면 좋겠다.
*로르카 시집에 실려있는 내가 좋아하는 '늙은 도마뱀' 시 전문은 다음 글에 올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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