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이야기

농사이야기

적과작업을 하면서...

  • 길벗
  • 2019-06-11 05:4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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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과 작업을 일찍 끝낼수록 사과의 크기가 커진다. 그래서 사과농부들은 꽃이 필 때부터 부지런히 필요없는 꽃과 열매는 빨리 솎아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정밀한 노동은 사람이 해야 하고 결국 인력 공급에 운이 달려있다. 내년부터는 적극적으로 그나마 적화제, 적과제를 시험해보려고 한다.


높은 사다리를 가지고 혼자서 옮겨다니면서 아주머니들이 한번 훑고 지나간 자리를 두세번 다시 본다. 여지없이 따내야 할 것들이 많이 남아 있다. 7월까지는 서너번 계속 돌아보아야 한다.

사과농사 일년 중 가장 중요한 적과작업(열매솎기)이 오늘로 열흘 째. 중간에 일요일과 비오는 날 각각 하루씩 쉬었으니 여드레째 하고 있는데 겨우 아시(맨처음, 첫번째라는 뜻의 방언) 작업이 끝났을 뿐, 그러나 것두 완전한 초벌 작업도 아니고...

적과인력 구하기가 갈수록 어려워 주변 마을에 귀촌한 분들을 소개받아 투입했더니 작업속도가 세월아 네월아... 육체노동이 몸에 익지 않았으니 속 타는 내 마음과 달리 어쩌는 수가 없긴 해도 그래도 애초에 체력과 마음자세가 굳세지 않으신 분들은 제발 자신을 알고 나서 남의 일에 뛰어드시길... 자원봉사도 아니고 말이지.

그러니 적과에 드는 인건비가 매년 상승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적극적으로 적화제와 적과제를 이용할 수 밖에. 그렇다고 손적과(사람이 하는 적과를 말함) 작업을 안할 수는 없다. 지구상에 이렇게 사람이 일일이 사다리를 타고 오르락내리락 하며 손으로(실은 가위로) 사과 열매를 솎는 작업을 하는 나라는 일본과 우리가 유일하지 않을까? 더구나 가을에 나무 밑에 까는 반사필름을 이용, 사과의 색을 조금이나마 더 붉게 만들려고 하는 뻘짓 작업 하는 나라도 아마 세상에서 유이하게 일본과 우리나라 뿐일 것이다.

어쨌든 고단한 나날이 계속되고 있다. 다음주 초면 일단 일차 적과가 마무리 되고 뒤이어 바로 2차 적과에 들어가겠지만 그래도 한시름 덜고 난 후이니 마음이 지금처럼 쪼이지는 않는다.

그나마 나는 사과에 봉지 씌우는 작업은 하지 않는다. 물론 사과에도 봉지를 씌우는 농가가 있다. 여러 이유에서다. 그런데 복숭아와 배는 봉지 씌우기 작업에 선택이 없다. 그 동네는 무조건 모두 봉지를 씌운다. 아마 모르긴 해도 그쪽도 요즘 엄청난 인력난에 노동을 덤터기 쓴 부부가 허리가 끊어질 정도로 일을 해야 겨우 입에 풀칠을 하지 않을까.

그래서 갈수록 본 인 꼬레아 과일은 마데 바이 동남아인이 되어가고 있다. 뭐 그렇다는 얘기다. 과수농사만이 아니라 요즘 강원도 이 촌구석에 이름도 아름다운 나라 타일랜드에서 온 분들이 엄청나게 많다. 웬만한 식당마다 서빙은 타일랜드인들이고 농가마다 두서너 명 혹은 그 이상의 인원들이 이 지역 주작목인 오이, 애호박, 감자, 고추 등의 농사에 투입되고 있다. 뭐 어쩌자는 얘기가 아니라 실정이 그렇다는 것이다.

요즘 농업과 농촌에 대해 내가 보고 느끼고 분노하고 또 좌절하는 일상은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기가 어디에서 살던지 무슨 일을 하던지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는 실상일 것이다. 그러나 만약 내가 그런 것들에 대해 하나씩 쓰자면 그건 내가 이민이나 간 후에 자유롭게 쓰지 않는 한 그저 여기서는 저 아래 하층계급으로서의 농민으로서는 차마 쓸 수 없을 것이다. 조용히 살자는건 그래서 나의 일상신조가 되었고 다만 가까운 사이라면 술자리에서나 혀를 놀리는 정도일 것이다. 도대체 이 나라 농업과 농민에 대해(물론 이 모든 것은 다 정치적인 것이고 또 정치를 하지 않는 한 아무 것도 아니다) 생각해보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 지 기분은 한여름 똥참외 밭에 서있는 기분이다.

사과농사에 곁들여 풀밭(무농약 사과밭)에 자유 방목하며 조그맣게 유지 하고 있는 양계농사는(산란닭 4백여 마리. 하루 320~30개 정도 유정란이 나온다) 다행히 매일 오전에 수거하면 오후에는 전량 택배로 보낼 만큼 고정 고객이 확보되어 근근이 해나가고 있다. 닭들은 새벽부터 산란장에 알을 낳고 오전 10시에 문을 열어주면 쏟아져 나가서 흙목욕을 하고 풀을 뜯는다. 닭들이 풀을 얼마나 좋아하고 또 흙목욕을 즐기는지는 직접 키워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계란이 큰 적체없이 꾸준히 나가니 규모를 더 늘리라고 하는 분들이 주변에 몇 있다. 아직은 그럴 생각이 없다. 그저 소농으로서의 자부심과 관리의 한계를 지키고 싶다. 나는 어쨌든 사과농사가 주업이고 2001년 귀농 이래 18년간 사과농사만 지어온 몸이라(홍천 최초의 전업사과농사꾼이 바로 나다. 당시 지역 공무원들과 지역민들의 냉소와 무시를 외면하고 십 년간 고독하게 사과농사를 지켜왔다. 그러다 주변 농민틀이 나를 따라 조금씩 심기 시작힌더니 이제는 홍천군에 백 농가 넘는 사과농가가 있다) 아직은 사과농사에 주력하고 싶다.

별로 영양가도 없는 잡담을 또 길게 썼다. 그야말로 할 말은 많으나 나머지는 만나서 하자는 심정으로 그저 조용히 살고자 한다. 어서 유월이 지나야 지난 4월부터 하루도 편히 못 쉰 몸을 어디 가까운 온천에라도 가서 푹 담그고 올텐데...

<페이스북에 쓴 글을 옮겨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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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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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딸미엄마 2019-06-13
    조용히 응원하는 친구들이 있음을 기억하시고
    힘내시기 바래요!!
  • 길벗 2019-06-13
    네, 알겠습니다.... 이제까지 늘 주변에 도와주고 응원해주는 길벗님들 덕분에 이만큼이나마 살아내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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