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이야기

농사이야기

9월의 마지막 날

  • 길벗
  • 2018-09-30 07:3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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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찍은 와야리 부사 사과 과원. 10월 20일경부터 수확할 예정


어제 태양이네 집에서 찍은 토끼들. 이 집엔 닭, 칠면조, 거위, 돼지 등 많은 동물이 있다

요즘 아침이면 골짜기에 복사무가 자욱히 내리고 경계선이 흐릿하다.
어느새 이 좁은 골짜기에서 열 여드레 해, 오래도 살았구나...
새벽부터 수탉 우는 소리에 잠이 깨고 사방은 고요한데 혼자 일어나 집안을 서성인다.

정말 오랫만에 시집 서가를 살펴보았다.
랭스턴 휴즈. 시집 곳곳에 줄 치고 간단한 메모를 해놓은 것이 보인다.
1986년 5월에 학교 앞에서 산 민음사 세계시인선.

<한계선>

- 랭스턴 휴즈

삶과 죽음에 대해
이상스레 생각하는 습관이 붙었다.
삶과 죽음의 차이는
눈물과 웃음 사이에 있지 않을까

지상과 천국에 대해
이상스레 생각하는 습관이 붙었다.
지상과 천국의 거리는
아무 것도 없다는 데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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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보니 농사를 지으면서 시를 잊고 살았구나.
스승인 정현종 시인을 평생 만나면서도 어느 때부턴가
시를 더이상 읽지 않고 살았구나

좋아하던 예이츠도 바예호도 네루다도 다 서가에 그대로 있는데
손 한번 내밀어 시를 읽지 않고 살았다는 자각

어제는 문득 오대산 진고개에 사는 태양이네에 가보고 싶어
내면 사는 기솔이 아빠를 부추겨 봉평에서 점심을 먹고 고개를 넘어
들렀다.

농사로 먹고사는 이들의 삶은 다 거기서 거기다.
누가 고생을 더 하고 사나 내기 하는 삶

지나간 여러 얘기를 듣고 이제는 만 수 기르던 닭을 이천 수로 줄였다는,
그 과정에 대한 긴 얘기를 듣고 또 여전한 농장의 여러 동물들을 보고
한 사람의 농부가 평생 살아온, 살아가는 이야기가 진지하다.

오늘은 일요일, 어제 안사람이 강릉 방향 차들로 북적이는 고속도로를 보며
우리는 주말이 없네 한 마디 해서 다들 웃었다.
그래, 우리도 동물만 안키우면 주말도 있고 겨울휴식도 있었을텐데
이젠 매일 닭 모이 주고 알 거두고 택배 보내고
아주 바쁜 농부가 되었어.

이제 추석 사과 농사 뒷 정리를 해야 한다.
그리고 시월 말 부사 사과 수확 준비를 해야 하고
그전에 올해는 봄 냉해 피해로 거의 망한 수준인 양광 사과도 따야 한다.

사과식초는 한번 실패해서 이제 다시 담아야 하고
올가을 짓기로 한 저온저장고(20평) 공사는 업자가 아주 태만해서
기초공사만 마치고는 소식이 없다.

세월이 빠르다 못해 비행기 같이 지나간다.
휙 지나가고 나면 그뿐인 시간. 어느새 마지막 날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연중 가장 바쁜 9월이 지나간다.

시월도 못지 않겠다. 매년 돌고 도는 이 수레바퀴.
똑같은 일을 평생 하는 농부라는 직업은 축복인가 굴레인가.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이웃집 예술가 박 선생네에서 전화가 왔다.

속초 온천으로 목욕을 가잔다. 갑자기 아침이 부산해졌다.
마침 일요일어서 오후 택배가 없어 작업이 생략되니 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또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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